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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브라질 국민이 월드컵 반대 ?

이안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브라질 국민이 2014 월드컵의 자국 개최를 반대하는 데모를 벌인 것이다. 그것도 2013 페더레이션컵 결승에서 자국 팀이 스페인 팀을 완패시키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이는 가톨릭 신자들이 새 교황 선출을 반대하며 바티칸 외곽에서 데모를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축구가 브라질 사람에게 갖는 의미는 요리가 프랑스 사람에게 갖는 의미와 마찬가지다. 차기 월드컵을 브라질에서 개최하는 것은 비록 130억 달러라는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2016년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월드컵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교육, 더 나은 보건 서비스, 더욱 인간적인 경찰을 원한다”고 말하는 19세 브라질 청년을 사로잡은 것은 무엇일까. 이들이 저버린 것은 축구 자체가 아니다. 축구가 변해버린 오늘날의 모습이다. 축구는 이제 수십억 달러의 비즈니스이며 멋쟁이 부호의 특권적 소유의 대상이자 부패한 정부와 국제 스포츠 기구의 사치스러운 장식품이다.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축구는 대중적 스포츠였다. 지방의 노동자 계급에 속한 소년들은 자기네 클럽을 위해 경기를 했으며 팬들은 열광적으로 특정 클럽에 충성했다. 지지팀은 사람들의 정체성의 일부였다. 이는 지금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뭔가 핵심적인 것이 달라졌다.



 축구는 여타의 상업활동과 마찬가지로 글로벌화했다. 새로운 소유권 규정과 케이블 TV, 후원 광고 덕분에 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지자는 영국보다 중국에 더 많다. 축구팀은 다국적 프랜차이즈처럼 변했다. 세계 전역에서 코치나 선수를 스카우트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브라질의 시위에서 나타난 ‘축구로부터의 소외’를 설명할 수는 없다. 축구보다 앞서 세계적 영향력을 나타낸 사례는 올림픽이었다. 글로벌화한 스포츠의 부패를 이해하려면 올림픽부터 살펴보아야 하다.



 현대 올림픽의 아버지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프랑스의 귀족으로서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자국 젊은이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했다. 그에게 올림픽의 목적은 운동경기를 통해 세계 평화와 유대라는 고상한 이념을 구현하는 데 있었다. 이 같은 이상이 얼마나 쉽게 부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에 의해 이미 입증됐다.



 정치의 개입에 못지않은 문제는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사실이다. 경기장, 대중교통 인프라, 호텔을 건설하기 위한 계약이 그런 예다. 이는 필연적으로 뇌물과 리베이트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부와 특권 속에서 살고 있는 국제 엘리트, 즉 올림픽 임원이 탄생했다.



 축구는 이제 올림픽과 마찬가지가 됐다. 게다가 돈은 더 많이 든다. 축구 클럽은 러시아나 중동에서 새로이 부자가 된 거물의 신분을 상징하게 됐다. 그 결과 오늘날 이 아름다운 게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개발업자, 건축가, 정치인, 재계 거물, 국제 스포츠 임원들이다. 축구는 그들의 권력·부·특권을 강화해준다. 하지만 일단 화려한 경기를 개최하고 나면 그들은 떠나버린다. 주최국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데 말이다.



 대부분의 인구가 제대로 된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나라에 이것은 특히 화가 나는 상황이다. 수백만 명의 브라질 사람은 자신들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다. 이들은 축구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현대 축구의 그로테스크한 시장 조작에 항의한 것이다. 이들은 축구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시도하는 중이다. ⓒProject Syndicate



이안 부루마 미국 바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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