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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도 쌓아주고 ‘허세’도 채워줄 토종 작가 없을까

“체호프가 말했어.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고.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컬처# : 하루키 신드롬과 2차 소비

2009년 발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3부작 소설 『1Q84』에서 노부인의 경호원 다마루는 주인공 아오마메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언급됐다는 이유로 당시 일본에서 체호프의 『사할린 섬』은 절판된 지 오래였던 처지에서 갑자기 중쇄에 들어가는 ‘벼락스타’가 됐다.

체호프 소설만이 아니었다. 『1Q84』 도입부엔 택시를 타고 가던 아오마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듣고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임을 알아차리는 장면이 나온다. 오자와 세이지 지휘, 시카고 교향악단 연주의 이 음반은 일본에서 발매 후 9년간 2000여 장 나갔던 것이 소설 출간 일주일 만에 9000장을 찍었다.

이렇듯 하루키의 소설은 발표될 때마다 ‘2차 소비’로 또다시 ‘현상’이 된다. 작품 속에 언급된 소설이나 음악에 호기심을 느낀 하루키 독자들이 추가 구매에 나서는 것이다. 최근 국내 발간된『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음반은 국내 발매 열흘여 만에 약 1200장이 팔려나갔다.

‘순례의 해’ 모음곡 중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쓰쿠루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누명을 씌우는 여학생 시로가 즐겨 연주하는 곡. ‘전원 풍경이 불러 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이라는 제목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불운한 죽음을 맞는 시로와 쓰쿠루의 미스터리한 과거가 음악이 오버랩되면서 곡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하루키 작품은 동시대 작가들에 비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상당히 강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요리(스파게티·두부·비프가스·고로케·특제 케이크 등), 음악(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 도어스의 ‘솔 키친’, 라디오헤드의 ‘키드 A’ 등), 문학(위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니나, 겐지 모노가타리, 수레바퀴 밑에서 등), 술(맥주·위스키·와인·칵테일 등) 등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하루키, 키티, MUJI를 통해 본 일본 문화 아이콘』, 2010). 이런 오락적 요소를 동원함으로써 “소설을 인스턴트 음식 즐기듯 가볍게 대하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들의 구미를 동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키로 인한 ‘2차 소비’가 발생할 때마다 ‘허세’ 논쟁이 빠지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예컨대 ‘순례의 해’ 음반 붐에 데해 “라자르 베르만이 누군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하루키 좀 읽었다고 클래식 애호가인 양 음반을 산다”고 빈정거리는 식이다.

하지만 하루키 현상은 한 꺼풀 벗겨보면 허세로 몰아붙일 일만은 아니다. 여기서 읽어야 할 건 하루키를 찾는 사람들이, 하루키 작품 속 또 다른 작품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무엇에 목말랐느냐다. 분명한 건 부담 없는 교양을 세련되게 포장한 문화상품에 대한 독자들의 선호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3000원짜리 밥을 먹고 나서 5000원짜리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시는 세대’ 아닌가. 하루키가 제공하는 건 적당한 무게와 함량의 교양이다. 비록 『언더그라운드』서문에서 하루키는 스스로를 “단순하고 교양 없는 소설가”라고 했지만 그의 취향은 애호가를 넘어서는 수준임은 분명하다. 하루키 소설은 “식당 에티켓부터 재즈와 클래식에 대한 정보까지 풍부한 문화적 교양을 제공”하고, 하루키 소설을 읽는 건 “그 자체로 교양 있고 세련된 문화 행위”(문학평론가 박진,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2011)가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런 교양에 대한 열망을 채워줄 작가가 그동안 국내에 없었다는 얘기일 터다. 지금 하루키 현상의 핵심은 1949년생, 64세의 ‘할아버지’ 하루키가 젊은 한국 독자들의 니즈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허세’와 ‘교양’ 사이에 하루키가 존재하는 한 십 몇 억원이 넘는 고액의 선인세 행진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문단과 출판계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분명하지 않을까.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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