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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정희 없으면 김대중도 없다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귀태(鬼胎) 사건은 보통 막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박정희를 비롯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시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박정희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으로 규정했다. 쿠데타라는 권력 찬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정통 친일파라는 출신 성분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친일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박정희는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만주국 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혈서를 썼다.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만주국 장교로 복무했다. 액면대로 보면 원조 친일파다. 귀태 사건이 심각한 건 한국 사회에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친미파 이승만도 공격한다. 그래서 이승만이 건국을 이루고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해낸 걸 폄하하고 부정한다.



 이런 시각은 공동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 현대사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을 악화시킨다. 나아가 자라나는 세대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 문제는 ‘친일과 쿠데타’라는 박정희의 과거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이다. 아들과 딸이 명백한 사실을 거론할 때 부모는 박정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지도자와 국가에 대해선 ‘줄기와 가지’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가지가 썩거나 부러져도 줄기가 싱싱하고 곧으면 그 나무는 훌륭한 나무다. 박정희에게 ‘친일과 쿠데타’는 가지다. 반면 국민을 가난에서 구하고 현대 국가의 기틀을 완성한 업적은 줄기다.



 인간이 순혈주의(純血主義)적 바람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줄기뿐 아니라 가지까지 완벽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박정희는 애국적이었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그런 지도자가 출신마저 독립군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박정희는 유감스럽게도 일본 괴뢰군 장교 출신이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 선택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러나 거꾸로 독립군 출신이라면 오늘날의 박정희가 있을까. 만주군 인맥이 없었다면 그는 군 지도자로 성장하지 못하고 쿠데타도 못했을 것이다.



 순혈주의로 보자면 김일성은 100점이다. 10대 때 반일(反日) 유격대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김일성이 만들어놓은 나라가 어떻게 됐는가. 인류 역사상 가장 실패한 국가 아닌가. 많은 이가 박정희의 탁혈(濁血)을 공격한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김일성이 저지른 ‘순혈의 실패’엔 애써 눈을 감는다.



 순혈주의로 보자면 마오쩌둥은 완벽한 지도자다. 25세에 공산혁명을 결심했고 용기와 지략으로 공산주의 중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 마오쩌둥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 대약진 운동이라는 허상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로 중국 대륙이 10년 동안 암흑기를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 방문 때 가장 존경하는 중국 지도자로 마오쩌둥을 꼽았다. 순혈만 기억하고 끔찍한 실패는 보지 못한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순혈과 성공’일 것이다. 하지만 조물주가 불완전하게 만들어 놓은 인간 세상에서 그런 조합은 매우 드물다. 드라마는 대부분 ‘탁혈과 성공’이거나 ‘순혈과 실패’다.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이 잘 먹고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런 열매를 맺었다면 그 나무는 좋은 거목이 아닐까. 가지가 탁혈이어도 줄기가 반듯하면 그런 나무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나무를 인정하는 현명한 국민들이 있다. 나폴레옹도 순혈주의적인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의 조국 코르시카는 프랑스 식민지였고 아버지는 독립투사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프랑스 육사를 택했다. 식민 모국(母國)의 심장부에 들어가 포병장교가 됐으며 프랑스 혁명정부 편에 섰다. 나중엔 황제가 되어 독재정치로 프랑스를 근대국가로 만들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 근대화의 아버지다. 그가 자랄 때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그도 나폴레옹처럼 식민 모국의 심장부 런던으로 갔다. 그는 변호사가 됐고 조국으로 돌아와 애국적인 독재로 나라를 크게 발전시켰다. 코르시카 주민과 싱가포르 국민은 나폴레옹과 리콴유를 ‘탁혈’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아 돌이킬 수 없다. 그리고 역사의 인과관계는 철근과 같아 잘라낼 수 없다. 박정희가 없으면 유신정권 2인자 김종필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도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없었다면 지금 홍익표 의원도 없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박정희를 들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를 들어내면 현대사 전체가 헝클어진다. 이승만도 김대중도 마찬가지다. 귀태 발언이 심각한 건 자라나는 세대에게 ‘역사는 들어낼 수 있다’고 잘못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없으면 김대중도 없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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