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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재판도 열기 전 "엄벌" 요구한 예비 법조인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제목 :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과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 결과 은폐 사건에 관한 의견서



 수신 : 채동욱 검찰총장



 발신 : 43기 사법연수생 95명 일동



 내용 : 결코 선처해선 안 될 매우 중대한 헌정 파괴 범죄임을 감안해 합당한 처단을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힘써달라. 철저히 수사해 국민을 납득시키고 사건에 개입한 다른 기관이 있다면 엄중 처단해 달라 ….



 지난 4일 오후 사법연수원생 95명이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검찰청 민원실에 제출한 의견서의 개요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지난달 14일 원세훈(62) 전 국정원장,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여야가 국정조사에 전격 합의한 상태에서 사법연수생들이 집단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 처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공무원 신분인 사법연수원생이 정치적 사건에 대해 집단으로 의견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의견서를 본 한 부장검사는 “의견서 형식을 띠었지만, 내용은 ‘똑바로 수사하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견서 작성을 주도한 한 사법연수원생은 “정치적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예비 법조인으로서 검찰총장에게 보낸 순수 의견서”라며 “일반 시국선언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순수 의견서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 의혹 사건은 여야 간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이다. 이번 집단행동을 두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더욱이 이 사건은 이미 검찰이 수사한 뒤 기소까지 했다. 당사자들이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검찰총장을 상대로 한 집단행동은 자칫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다. 사법연수원 교수 출신의 한 법관은 “사법연수원생은 앞으로 판검사가 돼 수사·재판을 하거나 변호사가 돼 피고인을 변론할 예비 법조인”이라며 “재판도 열기 전에 엄중 처벌하라는 주장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유죄라고 예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법조인은 공정한 잣대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불길을 잡는 소방수와 비슷하다. 만약 예비 법조인들이 민감한 검찰 수사마다 건건이 의견서를 낸다면 소방수가 아니라 불길을 키우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헌법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것은 국민의 공복으로서 불편부당하게 봉사하라는 의미다. 의견서를 받아 든 채동욱 검찰총장(연수원 14기)이 30년 후배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줄지 궁금해진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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