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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용인 살인' 현장검증으로 끝인가

권석천
논설위원
지난주 금요일 오후. 용인으로 향하는 분당선 전철. 승객들은 조용히 스마트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다. 서너 살쯤으로 보이는 꼬마가 엄마 옆에서 칭얼대고 있다. 일본 소설 하나가 머리를 스친다. 항상 온화하게 미소 짓던 엘리트 회사원. 그가 아내와 딸을 살해한 이유는 “집안에 책을 놓을 공간이 없어서”였다. (『미소 짓는 사람』) 소설은 묻는다.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얼마나 알 수 있느냐고.



 오후 2시20분. 택시에서 내렸을 때 빗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현장검증이 실시될 모텔 앞은 노란 우비 입은 경찰들이 에워싼 상태였다. 폴리스라인 뒤로 우산을 펴든 주민 100여 명이 보였다. 모텔 현관은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현관 안쪽에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나왔습니까?” “신문사에서….” “여기, 영업하는 곳입니다. 업소 이름 나가면 안 됩니다.”



 2시45분. 어두컴컴한 모텔 주차장으로 경찰 호송차가 들어왔다. “조금만 뒤로 물러나세요.” 경찰통제선이 수십 명의 취재진을 막아섰다. 호송줄에 묶인 범인 심모(19)씨가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모자를 눌러써 턱 부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비공개 현장검증. 이마에서 계속 땀이 흘러내렸다. 습한 공기가 낮게 가라앉은 흥분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3시10분. “치가 떨려요. 왜 모자를 씌웁니까. 저런 놈한테….” 모텔 앞에서 지켜보던 60대 여성이 눈물을 닦았다. 폴리스라인 왼편에 있던 뿔테 안경 쓴 청년은 심씨와 고교 동창이라고 했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그냥 조용하고 평범한 편이어서 이런 사고 칠 줄은…정말 놀랐어요. 3주 전에도 버스에서 봤는데….”



 3시30분. 호송차에 시동이 걸렸다. 취재진의 카메라 조명이 켜졌다. “아닙니다. 30분은 더 걸립니다.” 기자들의 투덜거림과 함께 조명이 꺼졌다. “왜 당시에 알지 못했냐고요? 객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저희도 몰랐고, 다른 손님들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모텔 직원이었다. 경찰과 기자들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거나 카카오톡을 두드렸다. “영장, 발부됐네요.”



 4시40분. 호송차에 다시 시동이 걸렸다. “포토타임 할게요. 10초 정도만.” 심씨가 모텔 밖으로 나오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후회합니까?” “여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그는 차에 오르기 직전 뭔가 말하려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호송차가 모텔을 빠져나오자 주민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치켜들었다. 작은 불들이 반짝였다. “공개해주세요.” “공개해주세요.” 얼굴 공개를 요구하는 몇몇 여성들 뒤에서 한 남성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개XX야.”



 4시45분. 주민들이 하나둘씩 흩어졌다. 엄마들은 집으로, 남자들은 일터로, 교복 입은 학생들은 학원으로. 그렇게 우리는 분노를 뒤로 하고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머지않아 재판이 시작되겠지만 언론도, 트위터도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기억은 1주일 단위로 끊어지고 있다. 현장검증도 사건을 인식의 화면에서 ‘Delete(삭제)’하는 통과 절차인지 모른다.



 나는 모텔 건물 앞에서 머뭇거렸다. 가장 중요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는 왜 그토록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친구에게 말한 대로 “그냥 해보고 싶어서”였을까. 그의 마음에서 감정의 회로를 끊은 것은 무엇일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진단하고 넘어가면 되는 걸까.



 이제 경찰차도, 취재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외면하지 말고 마음 속 괴물을 추적하는 것. 결국 실패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17세 김모양’으로 활자화된 피해자에 대한 이 사회의 책무 아닐까. 우리가 인간임을 입증하는 길 아닐까. 모텔 앞 하천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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