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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쪽짜리 대화록의 진실, 1차회의와 2차회의는 달랐다



지난 주말 1박2일에 걸쳐 103쪽에 이르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두어 번 읽었습니다. 부분적으론 대여섯 번 읽은 대목도 있습니다. 내친 김에 2005년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이어진 미국의 BDA제재, 2006년 북한의 1차 장거리미사일 발사및 핵실험, 2007년 2.13합의, 그해 9월의 노무현-부시 회담, 그리고 10.3 노무현-김정일 회의록과 10.4공동선언 등 긴박했던 한반도 문제를 죽 공부했습니다. 중앙일보 정치부 차장,부장 시절 마주했던 사건들이었기에 자료를 보면서도 당시의 뒷얘기와 주인공들이 살아서 눈 앞을 어른거렸습니다.

[전영기 JTBC 앵커의 News Letter]



국정원 회의록 공개는 지난주 내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대사건이었지만 평일엔 A4용지 103쪽 짜리 대화록 전문을 다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에 쫓겨 그저 8쪽짜리 발췌본과 신문에 나온 요약기사만 읽어봤을 뿐이었죠.



주말에 전문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맥락 속에서 살펴보고 역사적 배경과 연관지어 공부하면서 주중에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1)NLL포기는 정상간 합의에서 시작해 법적 정비를 거쳐 군사적 실천으로 완성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한 순간의 선언으로 NLL이 포기되고 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느냐, 안 했느냐를 묻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2)대화록에서 확인된 건 노 대통령이 NLL포기를 김정일에게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약속은 그 해 11월에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법적으로 정비되고, 특정 발효시점에 따라 서해 NLL현장에서 남북 해군이 군사적으로 실천해야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약속은 11월 국방장관 회담에서 관철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NLL은 유지됐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NLL포기를 김정일에게 약속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3)노 대통령의 NLL에 관한 입장은 오전 1차회의와 오후 2차회의 때 변화를 겪는다. NLL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1차 때나 2차 때나 똑같지만 1차 때는 NLL은 그래도 유지한다는 쪽에 섰던 반면 2차 때는 NLL포기를 약속하겠다로 성큼 나아간다. 왜 그런가? 김정일이 1차 땐 내 줄 수 없다던 해주를 2차 땐 경제특구로 사용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2차회의 시작하기 전 군 장성들을 불러 군사적으로 가장 예민한 해주를 특구로 내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군 장성들은 NLL포기를 조건으로 해주를 내어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2차회의 최종 결과, 노 대통령은 해주를 얻기 위해 김정일에게 NLL포기를 약속했다. 김정일은 NLL포기를 얻기 위해 노무현에게 해주특구를 약속했다.



지금까지 언론보도와 해설은 103쪽짜리 텍스트 분석에 불철저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텍스트를 죽 따라가면서 읽어보면 NLL포기 이슈는 독립적으로 제기된 게 아니고, 해주경제특구를 김정일이 허락할 것인가하는 이슈와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1차회의 땐 노 대통령은 NLL을 포기하지 않았고, 김정일은 해주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기싸움과 수싸움을 끝에 열린 2차회의에서 김정일은 해주특구를 허락했고, 이에 맞춰 노 대통령은 NLL포기 약속을 분명하게 합니다. 서로 교환하고 주고받은 모양새죠. 그동안 언론에선 해주허용 변수가 소홀하게 취급돼 왔습니다.



그건 그렇고 여기 놓쳐선 안 될 맹점이 있습니다.



해주특구는 최근 개성공단에서 보듯 북한 당국이 회수하면 그만이지만, NLL해상영토선은 한번 무너지면 한국이 다시 회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왜냐구요? 북한이 언제 6~8개 되는 핵을 쓰겠다고 협박할 지 모르기 때문이죠. 핵은 사용하고 난 뒤 보다 사용하기 전 협박이 더 무섭습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한국 국민들은 핵협박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NLL을 모호하게 남겨두자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 것같기 때문입니다. (기우이면 좋겠습니다만)



뮌헨 협상에서 히틀러 협박에 시달려 체코 영토를 반납하고 돌아왔음에도 ‘평화를 지켰다’고 선언하자 국민이 열렬하게 환영했던 체임벌린 총리의 영국 모습(1938년)이 자꾸 생각 나 가슴이 떨립니다. 결국 히틀러는 영국 공습과 프랑스 국경 공격으로 2차대전의 막을 열었고, 체임벌린이 불러온 전쟁은 후임 처칠 총리가 국민에게 땀과 피,눈물을 요구하면서 치러내야 했습니다. 이런 새로운 팩트와 감각을 담아 오늘자 중앙일보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썼습니다.



