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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강남 재래시장의 고수들

재건축된 고층 아파트가 뒤로 보이는 잠실 새마을시장. 모델은 시장 상인 최재옥씨.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는 고급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각축장입니다. 경제력에 걸맞게 주민들 입맛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각 유통업체들은 이런 고객을 유인하고 만족시키기 위해 시즌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이나 세일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요. 발레파킹 등 서비스 경쟁도 치열하고요. 한마디로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런 ‘레드오션’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형 유통업체 때문에 다 망해 간다는 재래시장이 강남 3구 안에 7곳이나 남아 있습니다. 짧게는 33년에서, 길게는 45년까지 모두 수십 년 이어온 곳들입니다. 각 시장을 대표하는 상인(영동전통시장 제외)을 만나 비결을 들어봤습니다. 각 상인회가 추천한 가장 오래 됐거나, 가장 매출이 높거나, 가장 유명한 가게 주인들입니다.



백화점도 대형마트도 이들에겐 못 당한다

글=안혜리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도곡시장 싱싱반찬 송갑연·민정수 모녀



8일 오전 10시. 강남구 역삼동 도곡시장은 개장 준비로 분주했다. 장맛비가 잠시 멈춘 사이 상인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분식점 주인은 조리를 하기 전 주방기구를 행주로 연신 닦고 있었고, 과일 가게 주인은 가게 앞 바닥에 고인 빗물을 빗자루로 열심히 쓸어내고 있었다.



 이곳 싱싱반찬의 송갑연(65)·민정수(44) 모녀도 반찬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송씨가 각종 재료를 삶고 볶으면 딸 민씨는 삶은 나물을 버무리고 일회용 용기에 담아 랩을 씌워 진열대에 올려놨다. 진열대는 반찬들로 빼곡했다. 겉절이며 오이소박이가 입구를 묶은 투명 봉지에 담겨 진열대 맨 앞에 놓여 있었고, 깻잎무침·멸치볶음·무말랭이무침 등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찬들이 줄지어 있었다. 도곡시장 주변은 도곡 렉슬·역삼 래미안 등 대형 평수 아파트가 많다. 1인 가구보다 3~4인 가구가 많다는 얘기다. 강남 주부들을 상대로 17년째 반찬 가게를 이어 가고 있는 비결을 물어봤다.



-손님은 주로 누군가.



 “인근 아파트 주민과 길 건너 대치동 주택가 사람들이다. 출퇴근 시간에 일하는 엄마들이 많이들 사 간다. 그리고 시장 인근에서 가게를 하는 상인들도 점심 도시락 겸 해서 우리 집 반찬을 사 간다. 우리는 콩자반·깻잎무침·무말랭이무침·나물·젓갈·각종 전 등 100여 가지의 반찬을 판다. 전업 주부라도 가끔은 사 먹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건 다 준비해서 판다. 10~80대까지 손님은 다양하다.”



-강남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어렵지 않나. 바로 옆에 롯데백화점(강남점)도 있는데.



 “내(송씨)가 8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다. 젊을 때부터 음식을 많이 해서인지 다들 솜씨가 좋다고 한다. 사람 입맛이 모두 다르지 않나. 대가족 입맛을 맞춰봐서 그런지 손님이 원하는 입맛에 따라 반찬의 맵고 짠 정도를 즉석에서 바꿔준다. 겉절이 같은 김치류는 즉석에서 액젓을 조금 더 넣어주기도 하고, 다른 반찬도 간을 더 해달라고 하면 따로 그것만 덜어서 즉석에서 해준다. 대형마트는 이렇게까지 못 맞춰준다. 입맛은 정답이 없기 때문에 순발력이 필요하다. 요즘은 기본적으로 약간 싱겁게 만든다. 음식이 짜면 아예 입에도 안 대는 손님이 늘었다. 그래서 김치 만들 때도 젓갈은 거의 안 쓰고 새우젓 정도만 넣는다.”



-백화점은 세일을 자주 하는데.



