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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최고존엄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북한의 ‘최고존엄’이 박근혜정부 들어 된서리를 맞고 있다. 남북관계가 꼬일 때마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북한이 휘두르던 카드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급기야 10일 열린 개성공단 당국회담에선 남측 수석대표가 북측에 “귀측(북)이 최고존엄 모독을 얘기했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최고존엄이 있다”고 일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개성공단 사태 재발 방지 약속 요구에 북측 단장이 최고존엄 모독 운운하며 궤변을 늘어놓은 데 대한 반박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같은 날 언론사 논·해설실장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북한이) 존엄이 어떻다고 하면서 우리가 옮기기도 힘든 말을 하는데, 존엄은 그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한테도 존엄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이 회담 테이블을 통해 북측에 전달됐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북측 단장이 제대로 된 대응을 했다는 전언은 없다. 남측의 전례 없는 ‘최고존엄’ 맞대응에 북한 당국이 적잖이 당혹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게 회담 관계자의 귀띔이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지칭하는 최고존엄 문제가 본격 거론된 건 김일성 사망(1994년7월)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을 잡으면서다. 정권을 수립하고 권력투쟁을 거쳐 확고한 권력을 잡았던 김일성 시대가 아닌 상대적으로 불안했던 김정일 정권에서 수령의 권위가 강조된 것이다. 최고존엄의 아이러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북한은 툭하면 최고존엄을 꺼내들었다. 2004년 4월 금강산 이산상봉 때 남측 관계자가 바위에 새겨진 ‘천출명장 김정일’ 글귀를 보고 “천민 출신이란 의미냐”고 농담을 하자 상봉을 중단시킨 게 대표적인 경우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북한에 사과하고 교류를 이어갔다.



 김정은 시대 들어 최고존엄 주장은 더 거세지고 빈번한 형국이다. 4월 개성공단 문을 일방적으로 닫아걸면서도 “우리의 최고존엄을 훼손했기 때문”이란 명분을 내걸었다. 개성공단 5만3000여 명 북한 근로자의 임금(연간 8000만 달러 수준)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통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비판 여론에 대한 반발이다. 지난달엔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에 대해 “담화록 공개는 우리 최고존엄에 대한 우롱”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최근엔 예봉이 꺾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화·교류의 재개 시점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 최고존엄 훼손에 대한 사과 주장은 한참 후순위로 밀렸다. 마치 존엄 문제는 회담이나 공단 가동을 중단하기 위한 소품에 불과했으니 덮고 넘어가자는 분위기다.



 북한의 노동당 간부들은 최고존엄의 부메랑까지 경험하고 있다. 서울발 최고존엄은 ‘남조선 대통령’이 아니다. 불과 석 달 전 “살아남아 후회할 놈도 없게 될 것”이라며 막말을 퍼붓던 북한의 행태를 똑똑히 기억하는 국민들이다. 갑작스러운 대화 제의와 공단 재가동의 요구에 의아해하는 5000만 명의 남측 최고존엄에 북한의 최고지도부와 노동당 간부들은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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