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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베를린은 청춘이다

4일 오후 7시~10시까지 베를린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패션쇼 ‘언더그라운드 캣워크’가 열렸다. 알렉산더플라츠역~프랑크푸르터알레역 구간이 무대였다. [사진 페르난다 발디우티]


베를린. 이 도시는 18세기 초, 프러시아의 수도가 된 이래 분단 독일 시절을 빼고 300년 이상 수도 자리를 지켜왔다. 200여년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 대도시였고, 부유한 도시였으며 문화적인 풍요로움 또한 서구의 어떤 도시 못잖았던 곳이다. 하지만 화려한 베를린의 역사는 동·서독 분단 이후 거대한 정치적 이슈에 잠시 가려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요즘, 베를린이 새 옷을 입고 세계인을 유혹 중이다. 문자 그대로 ‘새 옷’을 입었다. 동·서베를린을 합쳐 다시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가 된 지 올해로 24년째. 베를린이 패션 도시로 거듭났다.

올해 7회째 맞은 '베를린 패션 위크' 르포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7일까지 일주일 동안 베를린은 ‘패션 수도’를 자처했다. 그냥 패션 도시가 아니라 ‘수도’라 천명한 이유는 ‘베를린 패션 주간(BFW)’의 내실 있고 화려한 행사들 때문이다. BFW 내내 도시 전역에서 펼쳐진 수많은 패션쇼와 대규모 패션박람회는 ‘패션 수도’의 모습을 대내외에 보여줬다. 이런 움직임은 베를린을 유럽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젊은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독일 정부의 전략에서 비롯됐다. 독일 외교부의 우베 하이어 다자(多者)문화교류국장은 “베를린은 독일의 정치·문화 등을 대표하는 수도, 나아가 세계의 패션 수도로 변신 중”이라고 말했다.



BFW엔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 등에서 펼쳐지는 패션쇼 위주의 컬렉션만 있지 않았다. 세계 최대 캐주얼 패션 박람회 ‘브레드앤드버터베를린(BBB)’, 주목받는 신진 패션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모아 여는 ‘캡슐’, 전 세계 패션 바이어를 위한 ‘프리미엄’ ‘파노라마’ ‘더갤러리’ ‘라베라 쇼플로어’ ‘쇼플로어 베를린’ ‘그린쇼룸’ 등 크고 작은 패션 행사 10여 개가 일주일 동안 집중해 열렸다.



우리에겐 근검절약하고 검소한 국민성으로 잘 알려진 독일, 자동차 등 기술강국 이미지가 강한 독일. 지난 한 주 그 수도 베를린은 BFW 덕분에 패션 감성에 푹 젖어 있었다. 무엇이 베를린을 패션으로 물들게 했을까. week&이 현장을 직접 찾아 살펴봤다.



1 베를린 남부 템펠호프 공항 청사에서 열린 세계 최대 캐주얼 패션 박람회 ‘브레드앤드 버터베를린(BBB)’. 첫날인 2일 오전 수천 명의 관람객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2 BBB 개막 전야 파티에 전시된 대형 곰인형. 청바지 천으로 만들었다.
3 BBB 부스 전경 [사진 브레드앤드버터베를린]


패션의 새로운 수도 꿈꾸는 베를린

무명 디자이너도 참가 환영

장벽 없는 베를린 런웨이




폐쇄된 공항 전체를 행사장으로 활용



‘패션 수도 베를린’의 기운은 1일(현지시간) 저녁 베를린 남부 템펠호프 공항에서 열린 ‘브레드앤드버터베를린(BBB)’의 개막 전야 파티에서 감지됐다. BBB는 2001년 독일 쾰른에서 시작한 캐주얼 패션 박람회로 2003년 1월부터 베를린에서 개최돼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BBB 회장 카를 밀러는 “2008년 베를린주(州) 정부에서 역사와 전통이 서린 멋진 공항 건물을 행사 장소로 허락해준 이래 BBB가 베를린 패션 주간의 한 축이 됐다”고 소개했다. 1920년대 문을 연 템펠호프 공항은 2008년까지만 공항으로 사용됐다. 2007년 베를린 주정부가 ‘패션 수도 베를린’ 계획을 추진하면서 폐쇄 예정이던 공항 청사 전체를 BBB 쪽에 사용토록 제안했다. 2007년 7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박람회 개최지를 옮겼던 BBB쪽은 베를린의 구애를 받아들여 2009년 7월 이후 템펠호프 공항에서 모든 행사를 열고 있다. 1일 오후 8시가 넘자 행사장엔 전 세계에서 모인 1000여 명의 패션 관계자가 속속 입장했다. 몇 년 전까지 비행기 활주로로 쓰였던 공항 청사 앞마당은 바닷가 휴양지 백사장으로 바뀌어 있었고 비보이·인디밴드 공연 등이 어우러져 패션 도시 베를린의 시작을 알렸다.