 "재래시장은 ‘덤’이 있지 않나. 마트는 딱 정찰제로 g 수까지 따지며 판다. 우리도 한 팩에 2000원, 3팩 5000원, 겉절이는 400g에 3000원, 100g에 2000원에 판다. 하지만 단골 손님한테는 당연히 덤을 준다. 또 400g이라고 딱 400g만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백화점에서 세일하면 싸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재래시장에서 덤으로 얹어주는 걸 받아 가면 그게 오히려 더 싸다. 그걸 다 꼼꼼하게 비교하는 주부는 여기 오는 게 이득이라며 찾는다.”



-어려운 점은 없나.



 “날씨가 더워지면 모든 반찬 집이 다 위기다. 손님들이 더워서 나오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불을 피워 반찬을 만들어야 하니 가게 안이 푹푹 찐다. 반찬을 만들기도 힘들다. 또 반찬 상할까봐 걱정도 된다. 매년 여름이면 매출이 떨어진다.”



▶도곡시장은



분당선 한티역 인근에 있는 도곡시장은 점포 30여 개뿐인 소규모 시장이다. 역삼래미안·역삼e편한세상·개나리푸르지오·역삼2차 아이파크 등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인근 롯데백화점의 영향 때문에 상권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다. 도곡시장 상인들은 롯데백화점에 맞서 고객 유치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을 잘 아는 주민들은 주로 오후 6~8시쯤 찾아간다. 떨이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영동전통시장은



4일 오후 4시. 장맛비가 떨어지는 와중에도 좁은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골목 양 옆은 야채·과일·반찬 가게와 정육점·떡집 등 소규모 점포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길 한가운데엔 좌판도 벌여져 있었다. 강남구 논현동 영동전통시장은 1973년 문을 열었다. 강남구에 유일하게 남은 골목길 재래시장으로, 125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원래 주 고객이었던 논현동 주민 발길은 차츰 줄고 먹자골목을 찾는 미식가들이 주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4월부터 홈페이지(www.ydmarket.kr)를 열어 입점 점포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연락처도 알 수 있다.



◆ 신사시장 성도상회 서유석·구순옥 부부



지난 5일 오전 10시.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71·72동 뒤에 위치한 신사시장의 좁은 입구 안으로 들어가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을 빠져나온 것처럼 주변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좌우로 길쭉한 통로 양옆으로 참기름 짜는 방앗간·밀가루떡으로 만드는 떡볶이집·미싱을 돌리는 수선집 등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분명 압구정동 한복판인데 달랑 이곳만 영락없는 시골 재래시장이다.



 시장 한가운데 있는 성도상회도 마찬가지다. 노란색 비닐 끈에 묶여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굴비 한 두름(20마리), 묶음으로 종이 박스에 담긴 배추, 비닐 포장된 애호박·가지·고추…. 건어물과 야채를 파는 약 16.5㎡(5평) 크기의 이곳도 외양은 허름한 시골 가게다. 그런데 손님이 다르다. 대기업 오너 일가의 안주인부터 톱스타 연예인까지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찾아온다. 얼마 전까지는 청와대에도 채소를 납품했다. 평범한 겉모습에 숨겨진 내공(內空)이 얼마만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신사시장이 문을 연 1986년부터 27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서유석(54)·구순옥(52) 부부를 만났다.



-청와대에도 채소를 납품했다고 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이다. 그런데 여름마다 장마가 심해서 우리가 먼저 그만하겠다고 했다. 퇴임 후로는 지금의 논현동 자택으로 열무나 얼갈이를 꾸준히 배달 간다.”



-이곳 건어물도 인기라는데.



 “성북동·평창동·한남동에서 일부러 찾아온다. 현대 계열 등 대기업 오너 집에서 많이 찾는다. (※이날도 인터뷰 도중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큰딸(정성이)이 다녀갔다) 개그맨 이경규씨 아내랑 배우 김희선씨도 단골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김희선씨가 직접 장바구니를 들고 온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시어머니·친정어머니랑 왔던 며느리나 딸이 대를 이어 찾아온다.”



-비결이 뭔가.



 “고객 맞춤 서비스다. 예를 들어 손님이 찾아와 지난번 꽈리고추가 매웠다고 말하면 덜 매운 걸로 준비해 놨다가 다시 찾으면 그걸 내놓는다. 가능한 한 많은 손님을 기억해두고 일일이 취향에 맞게 준비해 놓았다가 물건을 권한다. 물론 쉽지 않다. 손님마다 입맛이 다 다르지 않나. 또 고객관리 차원에서 마늘장아찌, 오이장아찌 등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서비스가 좋다는 얘기인가.



