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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박근혜의 '유러피언 드림' 노동을 만나다

이하경
논설실장
박근혜 대통령의 탁월한 장점은 목표를 단순화시킨 뒤 일관성을 갖고 추진한다는 점이다. 이 정부 절체절명의 과제인 ‘고용률 70% 달성’만 해도 그렇다. 10년여 동안 64% 수준에 머물고 있는 고용률을 집권 5년차인 2017년에 7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총리 이하 모든 부처가 참여해 갖은 방법을 다 내놨다. 올해 연간 평균 2092시간인 연간 근로시간을 1900시간으로 줄이고 시간제 일자리를 93만 개 늘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성장만으로는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우니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눠 갖도록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얘기다. 2020년까지는 연 1800시간 이내로 규제하겠다고 한다.



 이런 숫자의 행간을 음미하면 흥미로운 코드가 발견된다. ‘유러피언 드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일하는 현실을 개선해 유럽연합(EU)의 목표치인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건 유럽 국가를 염두에 둔 발상이다. 젊은 시절 프랑스 유학을 했던 박 대통령이다. 그래서일까.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이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인류 최선의 노력이라는 미국의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에 공감하는 것 같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고용률을 5% 정도 올려 70%를 달성한 유럽의 두 나라 네덜란드와 독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는 박 대통령이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방문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나라다. 이 나라는 1982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노조는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기업은 근로시간을 5% 단축하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바세나르 협약’을 성사시켰다. 마이너스 성장과 두 자릿수 실업률로 신음하던 유럽의 문제아 네덜란드는 강소국으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이 약속대로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매년 47만6000개씩 5년간 238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낸다면 삶의 질과 행복지수는 높아지고, 국가의 체질은 바뀔 것이다. 문제는 지금대로 흘러간다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노사 간에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노조는 임금 감소를 받아들이고 기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목표에 접근할 수 있는데 모두 소극적이다. 노사 양쪽을 설득할 강력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고용률 70%는 달콤한 천사의 속삭임이다. 반면 노사를 설득하는 작업은 정치 생명을 걸어야 할 정도의 위험한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 없다면 총리든 경제부총리든 직을 걸고 전력투구해야 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다. 대기업 노조가 중심이 된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먼 발치에서 구경만 하고 있다. 누구도 이들을 설득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노동계에도 배신자 소리를 듣더라도 전체가 살기 위해 양보하자고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혹적인 목표는 주어졌는데, 실행의 주체가 전무한 것이다.



 이 정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네덜란드의 1982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주역은 루버스 총리. 43세의 혈기 방장한 이 중도 우파 정치인은 과도한 복지비용으로 비틀거리던 나라의 상태를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는 “정부부터 솔선수범하겠다”며 공무원 임금을 삭감해버렸다. 노사가 타협하지 않으면 정부가 개입하겠다고 선언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러자 불과 이틀 뒤 산업고용주연합회장이 노조총연맹 대표를 집으로 불렀다. 노조는 임금을 삭감하고 기업은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줄여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기로 두 사람이 합의했다.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 기적(Dutch Miracle)’의 시동을 건 바세나르 협약이 탄생했다.



 31년 전 네덜란드와 오늘 대한민국의 리더십은 너무도 다르다. 현실을 위기로 진단하는 냉철함과 몸을 던지는 승부수가 이 정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노동계와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을 것이다. 노동계의 저항으로 괴로워하던 아버지 박정희의 얼굴이 어른거릴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취임사에서 고용과 복지는 자주 언급됐지만 밀접한 연관어인 노동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중하게 여기는 국민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개인적 트라우마는 극복해야 한다. 그게 진짜 박근혜다운 결단이다. 사실 이 정부의 수뇌부가 몽땅 나서도 불신의 높은 벽 건너편에 있는 노동계는 설득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기업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난제다. 고용률 70%라는 낙원에 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가야 할 노동의 거친 세계를 가볍게 보면 큰코다친다. ‘유러피언 드림’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이하경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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