4 4일 오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마련된 ‘메르세데스벤츠 패션위크 베를린’쇼장에서 핀란드 출신 패션 디자이너 사투 마라넨 패션쇼가 열렸다. [사진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 위크 베를린]


이튿날부터 ‘베를린 패션 주간(BFW)’의 공식 일정이 줄을 이었다. 사흘간의 BBB를 비롯해 50여 개 브랜드가 참여해 패션쇼를 선보인 ‘메르세데스-벤츠 패션 위크 베를린’, 스트리트 패션을 소개하는 ‘브라이트’ 박람회, 윤리적인 친환경 패션을 주제로 한 ‘라베라 쇼플로어’ ‘쇼플로어 베를린’ 등 개성 넘치는 패션 행사가 도시 곳곳에서 펼쳐졌다. ‘빈티지 패션’을 주제로 한 대규모 패션쇼와 벼룩시장도 함께 열리는 등 행사는 다채로웠다. 베를린 경제·기술·연구조사부(部) 창조산업 담당관 타냐 미란스는 “총 14개 플랫폼을 활용해 도시 전체에서 일주일 내내 패션의 기운이 넘치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BFW는 패션 관계자만을 위한 행사는 아니었다. 파리·뉴욕·밀라노·런던 등 유명 패션 도시에선 패션쇼든 박람회든 패션 관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BFW 행사의 경우 70% 정도가 일반 대중의 참여를 환영했다. 베를린에 있는 누구라도 패션 현장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BFW를 주관하는 ‘베를린 파트너’의 아이카테리니 드미트리우는 “베를린 바깥에선 이 도시나 독일이란 나라의 이미지가 패션과 조금 멀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베를린이 패션 도시로 바뀐 건 BFW가 시민들에게 패션 행사를 적극 개방한 덕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BFW를 찾는 멋쟁이들이 베를린 거리에 넘쳐나자 베를린 사람들도 자극을 받아 패션에 더욱 신경 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5 ‘독일의 발렌티노’란 별명으로 불리는 패션 디자이너 기도마리아 크레츠마의 작품.
4일 오후 8시쯤 예전 동베를린 지역이던 알렉산더플라츠 지하철 역사에선 이색 패션쇼가 열렸다. 지하철 열차 통로를 무대 삼아 패션쇼가 벌어졌다. 행사에 참가한 브랜드 ‘신위버’의 크리스틴 클로즈는 “BFW가 기획한 이런 패션쇼는 우리처럼 작은 브랜드엔 대중에 브랜드를 알릴 좋은 기회다. 대규모 패션쇼를 열 여력도 없지만 연다고 해도 이처럼 주목을 받기도 어려운데 주최 측이 이색 패션쇼를 마련해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열차에 오른 사람들은 이들의 이색 패션쇼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켜봤다.



패션은 베를린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



미란스 담당관은 1일 오전 10시 베를린주 정부청사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패션 수도 베를린’이란 슬로건은 ‘창조 산업(Creative Industries·CI)’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한국·중국·일본·캐나다·브라질 등 전 세계에서 온 패션 기자, 패션쇼 기획자, 패션 디자이너 등 20여 명을 초청한 자리에서다.



베를린 주정부는 독일 연방 외교부와 함께 ‘베를린 파트너’라는 기구를 통해 ‘베를린 패션 주간(BFW)’을 꾸리고 있다. 2007년 시작해 올해 7년째를 맞았다. CI는 패션 산업을 비롯, 영화·음악·미술 등 문화 분야뿐 아니라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모든 경제·산업 분야를 아우른다. 베를린 주정부는 패션 분야를 CI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고 있다. 베를린 경제 전체에선 CI가 약 6분의 1을 차지하고 그중 약 9%가 패션 산업과 연계돼 있다. 미란스의 설명에 따르면 BFW를 찾은 인원은 첫해 7월 5만 명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25만 명으로 늘었다. 베를린에 있는 패션 관련 기업도 뮌헨·함부르크 등 독일 내 주요 도시보다 많은 3600여 개, 종사자 수는 1만8500명에 이른다. 활동 중인 패션 디자이너만도 8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베를린 파트너 측은 ‘패션 수도 베를린’이란 컨셉트가 효과를 거둬 관광객도 늘었다고 했다. 2000년 500만 명 선이던 베를린 방문 관광객이 2011년엔 980만여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거다.