 “그만큼 노력한다는 거다. (보리굴비 살점을 잘게 찢어 담은 3봉지를 보여주며) 목포·신안에서 잡아 온 굴비를 겨울에 말렸다가 망치로 두들겨 껍질을 벗긴 후 손으로 가시를 다 발라낸 거다. 손에 굴비 기름이 묻기 때문에 번거로워서 화장실도 안 가고 꼼짝 않고 작업한다. 1봉지에 10마리쯤 들어간다. 종일 일해도 하루에 3봉지 정도 나온다. 또 원하는 손질 정도도 다르다. 그래서 북어는 잘게 찢은 정도차를 3단계로 나눠서 판매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맛있으니 이렇게 할 수밖에. 이 정도 노력 없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사겠나. 채소는 가락시장 문 열자마자 가서 제일 신선한 걸로 사 온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시장 바로 코앞까지 인근 현대백화점 본점 셔틀버스가 다닌다. 경쟁이 버겁지 않나.



 “사실 힘들다. 1980년대만 해도 젊은 부부들이 많이 찾았는데 지금은 젊은 사람은 별로 찾지 않는다. 대부분 나이 든 손님이 찾아와 콩나물 한 봉지·두부 한 모를 구입한다. 대신 우리 가게 손님의 80%가 외지에 사는 부자들이다. 특히 명절 때 많이 팔아준다. 평택·오산·부산에 있는 회사에서도 구입 문의가 많다. 외지에서 선물용 굴비 등을 사 가니 가게를 유지하는 거다.”



▶ 신사시장은



신사시장은 1976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립과 역사를 함께한다. 대표적인 부촌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지만 재래시장의 특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점포 수는 30여 개로 비교적 적다. 또 다른 재래시장의 특징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지만 이곳은 오히려 인근 백화점 등보다 10~15%가량 비싼 물건이 많다.



◆ 마천시장 텃밭농원 최양식씨





3일 오후 3시. 시장 한편 빵집에 들어가는 한 손님의 손에 비닐봉지 4~5개가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비닐봉지 안엔 파와 당근 등 찬거리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손님이 물건을 보느라 발걸음을 늦출 때마다 상인들은 “어서 오세요”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잔돈만큼 좀 깎아달라는 흥정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마천역 마천시장은 1968년 문을 열어 강남 지역 시장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은데도 오래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활기가 있었다. 채소 가게인 텃밭농원 주인 최양식(61)씨는 마천시장의 터줏대감이다. 68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주변에서 보이는 채소를 가져다 팔기 시작한 게 가게의 출발점이다. 최씨는 어머니를 이어 채소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45년차 상인이면 곁눈질로만 봐도 좋은 채소를 알아볼 터인데 여기서는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판다.



-직접 농사짓는 이유는 뭔가.



 “처음에는 돈 벌기 급급해 아무거나 팔았다. 그런데 이곳은 인구 이동이 적은 토박이 촌이다. 몇 해를 계속 보는 손님에게 그렇게 할 수가 없더라. 손님이 믿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물건을 팔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10여 년 전 마천동 인근이랑 경기도에 4곳의 농장을 시작했다. 모두 합치면 1만6500여㎡ (약 5000평) 정도다. 매일 밭에 나가 기른 농작물을 뜯어와 원산지를 속이지 않고 판다. 농사짓는 품목은 상추·오이·가지·생강·대파·고추 등인데 특히 상추를 많이 기른다. 아, 배추는 안 기른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게 김치인데 왜 배추를 안 기르나.



 “나는 상인이다. 비전이 있는 것만 재배한다. 채소 가게를 하다 보니 상추가 비전이 있는 작물이더라. 배추나 무는 김치를 할 때 아니고는 그렇게 많이 찾지 않는다. 김치는 한 번 만들면 다 먹을 때까지 잘 안 찾지 않나. 예전처럼 김치를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상추처럼 쌈에 사용하는 채소는 고기 먹을 때 꼭 들어가니까 수요가 배추보다 많다. 또 사람들이 건강식이라고 여겨 쌈 채소를 전보다 더 많이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판단이 맞았나.



