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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창조경제는 '녹색 번데기'다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번데기의 추억은 지금도 새록하다. 1980년대 초, 종로 YMCA회관 2층 생맥줏집. 6월 어느 날 대만대학 청년단과 뒤풀이 자리를 가졌다. 대학 교환 방문 프로그램을 마친 직후였다. 교수님께 받은 봉투도 있겠다, 호기롭게 “생맥주 1000㏄ 한 잔씩”을 외쳤다. 안주는? 흠~뭐가 좋을까. 메뉴판을 훑다 눈이 번쩍 띄며 멈춰선 곳, 그래 이거다, 번데기. 마침 통조림 번데기가 유행할 때다. 맨손을 핥아도 술만 있으면 OK던 시절, 웬 호사냐며 내심 흐뭇했다. 그러나 웬걸. 대만 친구들은 술만 홀짝홀짝, 번데기엔 손도 안 댔다. 이유를 묻자 “쩌부스충아(이거 벌레 아니냐)”라며 절레절레. “누에 새끼인데, 단백질이 풍부하고, 오래된 먹거리야. 몸에 좋아.” 아무리 손발 짓을 섞어 설명해도 긴 머리 대만대 여학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번데기. 너는 벌레였구나.



 두 달 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쪽짜리 두툼한 보고서를 냈다. ‘곤충이 미래의 식량’이란 주제다. 소고기에 비해 10분의 1의 땅과 12분의 1의 사료면 충분하다. 미네랄, 비타민,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식용만 1900종으로 다양하다. 지금도 20억 인구가 곤충을 먹는다. 무엇보다 친환경이다. 물 적게 쓰고 탄소 배출도 적다. 이 어찌 미래형 에코 먹거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이라더니. 아~번데기, 30년이 흘러 너는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녹색 벌레’가 됐구나.



 번데기 이전에도 녹색은 사실, 인류를 재앙에서 구했다. 두 세기 전 경제학자 맬서스는 인류 멸망을 예고했다. ‘25년마다 두 배가 되는 인구를 먹여 살릴 능력이 지구엔 없다’는 주장이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초판본 『인구론』의 한 구절. 지극히 단순명쾌한 이 논리는 곧 19세기 절대명제가 됐다. 하지만 예고했던 20세기 말에도 인구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맬서스의 대재앙을 막은 건 잘 알려진 대로 녹색 혁명이었다. 녹색 혁명은 단위당 식량 생산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번데기는 그러나, 우리 시대 더 큰 절대명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지구 온난화다. 맬서스의 ‘인구폭탄’보다 훨씬 강력하고 공포스럽다. 환경론자들은 인류 재앙 시나리오를 막으려면 선진국부터 석탄·가스·가솔린을 당장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2006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15년뿐”이란 공개서한을 EU 국가 수반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돌파구는 녹색 기술이다. 지금보다 3~4배의 온실가스를 감당할 만한 녹색 기술과 녹색 식량, 인류가 갈망 중인 해법이다.



 이명박정부는 녹색을 발 빠르게 잡아챘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녹색에서 찾고자 했다. 대통령부터 녹색에 매달렸다. 녹색기후기금을 송도에 유치하는 성과도 냈다. 그땐 번데기도 주름 좀 잡았다고 한다.(아무리 정권이 미워도 잘한 건 잘했다고 해줘야 한다. 우리 정치·사회도 그만큼은 성숙했다고 본다. 만일 아직도 아니라면, 빨리 그렇게 돼야 한다.)



 그런 녹색이 새 정부 들어 고전 중이다. 대통령 직속이던 녹색성장위원회는 총리실 소속으로 격이 하나 떨어졌다. 인원도 50명에서 30여 명으로 줄었다. 애초 5월 출범 예정이었지만 이달 중에도 될지 말지다. 이름도 지워질 뻔했다. 녹색지원단 구성도 안전행정부가 “녹색이란 이름을 떼내거나 창조를 넣어서 바꿔야 승인을 해주겠다”는 통에 두 달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이게 온당한가. 대체 창조경제가 뭔가. 창조는 주역으로 풀면 일원(一元)이요, 혼돈이다. 혼돈은 모든 걸 담는 그릇이다. “그 말이 맞다”며 한 정부 고위 관료는 사석에서 ‘참기름’론을 펼쳤다. “예전 방앗간에선 참기름을 짜 소주병에 담아 줬다. 소주병에 담았다고 참기름이 소주가 되나. 참기름을 소주병에 담듯, 녹색을 창조경제에 담으면 된다. 김대중정부의 벤처도 담았는데 MB의 녹색이라고 왜 못 담겠는가.”



 이달 말께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창조가 녹색을 담을 만한 그릇인지 아닌지. 만일 녹색을 뺀 창조경제라면? 그야말로 주름잡지 말라, 번데기 앞에서….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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