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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99> 금 모으기 운동

1997년 12월 10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가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 발족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 새마을부녀회 회원과 주부 등 400여 명이 참석했고 금 2445돈, 은 133돈, 미화 3200달러 등을 모금했다. [중앙포토]


회담 주최국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농담을 꺼내기 시작했다. 정상들은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도 농담을 이어갔다. “정말 덥네요. 여기선 건물 안에서만 에어컨을 틀고 있지만 베이징에선 실외에서도 에어컨을 열심히 틀고 있습니다.”

아세안 정상들 향해 "금 가락지 행렬 보셨습니까"
97년 YS 대신 간 정상회담
"결혼 반지까지 … " 연설
대선 직후 여섯 번째 사표



 12월이었지만 말레이시아는 더웠다. 그는 한겨울인 베이징의 날씨를 에어컨에 빗대 농담을 한 것이었다.



 나도 한마디 해야겠다 싶었다. 고촉통(吳作棟) 싱가포르 총리를 보며 말을 꺼냈다. 그는 나보다 키가 한참 컸다. “내 성이 ‘높을 고(高)’자입니다. 발음으로만 따지자면 고촉통 총리와 성이 같습니다. 그래서 고촉통 총리께서 키가 크신가 봅니다.”



 고촉통 총리를 비롯해 참석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회담 시간이 되자 13개국 정상이 차례로 공식 회의장에 들어섰다. 분위기는 심각했다. 자리에 앉은 정상들은 하나같이 내 얼굴을 살폈다. 그들이 어떤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지는 뻔했다. ‘너희 나라가 거덜 나게 생겼는데 어떻게 돼가는 거냐’라는 표정이었다. 내 발언 차례가 돌아왔다. 준비한 연설문은 한·아세안(ASEAN) 협력 관계에 대한 내용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여러분들이 한국의 외환위기에 대해서 걱정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CNN 뉴스를 보셨습니까.”



 다들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말을 이어갔다. “한국의 젊은 부부들이 결혼 기념 반지를 내놓는 등 전 국민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려고 금을 모으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외환위기를 충분히 극복하고 남을 국민성을 갖고 있습니다.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것입니다.”



 회담장 분위기가 일순간 숙연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장쩌민 주석이 그 일을 기억에 깊이 담아뒀던 것 같다. 1년 후인 19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정상회담에서 장쩌민 주석이 금 모으기 운동에 감명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어느 정도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미뤄뒀던 일을 해야 했다. 사표를 썼다.



 고민이 깊었다. ‘국난이 닥쳤다. 정권 중반에 외환위기를 맞아도 극복하기가 어려운데 정권 교체기에 일이 발생했다. 물러나는 정부와 새로운 정부 간의 진심 어린 협력이 있어야 이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



 12월 19일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단둘이 다시 만났다. 먼저 정상회담 결과를 보고했다. 그리고 사표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내가 쓴 여섯 번째 사표였다.



 “나라가 백척간두(百尺竿頭·긴 장대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움)의 위기에 있습니다. 총리로서 이번 위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고 합니다. 이 사표를 받아주시고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경제통을 내밀히 천거 받으셔서 신임 총리로 임명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건 안 돼요.”



 김 대통령은 짧게 답했다. 말투는 단호했다. 그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그래서 다시 얘기했다.



 “현 정권과 차기 정권 간의 긴밀한 협조체제가 중요합니다. 비상경제대책위원회 같은 협력기구를 차기 정부와 공동으로 구성해 운영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인물 - 조해녕 당시 내무부 장관

새마을부녀회서 방향 잡아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




조해녕(70·사진) 전 대구시장은 ‘금 모으기 운동’의 시작을 지켜본 인물이다. 총무처 장관,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회장을 역임했고 1997년 고건 총리 시절 내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 금 모으기 운동의 시초는 무엇인가.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보유액이 바닥나기 시작한 1997년 말의 일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국무회의 후 국무위원 휴게실에서 고건 총리에게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 등에서 추진한 ‘3조원 저축운동’의 성과를 보고했다. 그러자 고 총리가 ‘구한말의 국채보상운동에 필적할 사업이다. 외환위기 극복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어떻게 금 모으기 운동으로 번지게 됐나.



 “그 자리에서 내가 정행길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 회장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고 총리가 한 당부와 치하의 말을 전했다. 새마을부녀회는 장롱 속에 있던 돌반지 등 금붙이를 모으고 해외여행 후 쓰다 남은 외화 잔액으로 외화 통장을 만들어 모으자고 캠페인 방향을 설정했다. 그렇게 1997년 12월 새마을부녀회 주도로 금 모으기 운동의 시초인 ‘애국 가락지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다.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졌다. 국무위원은 봉급의 20%, 총리는 30%를 반납하는 등 정부도 이 운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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