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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 "유언 남기고 북한서 방송? 가길 원치 않았는데…"

[앵커]

방송 외길 50년…김동건 아나운서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아나운서 직업에 큰 자부심…정치 뜻 없다"
"이북서 피난, 친어머니 평양 분…묘 찾아가고파"

방송인생 50년. 우리들 세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이산가족 찾기, 가요무대까지…대한민국 대표 프로그램을 맡아온 영원한 현역, 정치권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한 눈 팔지 않고 방송 외길을 걸어온 국민 아나운서, 살아있는 방송계의 전설 김동건 아나운서를 만나 파란만장한 방송 인생 50년을 돌아봅니다.


Q. 방송인생 50년 축하연 열려?
- 신문에 났다. 누구만 부르고 누군 안 부르고 할 수 없었다. (웃음)

Q. 방송 장수 비결은?
- 다분히 운이 좋았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한 것도 운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권력있는 자리였으면 한 사람이 오래하게 뒀겠는가. 국회의원도 4년이고 대통령도 5년이면 된다. 그러나 아나운서는 평범한 자리다. 오래한 것은 운이 좋았다. 아프지 말아야 하고, 계속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운이 좋았다.

Q. 정치권에서 러브콜 받은 적 있나?
- 워낙 고지식할 정도로 직업에 집착한게 다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두번 있었지만 정치에 뜻이 없어 고사했다.

Q. 과거 방송 이야기
- 동아방송에서 2년 근무하고 당시 TBC의 전신인 DTV에 스카웃되서 왔다. 그때는 신세계백화점 옥상에 가건물을 짓고 방송을 시작했다. 73년 초까지 근무했다. 겨울에도 더웠다. 옛날 조명은 굉장히 뜨거웠다. 좋은 스튜디오서 30분 뉴스하면 옷 위로 땀이 흐를 정도였다. 당시 카메라맨 두명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더워서 다 벗고 큰 양푼에 물을 담아 발을 담갔다. 몇번 방송하면 못 견뎌서 나중에는 바지를 벗고 위에는 양복입고 넥타이하고 방송을 했다. 그래도 그 더위를 못 견딜 정도였다. 요즘은 열 안나는 조명기구로 발전하고, 냉방도 되니까 덜 덥다.

Q. 임백천과의 인연은?
- 대학교 다닐 때부터 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간다. 과거에는 귀공자의 미남이었다. 숙명여대 개교기념일에 사회를 보는데 피날레에 임백천이 나왔다. 기타치면서 노래하는데 대단히 잘했다. 그후로 방송국에서 많이 같이 일했다.

[임백천 : 대학 졸업후 건설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방송사업이 좋아진다고해서 김동건 아나운서를 찾아가 상의 드렸다. 그때는 건설회사가 봉급도 좋아서 그냥 다니라고 하셨다.]

- 임백천이 방송에 대한 의욕이 강했다. 그래서 내가 그 당시 교양국장하시던 김경동님께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켜줬다.

[임백천 : 어디가서 만나면 꼭 커피값, 밥값을 다 내주신다.]

Q. 3명의 어머니, 사연은?
-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내가 이북출신이라고 이야기한 적 있다. 우리 어머니는 평양, 아버지는 사리원 분이었다. 어린시절 그래서 평양과 사리원을 오가면서 컸다. 날 낳으신 친어머니가 계시는데 세살때 돌아가셨다. 이후 이모가 나와 형을 입적해 키워주셨다. 그 분은 내가 85년 평양에 다녀와서 86년에 돌아가셨다. 또 양어머니가 또 한 분 계시다. 이북에서 피난오신 분인데 그분이 저를 사랑하셔서 아들로 삼으셨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만 생존해 계신데 그분이 아프셔서 마음이 아프다.

Q. 이북 출신, 이북에 가족이 있나?
- 사촌 누이가 있다. 같이 놀았던 어린시절 기억이 생생하다. 그 누이는 피난 못 왔다. 누이도 누이이지만, 70년 넘게 못 가면 어머니 묘에 가보고 싶다.

Q. 평양에서 최초로 공연 진행?
- 분단 40년 만에 가서 공연을 진행했다. 지금은 다녀온 사람이 많았지만 그때는 처음이라 분위기가 살벌했다. 그래서 생모 묘지도 못 가봤다.

Q. 북한을 떠나기 전 심정 어땠나?
- 내가 가기 전에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그때 당시, 전쟁이 나면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들만 소집에서 제일 먼저 처형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이북 체계에 대해 욕한 적이 있는데 그걸 두고 주변 사람들이 이번에 가서 못 오면 어떡하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농담 삼아 내가 못 오면 우리 집사람과 애들 부탁 한다고 하긴 했다. 그때는 굉장히 힘들었다. 나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왔고 북한 체제에 비판을 많이해 안가고 싶다고 했지만 위에서 절대 안된다고 나를 보냈다.

+++

김동건 아나운서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이 붙습니다. jtbc의 전신이죠 tbc에서는 스타를 출연자로 하는 토크쇼를 최초로 진행하셨고, '우리들 세계'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셨어요?

Q.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30년 이상 진행?
- 얼마 전 한국일보에서 전화가 왔다. 30년 이상 했으니 공로패를 주신다는 것이었다. 지금와서 새삼스럽게 받기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사회를 맡은 김현욱 후배 아나운서가 자기가 공로패를 드려야 하니까 꼭 오시라고 해서 갔다.

Q. 기억에 남는 일화는?
- 한 30년 이상하면 매년 기계적으로 하게 된다. 친구들이, 미녀들에 둘러싸여 얼마나 좋겠냐고 하는데,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얘기다. 미스코리아 한 두 사람하고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말 만한 여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바쁘게 하루종일 뛰어다는 것을 보면 사실 아무 느낌이 없다.

Q. 미스코리아 중 누가 제일 예쁜가?
- 미스코리아들이 민낯이 없다. 화장을 하면 다 비슷비슷하다. 심사위원도 많이 햇는데 내가 진으로 뽑은 사람은 안됐다.

Q. '가요무대' 오프닝 멘트
- 처음 가요무대하고 몇 달 지나니 전 세계에서 편지가 왔다. 신청곡이 너무 많이 왔다. 미국와 중동 근로자들이 특히 편지를 많이 보냈다. 그래서 오프닝 멘트에서 그분들께 인사를 했다. 그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임을 느끼게 해준다고 하셨다. 그 이후에 철도청,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등에서 자기들도 인사멘트에 넣어달라고 했다. 너무 청탁이 많아서 그냥 다 뺐다. 그러자 미국 중동에서 왜 그 멘트를 뺐냐고 다시 편지가 왔다. 그래서 다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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