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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걱정 너무 많아 피곤하다는 34세 주부



Q 결혼한 지 7년 된 34세 주부입니다. 유치원 다니는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어요. 항상 별일 아닌 것에도 깜짝 놀라는 데다 매사 걱정이 많은 게 문제입니다. 남편이 운전할 때 조금만 빨리 달려도 너무 무서워 소리를 지릅니다. 거기에 남편이 놀라 접촉 사고를 낸 적도 있습니다. 아이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 표정이 안 좋거나 울려고 하면 제가 더 놀라 ‘무슨 일이냐’고 큰소리를 쳐 아이가 더 불안해합니다. 언론에서 나쁜 음식이라고 나오는 건 당장 다음 날부터 먹지 못합니다. 남편은 ‘이제 먹을 게 하나도 없다’며 기가 막히다네요. 머릿속에 이렇게 늘 걱정이 가득 차 있으니 너무 피곤합니다. 걱정 안 하고 편하게 살 방법 없을까요.

불안이 문 두드릴 땐 인사하세요 "찾아줘서 고맙구나"



A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은 예민한 사람입니다. 예민한 게 절대 나쁜 건 아니죠. 달리 말하면 섬세한 거니까요. 둔하면 덜 불안하겠지만 전 차라리 불안한 게 낫지 둔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둔하면 이 세상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테니까요.



 사실 쉽게 불안한 사람의 감성 시스템이 더 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이란 미래 위험에 대한 경고 신호인데, 이 경고 시스템이 예민하다는 건 내 주변 환경과 마음 내부에서 보내는 다양한 신호를 정밀하게 감지하고 있는 겁니다.



 이지스(aeg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방패입니다. 그 이름을 딴 구축함인 이지스함은 동시에 수천 개 목표를 탐지·추적하고 다중 목표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건 이지스급 방패 시스템이 내 뇌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과도하게 사용되면 뇌는 지칩니다. 방패가 오히려 삶을 제대로 즐기는 걸 방해하는 셈이랄까요.



 만성 피로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혹시 간이 나쁜가, 아니면 암이라도 생긴 건가 하는 걱정에 숱한 검사를 하지만 정상이 대부분입니다. 현대인의 만성 피로는 상당 부분 마음이 지쳐서 옵니다. 고성능 이지스함의 시스템이 다운되는 것과 같은 거죠.



 생존을 위해 열심히 뛰다 보면 불안이 늘어납니다. 이런 불안감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합니다. 제때 충전해주지 않으면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감성에너지가 고갈됩니다. 문제는 지치면 뇌가 더 예민해져 생존 시스템이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생존을 위해 신경을 더 곤두세우는 겁니다. 더 불안하고 더 지치는 악순환이 일어나 피로가 누적됩니다. 만성 피로가 오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큰 사건·사고만 스트레스 요인이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자잘한 게 장기적으로 쌓일 때 균열이 더 크게 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피로가 쌓이니 환자 이야기 듣기가 어려울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지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내과 전문의의 강의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소변에 거품이 많아지면 단백뇨를 의심해야 하며 이게 신장질환의 시작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알 법한 의학 상식이었는데도 갑자기 불안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맞아, 신장 질환의 시작인 거야, 10년 안에 신장 이식을 해야 할 수 있겠군.’ 부정적 생각의 강박적 반복인 반추(反芻)가 계속됐습니다. 마음의 불안이 이미 저를 신장질환자로 만들어 수술대 위에 올라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음날 소변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릅니다.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자 마치 새 삶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불안감이었던 거죠. 신장병이 아니라 불안감 때문에 쏟아져 나왔을 스트레스 호르몬이 수명을 하루라도 줄여놓았을 겁니다.



 현대인이 흔히 불안에 대처하는 전략은 조정 전략(control strategy)입니다. 조정이란 외적 요인을 통제하거나 그 요인에 대한 불안 반응을 억누르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세상의 불안 요인을 통제해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의료 기술이 누구나 백수를 바라보게 만들었으나 걱정하는 날짜 수만 늘려 놓은 느낌입니다.



 이에 비해 불안을 억누르는 게 좀 더 효과적입니다. ‘별일 없이 다 잘 해결 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사고로 불안이 만드는 부정적 생각을 치워 버리는 겁니다. 과거에는 이 방법이 꽤 잘 들었지만 요즘은 효과가 떨어졌습니다. 감성에너지가 고갈돼 찍어 누르는 힘이 약해진 데다 거짓 긍정에 내성이 생겨 이런 이성의 협박이 통하지 않는 거죠. 부정적 생각에 계속 긍정적 압력을 가하는 건 마치 한쪽 귀에는 행복한 이야기만 나오는 라디오를 듣고 다른 한쪽 귀에는 우울한 이야기만 나오는 방송을 듣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우리를 내면적으로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지치고 피곤한 현대인에게 효과적인 불안 대처 방법은 수용 전략(acceptance strategy)입니다. 불안 신호를 찍어 누르거나 긍정적 생각으로 억지로 마음가짐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겁니다. 불안은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미래를 걱정하는 참모의 조언 정도인 거죠. 그 조언에 내 삶의 방향을 마구 흔들어 놓으면 삶이 고달프고 불행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그저 ‘생각아 고맙다’란 수용전략 기술이 효과적입니다. 불안한 마음과 생각이 떠오르면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느낌으로 가볍게 넘기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암에 관한 정보를 얻은 후 불안해지면 ‘생각아 고맙다, 내 건강 걱정해줘서, 운동 열심히 하고 건강검진 꾸준히 할게. 생큐 고민’이라고 불안한 마음에 이야기를 걸어주는 겁니다.



 삶을 되돌아보면 수많은 불안한 생각에 걱정한 적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중 실제로 현실 속의 불안으로 전환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불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걱정은 실제 문제가 생긴 때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불안한 마음에 행복이 깃들 수 없기에 지나치게 걱정하고 살면 삶이 허무해집니다.



 여기서 수용이란 흡수는 아닙니다. 불안을 억지로 조정하지 말고 귀엽게 봐주자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불안한 마음은 ‘고마워’ 하며 가볍게 대하면 재미가 없는지 그 힘이 약해져 버립니다. 거꾸로 밀어버리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갖다 붙여 싸움을 걸면 블랙홀처럼 그 에너지마저 흡수해 점점 난폭해집니다.



 우리는 사회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규정(틀)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 틀은 또 다른 불안을 만들고 우리는 또 다른 틀을 만들어 그것을 가두려고 합니다. 잠시 그 치열한 삶에 여유를 둘 때 역설적으로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이번 주는 가볍게 산책을 즐기며 ‘생각아 고맙다’를 연습해 봅시다. 불안이 슬며시 내 머리에 똬리를 틀 때 ‘생큐, 나의 걱정 참모’ 하자고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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