김정일이 본 노무현의 NLL포기



2007년 10월3일 남조선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 만난 임기말의 노무현 대통령은 낭만적이면서 조급해 보였지만 열정 하나만은 사줄만 했다. 결국 나는 그이의 열정에 감복해 군사적으로 가장 민감한 해주를 내주기로 했다. 대신 노 대통령은 서해상의 골치덩어리인 그 무슨 북방한계선(NLL)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내게 약속했다. 쉽지 않은 일일텐데갷. 그이의 낭만적 열정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당시 나와 노 대통령이 나눈 대화록의 막바지(남조선 국정원이 공개한 회의록 102쪽)엔 이런 걱정과 결의의 분위기가 묻어 있다.



나=여기 우리 합의한 것에 대해 의문점은? 우리는 뭐



대통령=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나=김대중 대통령께서는 6.15선언, 큰 선언을 하나 만드시고 돌아가셨는데 이번 노 대통령께서는 실무적으로(중략)보다 해야될 짐을 많이 지고 가는 것이 됐습니다.



대통령=내가 원하는 것은 시간을 늦추지 말자는 것이고 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까 뒷걸음 치지 않게 쐐기를 좀 박아놓자



나=잘 됐다고 생각합니다.(중략)나는 이렇게 대만족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 대통령이 지게 될 짐을 걱정했더니 그이는 쐐기를 박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나야 뭐, 그날 2차회담을 하기 전에 우리 군 장성들을 불러 남조선이 NLL을 포기하는 조건 하에 해주항을 내어줘도 괜찮다는 확답을 받았으니(71~72쪽) 어려울 일이 없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서울에 내려가서 그 선결 조건인 NLL포기 수순을 밟을 때 난관이 크지 않겠는가,하는 게 걱정이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남조선이 그은 NLL과 그 밑에 우리 공화국이 그은 군사경계선을 쌍방이 다 법으로 포기한다는 내용을 내가 제안했고, 11월 중 평양에서 국방부장관과 인민무력부장이 만나 실무적으로 이를 협의키로 한 것이다.(10.4공동선언 3항)



노 대통령은 그이가 구상하는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의 핵심인 해주를 얻을 수 있다는 것(10.4공동선언 5항)에 흥분이 됐는지 NLL포기가 실제 가능하겠는가에 대한 나의 의문을 최소한 네 차례에 걸친 답변에서 싹 씻어주었다.



평화협력체제가(중략) 기존의 모든 경계선이라든지 질서를 우선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은가 거기에(서해평화협력지대) 필요한 실무 협의를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동안에 NLL문제는 다 치유가 됩니다. NLL보다 더 강력한 것입니다. 나는 뭐 자신감을 갖습니다. 헌법문제라고 자꾸 나오고 있는데 헌법문제 절대 아닙니다.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습니다. 아주 내가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를 삼았던 문제(서해평화협력지대)를 위원장께서 지금 승인해 주신거죠.(72~74쪽)



젊은 대통령이라 그런지 나의 새로운 제안에 반응이 빠르고 화끈하고 거침이 없었다.



사실 나는 오전의 1차회담으로 끝을 맺으려 했다. 임기말 대통령과 무슨 약속과 합의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특히 그이가 해주에 그 무슨 남북공동경제특구를 설치하자고 제의할 땐 뭔가 너무 크고 조급하고 좀 허황하단 느낌이 들었다. 기왕의 개성공단도 우리 군부에선남조선 자본가만 배불리고 우린 무슨 이익이 들어오는가라고 불만이 많은 마당에 갻군사력이 개미도 들어가 배길 수 없을 정도로 집중된(30쪽) 해주에 또 무슨 특구를 또 세운단 말인가.



게다가 노 대통령은 내가 정식으로 제안한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16~19쪽)에 대해선 내가 봐도 숨통이 막히는데 그거 남쪽에다 그냥 확 해서 해결해버리면 좋겠는데라고 내 뜻에 동조하는 듯하면서 종국엔 NLL 가지고 이걸 바꾼다 어쩐다가 아니고 그건 옛날 기본합의서 연장선상에서 앞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하고(41쪽)라며 기존의 입장을 교묘하게 유지하는 2중화법을 구사해 기분이 좀 언짢았던 것이다.



그런데 끈질기게 2차회담을 요구하던 노 대통령은 내가 계속 탐탁찮은 반응을 보이자 오후 시간 내 주시는 게 그렇게 어려우시면 나도 (서울로)내려갈랍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때부터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이어서 이번 걸음에 차비를 뽑아가야지요. 그리고 실제로요, 서해문제는 깊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56쪽) 아하, 이게 그이가 잘한다는 승부수로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2차회담을 수락했다. 2차회담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군 장성들을 불러서 해주 지역을 남조선에 내주면 어떤 일이 생기냐고 물었고, 그들은 남측이 NLL을 마음대로 쓰게 해준다면 내주어도 괜찮다고 답변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해주공단 하나 내주지 뭐. 그건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지만 NLL은 한번 뚫고 들어가면 더 이상 회수하지 못할 것 아닌가. 우리 군사력이 훨씬 센데 "하하하"



전영기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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