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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사모님 탈옥' 누가 방조했나

권석천
논설위원
'사모님 탈옥' 누가 방조했나



역시 미국은 한국의 미래인 걸까. 1970년대 미국 영화 ‘대부(代父)’엔 변호사가 집사로 나온다. 마피아 대부인 돈 비토 콜리오네(말런 브랜도)가 입양해 키운 톰 하겐(로버트 듀발)이다. 그는 패밀리를 위해 온갖 뒷설거지를 해주지만 의사 결정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피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다. 한국 드라마에도 ‘집사 변호사’가 등장한다. 재벌가를 다룬 미니시리즈는 예외가 없을 정도다. 경영권 다툼, 탈세, 뺑소니도 처리해준다. 현실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변호사들은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변호사가 불법이나 돕는 직업인 양 그려지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방송작가, 나아가 대중이 특정 직업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의 핫 이슈는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이다. 2002년 이화여대생 하지혜씨 살인을 교사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중견기업 회장 부인 윤모씨가 그 주인공이다. SNS에 분노가 일기 시작한 건 윤씨가 2007년부터 형 집행정지를 9차례 연장해가며 병원 특실에서 지내온 사실이 방송 보도로 알려지면서다. 네티즌들은 ‘유전무죄의 전형’이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법원 내 정의의 여신상 손에 저울이 아니라 돈을 쥐여줘라. 그게 대한민국 법치에 맞다”고 개탄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병원과 검찰의 검증 기능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씨에게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그가 동료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은 이러했다고 한다. “제가 제출한 진단서 의견만으로 형 집행정지가 결정되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형 집행 등 법률적 문제는 법원이나 검찰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진단서만으론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는다. 윤씨는 어떻게 무려 4년씩이나 교도소 밖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인가. 의혹의 초점은 법조계 내부로 옮겨가고 있다. 형 집행정지를 신청했던 변호사들은 “담당 검사와 고교·대학·사법연수원 동기이거나 검사 출신”(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합법적 탈옥’이란 비판에 직면한 형 집행정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결정 과정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데 있다. 외부인이 참여하는 형 집행정지 심의위원회 제도가 2010년 도입됐지만 윤씨에 대해선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의사와 변호사, 검사가 서로에게 책임 일부를 넘기며 ‘사모님의 탈옥’을 사실상 방조한 셈이다.



 검찰이 뒤늦게 심의위원회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형 집행정지 대상자와 결정 과정을 공개하는 것 같은 과감한 조치 없이는 달라질 게 없다.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지는 정의(Justice in the shadows)는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을 일으킨다.”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을 쓴 미국 변호사 켄들 코피가 ‘개방된 정의(Open justice)’를 강조하는 이유다.



 그간 불투명한 법 절차는 법조인들에게 적당히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왔다. 그 귀결이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한’ 현실이다. 음습한 저지대는 형 집행정지 말고도 많다. 구속 집행정지, 보석, 가석방, 감형, 사면…. 이제 윤씨 사건을 향한 분노는 사법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국선변호사를 꿈꾼 법학도 하지혜씨가 바라던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대부’에서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는 조직의 배신자에게 이런 말을 내뱉는다. “잘못이 없다고 말하지 마. 그건 내 지성을 욕되게 하는 거야.” 그렇다. 윤씨 형 집행정지 관련자와 기관들이 “내 손은 깨끗하다”며 편리한 형식논리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비리가 아니라면 무능이나 과실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이 사과와 반성의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우리의 지성은 계속 모욕당하는 수밖에 없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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