 “그렇다. 역시 상추가 잘 팔린다. 포기상추·꽃상추·찹찹이(치마상추) 솎음상추(어린상추)등 없는 게 없다. 마트나 백화점에 없는 상추도 많다. 손님들이 우리 집은 상추 종류가 다양해서 좋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매년 1억원 정도 벌었다. 다른 구는 물론이고 용인에서 오기도 한다. 손님이 많을 땐 찾아온 단골 손님이 같이 팔아주는 경우까지 있다. 생채소뿐 아니라 오이지도 담가 파는데, 강남구에서 빈 김치통을 들고 사러 오는 사람도 있다.”



-농사짓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처음에는 어려웠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농사 잘 짓는다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20여 집을 찾아간 것 같다. 처음엔 다들 싫어했는데 진지하게 농사법을 배우려고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잘해주기 시작했다. 1년 정도 지나니 농사 용어나 단어에도 익숙해져 농사꾼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서로 도움이 되는 정보도 공유할 수 있게 되더라. 3년 정도 고생해보니 제대로 농사짓는 법을 알게 됐다.”



-농사짓고 장사도 하면 굉장히 바쁘겠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가락시장에 간다. 거기서 내가 재배하지 않는 배추·무를 산다. 그러곤 농장으로 가서 작물을 살핀다. 오전 10시쯤 집에 돌아와서 늦은 아침을 먹고 시장에 나가 장사를 시작한다. 틈틈이 시간을 내 밭에 나가본다.”



-장사한 지는 얼마나 됐나.



 “45년 됐다. 부산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18살에 이곳으로 왔다. 어머니와 함께 주변에 있는 채소를 조금씩 사서 장사를 시작했다. 기술도 없고 돈도 많이 없으니 쉽게 구할 수 있는 걸 택한 거다.”



▶ 마천시장은



송파구 마천동 마천시장은 1968년 문을 연 강남 최고(崔古)의 재래시장이다. 개점 초와 변함없이 130여 곳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유재훈 마천중앙시장 상인회장은 시장이 꾸준히 잘되는 이유로 “인근에 대형마트가 없고, 주민 대부분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단골”이라는 점을 꼽았다. 이곳은 족발도 유명하다. 현재 7개의 족발집이 성업 중인데 곧 1개가 더 생길 예정이다.



◆ 풍납시장 시골 재래식 손두부 박양수씨



2일 오후 2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송파구 풍납동 풍납시장을 찾은 사람이 많았다. 차 한 대 들어가기도 어려운 시장 통로는 손주 손을 잡고 나온 할머니와 갓난아이를 들쳐 멘 새댁, 하이힐 신은 20대 젊은 여성 등으로 빽빽했다. 같은 송파구라도 썰렁한 석촌시장과는 분위기가 180도 달랐다.



 시장 골목을 따라 100여m를 들어가자 ‘시골식 콩국물’이라고 매직으로 쓴 페트병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좌판과 마주쳤다. 옆에는 ‘시골재래식 손두부 1모 1500원’이라고 손으로 쓴 종이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가게 안에는 두부를 만드는 큰 솥이 보였다. 박양수(58)씨의 두부 가게 시골재래식손두부다. 박씨는 두부 회사 영업과장으로 근무하다 25년 전 자신의 두부 가게를 차렸다. 10년 전부터 전통 방식의 두부 만들기로 성공을 거뒀다.



-외지에서도 사 갈 정도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나는 천연 간수(바닷물에서 소금을 추출하고 남은 액체. 두부를 만들 때 응고제로 쓴다)로 두부를 만든다. 요즘 파는 손두부가 모두 전통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많은 가게에서는 화학 간수를 쓴다. 화학 간수는 탄산 마그네슘에 염산을 부어 만드는 건데 편리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두부 고유의 맛보다 조금 쓴맛이 나온다. 난 옛날 어머니 손맛을 재연했다. 더 이상 고급이 없다고 자부할 만큼 품질이 최상이다. 두부와 함께 파는 콩국물도 물 비율을 줄여 농도가 진하다.”



-간수가 그렇게 대단한가.



