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1977년 메달 못 따 카퍼레이드 맨 뒤차 … 한 풀려고 독하게 가르쳐"

현대중공업 최웅의 부장(왼쪽)과 신충찬 훈련실무팀장(오른쪽)이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MVP를 차지한 원현우씨(가운데)와 함께 철골구조물 분야에 출제됐던 과제물을 되짚고 있다. [사진 현대중공업]


1977년 7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67년 스페인 대회(16회)에 첫 도전장을 내민 이후 여덟 번째 참가 만에 이룬 쾌거였다. 28명의 선수단은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지프에 나눠 타고 김포공항에서부터 광화문을 가로지르며 개선 카퍼레이드를 했다. 선수단이 지나는 곳마다 빌딩에서 흩뿌려진 꽃가루가 하늘을 덮었다. 그 카퍼레이드의 맨 뒤차. 메달을 따지 못한 2명의 선수가 타고 있었다. 신충찬(56·현대중공업 훈련실무팀장)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신씨는 “서글픈 감정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독이 올랐습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국제기능올림픽 MVP 원현우 키운 신충찬·최웅의



 그는 네덜란드 대회장에서 작품을 완성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을 해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거지요. 물론 성적에 대한 기대도 했습니다. 반드시 (메달을) 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상대에 서지 못했다. 신씨는 “대회장 옆 나무 밑에서 한참 울었습니다. 들떠 있는 선수단을 생각해 마음을 추슬렀지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다시 도전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국제기능올림픽에 선수로 출전할 기회는 없었다. 스포츠 올림픽과 달리 기능올림픽에는 22세 이하만 참여할 수 있는 데다 한 차례 출전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1981년 제26회 미국 애틀랜타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단이 서울 서소문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사진 e-영상역사관]
 신씨는 ‘후배를 잘 가르쳐서 세계를 평정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듬해 부산에서 열린 기능올림픽에서 자신이 가르친 후배(김병호)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씨는 “안방 프리미엄이란 말이 나올까 봐 독하게 가르쳤다. 후배의 목에 금메달이 걸릴 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어진 아일랜드 대회 때도 자신이 가르친 훈련생(정중선)이 연이어 금메달을 땄다. 신씨는 “병호나 중선이가 많이 괴로워할 정도로 독하게 가르쳤다. 그래서인지 몇 년 동안 저의 독한 훈련이 전국 기능인 사이에 퍼져 전설이 됐었다. 독종으로 말이죠”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훈련교관의 길을 걸으며 철골구조물과 판금 분야에서 금 12개, 은 7개를 쓸어 담았다.



 신씨는 이번 독일 대회에서 또 한번 일을 냈다. 최웅의(51·해양사업기획부) 부장과 함께 원현우(21)씨를 국제기능올림픽 최고봉인 MVP 자리에 올려놨다. 공교롭게도 신씨는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국제기능올림픽 첫 종합우승과 MVP의 영예를 36년을 사이에 두고 현장에서 맛봤다. 신씨는 “첫 종합우승을 할 때는 박정희 대통령 때였고, 지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계시니, 인연이 참 묘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고 육영수 여사가 73년 설립한 국립정수직업훈련원(현 정수대학)의 선후배 사이다. 신씨가 76년, 최씨가 81년 졸업했다. 최씨는 85년 일본에서 열린 기능올림픽에서 철골구조물 부문 금메달을 땄다.



 최씨는 “당시 정수직업훈련원 입학·졸업식 때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육 여사께서 돌아가신 뒤에는 박근혜 현 대통령이 참석해 격려했다”며 “정수훈련원 출신이면 누구나 대접받던 시대였다”고 말했다. 당시 정수직업훈련원에는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다. 학비는 무료였다. 기술만 있으면 대접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기능 우선 정책을 펴던 당시 기술입국의 상징이었다. 최씨도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형편 때문에 서울의 공장에 취직해 학업의 꿈을 접을 뻔했다. 최씨는 “중졸을 받아주는 정수훈련원이 있어 중산층으로의 도약을 꿈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때 주경야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고 기술을 익히며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25년간 고교와 대학의 야간과정을 파고들었다. 올해 2월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부산광안대교, 성수대교, 석유시추선, 해양 원유시추장비 등 150여 개의 철골구조물을 제작했다. 최씨는 “정수직업훈련원 출신 기능인들은 매년 8월 15일이면 어김없이 현충원에 모여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 묘소를 참배한다. 정수훈련원은 저소득층에게 꿈을 준 학교였다”며 직업훈련원의 확대를 정부에 부탁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신씨가 작심한 듯 말을 이었다. 그는 “11일 인천공항에 정홍원 국무총리께서 나와 환영식을 주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얼마 만에 총리급 인사가 나오셨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박 대통령이 직접 (정 총리의 참석을) 지시하셨다고 해 70년대 기술보국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가 독일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장관조차 환영식 참석이 불투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카퍼레이드는 아니더라도 기능인을 우대하는 풍토가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루 16시간 지옥훈련 중도포기 선수도