2일 패션쇼를 연 독일 패션 디자이너 시시 괴츠는 “BFW는 패션 디자이너 후원에 매우 적극적이다. 베를린엔 패션쇼를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도와주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쇼만 하는 게 아니라 어디에 옷을 내다 팔 것인지, 장기적인 사업계획은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지원을 해준다. 파리·밀라노처럼 내로라하는 브랜드만 있는 곳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괴츠는 2010년 BFW가 공모한 패션 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세계 패션계에 도전장을 낼 수 있었고 현재 유럽과 중동 국가, 일본 등에 진출해 있다.



지난 25년 동안 유럽의 왕실, 미국의 유명 배우 등의 모자를 디자인해 온 디자이너 피오나 베넷은 “최근 몇 년간 패션 분야에서 베를린이 보여준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모자 제작을 의뢰하는 세계 각국 유명인들은 내게 ‘요즘 베를린에선 뭐가 제일 잘나가느냐’고 물어온다. 이것만 봐도 베를린이 패션을 중심으로 세계 유행의 거점이 돼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6 베를린의 유명 과학대학인 HTW의 패션디자인학과 재학생들의 작품도 BFW에서 선보였다.
7 복고풍을 강조한 패션 디자이너 레나 호섹의 작품. [사진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 위크 베를린]
8 독일 패션 디자이너 아이린 루프트가 만든 내년 봄·여름용 의상. [베를린 로이터=뉴시스]


포츠담 거리엔 패션 매장 100여 곳 ‘독일판 가로수길’



서울의 ‘가로수길’처럼 개성 강한 패션 상점 등이 모여 있는 포츠다머 거리로 1년 전 자신의 부티크를 이전한 베넷은 “이 거리처럼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장소가 하나 둘 늘고 있는 것도 베를린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포츠담 거리는 2000년 안드레아스 무루쿠디스가 자신의 이름을 딴 편집숍을 내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해 지금은 100여 개의 패션 상점이 거리를 따라 늘어서며 베를린의 패션 지형을 바꾼 곳이다.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하케셔마켓 근처에서 만난 한국인 미술가 김진우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베를린에선 옷가게가 별로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적었다. 하지만 몇 년 새 엄청나게 많은 옷가게·갤러리 등이 생기면서 문화적으로 훨씬 풍성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9 패션 디자이너 디미트리오스 파나조토풀루스의 브랜드 ‘디미트리’ 패션쇼. [베를린 AP=뉴시스]
우베 하이어 독일 외교부 다자문화교류국장은 “‘패션 수도 베를린’을 통해 현재 독일의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세계 각국 간의 문화교류에 이바지하는 것이 BFW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시내 중심부, 쿠르가(街) 외교부 청사에서 만난 그는 지난 월요일 시작해 한 주간 독일 수도 베를린을 물들였던 BFW가 패션 수도 베를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했다.



6일 독일 일간신문 ‘디벨트’는 1면 머리기사로 BFW가 열린 한 주간을 정리하면서 “베를린 패션이 아직 파리·밀라노와 동등하게 겨룰 만한 수준은 아니어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베를린의 현재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패션 시장에서 눈에 띌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올 7월 BFW에는 아프리카 패션쇼와 터키의 이스탄불 패션 디자이너 초청쇼 등 국제 교류 행사가 열리긴 했지만 BFW 패션쇼의 절반은 독일 패션 디자이너·브랜드로 채워졌다. 독일인 감성 특유의 절제미, 실용주의 등이 패션쇼 전반에서 두드러졌는데 디벨트는 이런 부분이 지금은 만족스러운 수준이지만 세계 유수의 패션위크와 경쟁하는 데는 약점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브랜드 ‘아우구스틴 테불’의 여성 듀오 패션 디자이너 아넬리 아우구스틴과 오델리 테불은 “패션에 관한 한 베를린은 젊은 도시여서 이곳만의 뚜렷한 개성을 확립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이 도시가 발산하는 자유와 창의적인 분위기는 패션 디자이너를 포함한 모든 예술가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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