“두부의 맛은 간수가 핵심이다. 간수에 따라 맛과 질이 확 달라진다. 김치도 배추만 좋다고 맛있는 게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고춧가루나 젓갈이 중요하지 않나. 내가 쓰는 간수는 전남 신안의 염전에서 만든 것이다. 신안은 일조량이 천일염을 만들기에 최적이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기로 유명하다. 간수도 마찬가지다. 가락시장에 있는 천일염 도매상에게 부탁해 신안에서 천일염을 가져올 때 같이 가져온다. 한 번에 20L짜리 통 4개를 받아 4개월을 사용한다.”



-전통 두부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가 있나.



 “본사가 영등포에 있고 나는 한강 이남 지역 판매를 총괄했다. 강남에서 두부가 잘 팔리더라. 직접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87년 두부 전문점을 열자마자 하루에 40만~5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얼마 후 풀무원 같은 기업에서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루에 10만원어치 팔기도 어려웠다. ‘이러다가 망하겠다’는 위기감이 들더라. 여러 밤을 뜬눈으로 고민했다. 내 고향이 전남 진도인데 어머니가 천연 간수로 만들어주셨던 두부가 생각나더라. 서울 사람들 입맛이 고급이니 오히려 잘 만들면 통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전까지 모든 가게가 화학 간수로 만든 두부를 팔았다. 난 10여 년 전부터 천연 간수로 만든 재래식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팔았다. 처음엔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두부 맛에 반해 찾아오다가 입소문을 타면서 점점 유명해졌다.”



-주요 고객은.



 “연령대도, 지역도 다양하다. 방배·서초동에서도 고급 승용차를 타고 와서 6모씩 사 간다. 이렇게 멀리서 찾아오면 조금이라도 싸게 주려고 한다. 특히 맛있게 나온 날은 하나 더 얹어준다. 내 생각에는 최소 한 모에 2000원씩은 받는 게 적정 가격 같은데 아직도 1500원에 팔고 있다. 두부가 맛있다며 손님이 찾아올 때 가장 행복하다.”



▶ 풍납시장은



지하철 5·8호선 환승역 천호역 인근에 위치한 풍납시장은 강남에서 가장 시골 장터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는 곳이다. 자두·참외·복숭아 등이 담긴 소쿠리, ‘세일 자두 2000원’이라고 두꺼운 종이에 매직펜으로 직접 쓴 가격표, 비닐봉지에 담긴 채소로 가득한 좌판 등 시골장터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풍납 1·2동과 천호동 주민이 주 고객이다. 1970년대 후반 논밭이었던 이곳에 2~3층 연립주택이 들어서자 농사꾼들이 농작물을 이고 와 좌판을 벌인 게 시발점이 됐다.



◆ 새마을시장 과일나라 과일천국 최낙천씨





3일 오후 4시. 송파구 잠실동 잠실트리지움 아파트 앞. 바퀴 달린 손수레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렬이 눈에 띄었다. 바로 앞 새마을시장에 저녁장을 보러 가는 주부들이다. 쇼핑카트가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구매한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손수레가 이들의 필수 아이템이 된 거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떡볶이집·방앗간·땅콩가게 등 재래시장의 개성을 담은 점포들이 길 양 옆으로 펼쳐졌다. 수제 만두집 파오파오 앞은 “동네 개들도 맛을 안다”는 새우만두를 사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시장 맛집 관련 기사는 18·19면 참조>



 “일단 드셔봐.”



 시장 입구에 있는 과일나라과일천국 최낙천(46) 사장이 지나가던 손님에게 자신 있게 참외를 권했다. 최씨는 “지금 참외가 끝물이라 아삭아삭한 맛은 없다”면서 “그래도 여기보다 맛있는 걸 들고 오면 두 박스를 그냥 주겠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이효인(55)씨는 “이곳에 처음 이사 온 5년 전부터 여기서만 과일을 사다 먹는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다.



-정말 그렇게 맛있나. 더 맛있는 걸 가져오면 두 박스 내놓겠다는 건 지나친 자신감 같다.