 이들은 “기능올림픽에만 나가면 종합우승을 하니 국민들이 금메달을 당연시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그 훈련과정은 혹독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국가대표가 된 뒤에는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 훈련에 매달린다. 훈련과정이 너무 힘들어 중도 포기하는 선수도 나온다. 훈련 도중 국가대표가 이탈하면 그 직종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대체선수를 뽑을 수는 있지만 훈련할 시간이 부족해 아예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독일 대회에는 석공예 부문에 선수를 내지 않았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가 훈련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훈련교사도 이런 과정을 함께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씨의 경우 독일 출국 2주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최씨는 “그래도 어머니를 보내고 1주일간 종합점검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배려해 주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훈련교사는 휴가를 포기해야 한다. 지방기능경기대회가 4월에 열리고, 전국기능경기대회가 10월에 열린다. 국제대회는 2년마다 매년 6월 또는 7월에 열린다. 대회를 앞두고 평균 6개월 이상 훈련한다고 치면 휴가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스케줄이다. 신씨는 “30여 년간 명절에도 조상님만 모시고 곧바로 출근했으니…”라며 “그래도 이해해주는 가족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원현우 퍼펙트 점수 … 심사위원도 놀라



 이런 열정과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 종합우승과 함께 MVP 배출이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특히 MVP가 된 원현우씨가 받은 점수는 98.94점(100점 만점)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2위를 한 일본 선수와 11점 이상 차이가 났다. 철골구조물 분야 참가선수들의 평균 점수는 70점대였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신씨는 “철골구조물은 완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여기서 퍼펙트가 나온 것은 무식한 짓이다. 그런데 해내더라”며 대견해했다. 최씨는 “외국 심사위원들이 매일 견제거리를 찾으려 기웃거렸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고 말했다. 심지어 대회가 끝난 뒤 아일랜드·프랑스 등 일부 국가 관계자는 자국의 기능교육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두 훈련교사의 전공분야이자 이번 대회 MVP를 배출한 철골구조물 직종은 한국의 중공업과 건설산업을 일으킨 밑거름이 된 분야다. 광안대교와 같은 대형 교량부터 석유시추선에 이르기까지 철골구조물은 기본 기술영역에 속한다. 최씨는 “70~80년대만 해도 철골구조물 기술은 철공소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70년대 한국이 조선사업에 눈을 뜰 때도 가장 해결하기 힘든 골칫거리가 철골구조물 분야였다. 신씨는 “80년대 초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중공업 업체들이 앞다퉈 기능올림픽 선수를 배출하면서 철골구조물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기술 축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두 훈련교사와 현대중공업이 배출한 이번 대회 메달리스트들은 12일 다시 현대중공업 훈련장으로 출근했다. “과제를 복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과제 수행 과정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수치화해서 다시 분석한다. 철골구조물의 경우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냈지만 100점 만점에 1.06점 모자란 원인을 꼼꼼히 따지고 극복방안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짧으면 1개월, 길게는 2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신씨는 “다음 기능올림픽에는 또 다른 선수가 나가겠지만 분명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자신했다.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신씨는 “내가 직접 심사를 해보니 최근 들어 브라질과 중국의 추격세가 무섭다. 모든 분야에서 기술 수준을 더 높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특히 기술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05년 제35회 핀란드 대회부터 올해 독일 대회까지 4회 연속 심사위원으로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 참가했다. 예전엔 일본이나 독일·스위스 등 기술 강국만 경쟁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최근 4개 대회에서 기술 수준을 심사해보니 후발국의 능력이 해가 갈수록 급속히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울산=김기찬 선임 기자



◆국제기능올림픽 입상자 혜택=메달 수상자에게는 2240만~6720만원의 상금과 훈장이 수여된다. 산업안전요원으로 근무하는 병역특전과 함께 산업기사 자격시험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같은 분야에서 계속 일하면 계속종사장려금도 받는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