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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먹거리 … 그 속에서 빛을 보았죠

농사꾼 목사 박순웅씨. 강원도 홍천 동면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2800평 밭농사를 짓는다. 지난 봄 심은 옥수수가 박 목사 키를 넘겨 자랐다. 신앙의 땀방울이 밴 유기농 먹거리다. [홍천=박종근 기자]
강원도 홍천 동면교회 박순웅(51) 목사의 사역지는 교회 주변의 유기농 텃밭이다. 홍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고속도로 역시 박 목사가 땀을 쏟는 목회 현장이다.



영성 2.0 ⑭ 강원도 홍천 동면교회 박순웅 목사

2800평 밭농사 … 도시와 직거래



 감리교신학대 82학번인 그는 졸업 직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강원도로 훌쩍 내려 왔다. 농촌교회 특성상 자연스럽게 농사에 손을 댔다. 감자·옥수수 등을 유기농법으로 키워 한 달에 두어 차례 서울 아현감리교회 안에 있는 농도(農都)생활협동조합 매장에 납품하는 게 그의 주요 일과다. 주일 예배 인도와 50명 안팎의 교인 관리는 2800평 밭농사 틈틈이 이뤄진다. 그만큼 그는 농사 일에 열성이다.



 3일 박 목사를 찾았다. 사실 농촌교회는 한국 개신교계의 근심거리 중 하나다. 젊은이들이 떠나 마을은 텅 비어 있는데도 넘쳐나는 신학교 졸업생들이 흘러 들어와서다. 재정 자립을 못하는 농촌교회가 상당수다. 박 목사의 옥수수밭은 어떤 믿음의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일까.



 - 농촌교회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1980년대 초반 감신대 정원이 크게 늘었다. 150명, 200명 하던 게 250명, 300명이 됐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하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감리교는 담임목사로 3년간 현장 목회를 해야 정식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다. 도시교회가 포화상태가 되자 사람들은 농촌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농촌교회 자립 돕고 믿음도 키워



 - 유기농 농사가 힘들지 않았나.



 “나처럼 처음부터 유기농 하면 상관 없다. 농약 쓰는 관행농은 말하자면 선악과를 따먹은 거다. 한 번 관행농의 편리함을 맛본 사람이 유기농으로 바꾸려면 힘들다. 제일 힘들 때는 역시 겨울내 쉬다가 봄에 다시 농사 시작할 때다. 풀어졌던 몸이 다져지는 시기다. 그럴 때, 교회 안에서는 신도이지만 밭에서는 농사 선생님인 동네 어르신이 그런다. ‘목사님, 힘들죠. 시작이 반이에요.’ 지금 내 좌우명은 ‘시작이 반이다’다. 밭에 나가 씨만 뿌리면 일의 반은 한 거더라.”



 목사보다 농사꾼에 더 가까운 인상의 박 목사는 느릿느릿 지난날을 들려줬다. 농촌 생활 초창기 박 목사는 도시교회에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개설했다. 농사 짓는 교인들의 수익 증대를 위해서였다. 차츰 농약 쓰는 관행농에 문제의식이 생길 즈음 유기농업의 선구자 원경선(올 1월 작고)씨가 만든 정농회(正農會)를 알게 됐다고 했다. 박 목사는 “당시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박 목사는 95년 직접 농사에 뛰어들었다. 도시로 떠난 교인의 밭 1500평을 맡았다. ‘농사꾼 목사’ 이력의 시작이다.



 - 왜 유기농인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서 농사에도 영성이 있어야겠다 싶었다. 투박해도 퇴비와 미생물로만 생산한 먹거리에 건강한 생명력이 깃들지 않을까. 인공을 가미해 보기 좋고 탐스런 음식이 예수님 최후의 만찬 식탁에 오르지는 않았을 거다.”



10여 개 교회 800명 교인이 조합원



 하지만 박 목사는 “안정적이지 않은 직거래 장터에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99년 뜻맞는 목회자들과 함께 농도생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농촌교회의 농사꾼 교인이 생산한 안전한 먹거리를 도시교회의 신자들이 구입해 건강과 소득 두 가지를 한꺼번에 챙기자는 취지다. 현재 농촌과 도시의 10여 개 교회, 800명의 교인이 조합원이다. 박 목사는 생협의 이사장이다.



 물론 생협이 떼돈 버는 사업은 아니다. 박 목사의 살림은 빠듯하다. “1년 사례비(헌금 수입)가 1500만원, 농사 수익이 1000만원,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아내가 예배당용 십자가를 제작해 버는 돈이 1000만원 정도”라고 했다.



 “교인들만 바라 보는 딱한 처지의 후배 목사들에게 내가 그럽니다. 나처럼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으라는 게 아니다, 작은 텃밭이라도 일궈 거기서 난 걸 주변과 나눠보라고요. 종교의 본질이 뭐겠느냐. 우리 마을에 이런 목사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아니겠느냐고요.”



 농사꾼 목사의 흙 냄새 진득한 목회철학이었다.



홍천=신준봉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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