 “내 자존심이다. 나는 가격보다는 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우리 집 과일 가격은 인근 대형마트보다 더 비싸다. 손님들은 비싸더라도 맛있는 과일을 먹고 싶다며 우리 집을 찾는다. 가끔 맛이 조금 떨어지는 물건이 있으면 과감하게 아주 싸게 판다. 아무리 과일을 잘 알아도 실수로 잘못 들여놓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럼 원래 가격의 반값에 판다. 터무니없이 싼값이니까 손님도 의아하게 여긴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원래 이렇게 싸게 팔 수는 없는데, 이건 맛이 없어서 싸게 파는 거다. 다음에 맛있는 게 들어오면 또 사달라’고 말한다. 그럼 손님도 이해를 하고 사 간다. 그러고는 대부분 다시 찾아와서 맛있는 걸로 달라고 한다.”



- 그렇게까지 품질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과일은 기호 식품이다. 아무리 싸게 줘도 맛없으면 본전 생각이 난다. 반대로 아무리 비싸도 맛만 있으면 만족스럽다. ‘비싼 값을 하네’라고 생각하지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이제 우리 같은 재래시장 과일 상인은 가격 경쟁으로는 안 된다. 내가 여기서 장사하는 최근 5년 동안 이 근방에 크고 작은 마트가 12개나 생겼다. 작은 편의점까지 하면 훨씬 많을 거다. 그들은 덤핑으로 들여오는 물건들로 이익률을 맞추고 원 플러스 원(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것) 행사도 한다.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나. 그래서 나는 품질로 승부를 봐야겠다고 맘먹었다.”



-맛있는 과일을 가져오는 비결은 뭔가.



 “유명한 가게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새벽 일찍 가락시장에 가서 좋은 과일을 떼 온다. 아무리 비싸도 맛있는 걸 확보한다. 대부분의 과일 가게는 맛이 조금 떨어지지만 싼 놈, 맛은 있지만 비싼 놈 등등을 골고루 산다. 하지만 나는 가격 상관없이 무조건 제일 맛있다는 것만 고른다. 도매상도 그걸 아니까 나를 보면 처음부터 제일 좋은 걸로 알아서 챙겨준다.(※15일 기준 이 가게의 가장 비싼 수박 값은 2만5000원, 인근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1만7800원이다.) 이제 우리 집은 과일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멀리서도 찾아온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사람도 좋은 과일이 필요할 땐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손님을 계속 유지하려고 다른 걸 딱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장사했나.



 “이제 20년 됐다. 원래는 지금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점을 했다. 노점만 12년 정도 했다. 단속을 피해 도망도 많이 치고 과일을 뺏기기도 하고 벌금도 많이 냈다. 한 번은 단속에 걸려 벌금을 90만원 냈다. 당시 서울시가 깨끗한 거리를 만들겠다며 정책적으로 노점상 단속을 했다. 더 이상 서러워서 안 되겠더라. 부모님, 동생, 삼촌 등 가족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얻어 새마을시장에 세를 얻었다. 그게 지금의 가게다.”



▶새마을시장은



새마을시장은 잠실동 잠실 대단지 아파트를 인근에 두고 있다. 엘스, 레이크 등 잠실 1~4단지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몇 년 전부터 시장 매출이 뚝 떨어졌다가 6년 전부터 재건축 아파트에 주민들이 입주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고객 유치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지난해부터 시장 앞 도로에 노상주차를 할 수 있도록 구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임재복 상인회장은 “전에는 시장에 문의하러 전화했다가도 주차장이 없다고 하면 그냥 끊었는데 이제 주차장이 생기니 많이들 온다”고 말했다. 조만간 배달센터도 만들 계획이다. 2~3시간에 한 번씩 배달원이 시장을 돌며 배달 물품을 수거해 일괄적으로 배달을 하는 방식이다.



◆ 석촌시장 현대정육점 홍인철씨





2일 오전 11시. 송파구 석촌동 석촌시장은 적막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흥정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상인들은 대부분 자리에 앉아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가게 120여 개가 밀집해 있지만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가게는 5~6곳 정도에 불과했다. 상인들은 “불과 5~6년 전만 해도 활기가 있었지만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결정타는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이다. 재건축을 시작하면서 시장의 주요 고객이었던 6600세대가 대부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님 구경하기 어렵다”는 상인들의 푸념 속에서도 유난히 손님이 끊이지 않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홍인철(57)씨가 운영하는 현대정육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게 뒤편에 놓인 커다란 솥과 고기 굽는 석쇠가 눈에 들어왔다. 가마솥 옆 냉장고 안에는 소시지가 가득했다. 정육점에 솥과 소시지라니. 대체 무슨 일일까. 홍씨는 펄펄 끓는 솥을 가리키며 “곰탕을 끓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 장사가 안 된다는데, 이곳만 꾸준히 손님이 온다고 들었다.



