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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논란 속에 길을 잃다

고정애
논설위원
이 글은 혼돈스러울 것이다. 혼돈 속에 있으므로.



 #1. 나름 우스개다. 빈집이 있다. 2명이 들어갔다가 잠시 후 3명이 나왔다. 세 학자가 지켜보곤 말했다.



 “측정오류가 있는 게 틀림없어”라고 했다면 물리학자다. “아냐, 생산을 한 게 분명해”라고 한 건 생물학자다. 수학자의 말은 이랬다. “한 사람이 더 들어가면 저 집은 다시 비게 될 거야.” 사람을 숫자로 보면 가능한 논리다. 2에서 3을 뺐으니 -1인데 여기에 1을 더하면 0이 되는 산수 말이다. ‘한 사람이 더해져 빈집이 된다’는 괴이한 진술도 수학자에겐 타당하다.



 이 얘기가 떠오른 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해석 논란 때문이다. 읽었다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서로 국어 실력을 깎아내리다 ‘사심(私心) 읽기’라며 도덕성까지 의심하는 수위로 갔다. 그러나 진정 의혹의 대상은 각자의 프레임이다. 우린 결코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 프레임 속에 있는 한.



 #2. “극히 당파적이다. 타협이 미국 정치 안정의 근간이었는데 이젠 원칙을 버리거나 파는 행위로 치부된다. 이념정치를 하려면 프랑스로 가라.”(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 2012년)



 “말들이 들에 가득하되 모두 제가 잘났다 하며 사견으로 횡설수설하고…정사(政事)는 뜬 의논에 어지러워진다…묘당에서는 건의하는 게 하나도 없고 육조는 다만 문부(文簿)의 규칙만을 지킬 뿐이며 대간은 자잘한 일만 세밀히 들추어 남의 묵은 악을 찍어냄을 일과로 삼고….”(율곡 이이, 1582년)



 딱 지금의 정치다. 한국 정치가 글로벌화한 건가, 아니면 430여 년 만에 다시 붕당정치의 맥을 잇게 된 건가. 시공간의 뒤틀림이 아득하다. 그래도 분명한 게 있으니 그간 정쟁과의 차별화다. 과거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결과적 국익 침해였다. 마땅히 처리할 사안에 손을 안 대거나 늦게 대는 방식 말이다. 이번엔 작위다. 드러내놓고 정파 이익을 국익보다 앞세웠다. 국가정보원이 그랬고 국회도 그랬다. 어느새 그리 대담해졌나.



 #3.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승자가 있을 수 없는데….” 2일 대화록 공개 여부를 결정한 본회의에 불참한 김영우 새누리당 의원의 토로다. 어디 다른 꿈만 꾸었겠는가. 국정원의 댓글 작업이 3대 권력기관(국정원·경찰·검찰)을 흠집 내고 국론 분열 사안으로 커지도록 ‘활약’한 여러 인물도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갈등이 한몫했다. 그 이면에 검찰조직 논리가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직후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서해NLL(북방한계선)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고 주장할 때 이미 그의 주머니엔 권영세 주중대사의 녹취파일(“집권하면 NLL 까고”)이 있었다. 국정원이 대화록을 공개할 걸 예상했나. 박근혜계로 국회 정보위원장인데 실제론 정보 유출, 또는 유출 추진 위원장쯤 되는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의 처신은 어떤가.



 ‘참군인’일 순 있으나 정보 수장(首長)인지 애매한 남재준 국정원장은 또 뭔가.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 없었다? 상상하기 어렵다.



 진정 눈길이 가는 이들은 그간 눈길을 피해온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각각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외교수석, 합참의장이었다. 그땐 뭐 했고 지금 뭐 하나.



 #4.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을 했듯 보수 대통령만이 서해를 풀 수 있다.” 최근 한 보수 인사의 말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도 지난해엔 “북한이 NLL을 존중하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젠 막혔다. 대화록 공개가 박 대통령 본인의 과거와 미래를 옭아매는 결정이 됐다. 그렇다고 서해가 계속 ‘동아시아 최대의 화약고’로 남아야 하나.



 답, 명료치 않다. 그저 혼돈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뿐.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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