 “ 요즘 소비자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많이 얻는다. 과일·채소 보는 안목도 좋아졌고, 현지와 연결해 직접 공동구매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육류는 아직 그렇게 못한다. 가까운 정육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른 업종보다는 형편이 좀 나은 이유다. 물론 고기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 외지에서도 많이 찾아온다.”



-손님을 끄는 비결은 고기의 품질인가.



 “꼭 그것만은 아니다. 남들이 안 하는 노력과 고민을 무척 많이 한 결과다. (소시지가 든 냉장고를 가리키며) 난 고기를 직접 갈아 소시지를 만들어 판다.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은 큰 인기지만 뒷다리살은 잘 안 산다. 그렇다 보니 삼겹살이 네 배나 더 비싸다. 뒷다리살이 나쁜 것도 아닌데. 이걸 이용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방법을 찾다가 소시지를 생각했다. (※가게 한편에는 진공 포장한 소시지와 햄이 가득했다. 소시지 굵기가 3~4㎝ 정도로 시중에서 파는 완제품보다 훨씬 굵었다)



-정육업자가 소시지를 만들어 팔아도 되나.



 “1995년 건국대 축산학과에 위탁교육생으로 들어가 6개월 동안 교육받았다. 고기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교육도 받고 소시지나 다른 가공식품에 대한 공부도 했다. 마트에서 파는 소시지는 대량 생산·유통하다 보니 첨가제를 넣기 마련이다. 또 많은 유통 단계를 거치다 보면 비싸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육점에서 내가 만든 소시지는 매일 소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첨가제를 안 넣으니 신선하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값은 싸다.”



-소시지를 찾는 사람이 많나.



 “손님들이 우리 소시지를 굉장히 좋아한다. 재건축 탓에 한 달 매출이 8000만원대에서 6000만원대로 줄었지만 그나마 소시지·햄 덕분에 젊은 고객이 늘었다. 전체 매출의 20%는 소시지·햄이랑 곰탕으로 벌어들인다. 분당·일산 등으로 이사 간 사람도 일부러 찾아온다.”



-곰탕도 파나.



"그렇다."



-대형마트와의 경쟁이 힘들지 않나.



 “물론 어렵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재래시장은 상인이 직접 물건을 떼 오고 손질·진열·판매까지 다 책임진다. 말하자면 그 분야에서 모든 걸 관장하는 전문가다. 게다가 대부분 그 분야 관련 경력이 10~20년이다. 파는 물건에 대한 전문성이 마트 종업원과 비교할 수 없다. 다른 시장 가게도 이런 점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모두 소시지를 만들 수는 없지 않나. 품목마다 상황이 다를 텐데.



 “왜 안 되나. 과일이나 채소도 자신만의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채소 가게에서 그 재료를 이용한 반찬을 제안한다든지…. 재래시장 상인은 이렇게 전문성을 가미한 플러스 요인을 만들어야 한다. 나도 소시지 전에 별걸 다 해보고 실패도 숱하게 겪었다. 가게에서 손님이 보는 앞에서 탕수육을 직접 튀겨서 팔기도 했다. 재래시장에서 바로 만들면 첨가제도 안 넣고 싱싱한 재료를 쓰니 소비자도 좋아한다. ”



▶석촌시장은



가락초등학교와 가락시영아파트를 등지고 있는 석촌시장은 석촌로를 중심으로 400여m가량 양옆으로 가게들이 늘어선 일(一)자형 시장이다. 1980년에 문을 열어 현재 약 100여 개 점포가 영업 중이다. 재건축으로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지난해 8월 이후 시장의 평균 매출이 80% 가까이 줄었다. 6600여 세대 중 현재 남은 건 300세대 정도다. 가락시영아파트의 재건축 완료 시점은 201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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