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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보는 "카드 질러" … 빚의 늪에 빠진 20대 여성들

2004년 말 정부는 개인회생 제도를 도입했다.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과 실업 증가의 여파로 신용불량자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감당 못할 채무를 지닌 서민들이 빚을 조금씩이라도 갚아 다시 건전한 소비대중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제책이었다. 제도 도입 9년 만인 지난 5월, 신청자 수가 50만 명을 돌파했다. 어떤 이들이 신용위기에 빠지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등을 살펴봤다.



전남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정모(28·여)씨는 2007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했다. 3교대 근무로 노동강도는 셌지만 나이에 비해 적지 않은 월 250만원을 받았다. 사회에 나가 처음 맛보는,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신용카드를 만들어 명품 가방도 샀다. 신용카드는 마술지팡이 같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 순간 월급이 통째 카드 이용 대금으로 빠져나갔다. 월세를 낼 돈조차 없어 마이너스 통장과 카드 현금서비스를 이용해 근근이 버텼다. 하지만 잇따른 야간근무에 몸까지 안 좋아졌다. 2008년 주간근무만 하는 병원으로 옮기자 월급은 150만원으로 줄었다. 그러나 한번 늘어난 씀씀이는 줄이기가 힘들었다. 카드 빚은 연체 이자가 쌓이면서 점점 불어났다. 돌려막기로는 부족해 사설 대부업체에까지 손을 벌렸다. 수십만원 연체에서 시작된 빚은 결국 4000만원으로 불었다. 정씨는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는 “계획 없이 카드를 썼다가 서울에 올라온 지 6년 만에 빚만 졌다”고 후회했다.

[이슈추적] 개인회생 신청 50만 돌파 … 법률구조공단 상담 2885명 조사해보니



감당 못할 빚을 지게 된 서민들의 마지막 ‘동아줄’인 개인회생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9만368명이 신청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4만4172명에 달했다. 2004년 말 제도 도입 후 누적 신청자 수는 51만3708명에 이른다. 개인회생은 소액 채무자가 5년간 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을 갚으면 남은 채무를 탕감해주는 서민층을 위한 신용회복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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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협조를 얻어 2009년부터 지난 4월까지 공단의 개인회생·파산 지원센터를 통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2885명의 성별·나이·소득 수준 등 사회인구학적 특성을 조사했다. 공단은 형사사건의 국선변호사처럼 개인 채무자의 신청서 및 회생계획을 무료로 작성해준다. 개인회생 신청이 가능한 기준은 총 채무액이 무담보채무 5억원, 담보부채무 10억원 이하로 지속적인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개인이다. 본지는 국내 개인회생 신청자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이 자료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KAIST 이원재(사회학) 교수와 공동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연령대에선 남성의 회생신청이 많았지만 20대에선 정씨 사례처럼 여성이 더 많았다.



남성 신청자의 비율은 전체 55.5%로 여성보다 많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20대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63.1%로 남성(36.9%)보다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30대(46.1%), 40대(44.4%), 50대(41.0%) 등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적었다. 전체 신청자 중 여성 비율은 2009년 38.9%에 불과했으나 계속 늘어 올 들어서는 동일한 비율(50%)을 차지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김희중 판사는 “최근 들어 여성의 사회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개인회생 신청자 중에서도 여성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특히 20대 여성들이 ‘취업난’으로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를 잡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상태에서 과도한 소비를 했다가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되는 경우가 눈에 띈다”고 전했다.



 유모(26·여)씨는 2005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한 사설 체육교실 강사로 취직했다. 월급이 150만여원에 불과해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생활비와 용돈을 충당했다. 하지만 몇 차례 휴직과 이직을 거듭하면서 카드 사용액이 한도를 넘기 시작했다. 그러다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카드 빚을 메꿨다. 하지만 빚은 줄지 않고 계속 늘어 2000만원을 넘어섰고 결국 올 초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유씨는 “손쉽게 돈을 쓸 수 있다는 철없는 생각에 빚더미에 올랐다”며 “다시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원재 교수가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와 개인회생 신청자의 특징을 교차분석한 결과에서도 20대 여성이 개인회생을 신청할 확률은 동년배 남성보다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30~50대에서는 남성이 1.2~1.5배가량 높았으며 60대 2.5배, 70대는 7.2배 높았다. 이 교수는 “전체 연령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회생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20대에서는 여성이 더 높았다”고 설명했다.



 20대 여성의 회생신청이 많은 이유는 남성보다 일찍 직업을 갖게 된 여성들이 경제관념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서 소득에 비해 과소비 행태를 보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신용카드로 시작한 20대 여성의 빚은 저축은행-사채로 이어지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빚의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20대 여성의 평균 채무는 4422만여원으로 전체 연령대 평균(8799만여원)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평균 소득도 119만여원으로 전체 평균(150만여원)에 크게 못 미쳐 작은 규모의 빚에도 취약한 경향을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조경애 내부회생위원은 “20대 여성은 경제적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뒤 겁 없이 긁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신청자의 평균적인 모습은 월 소득 150만여원의 43.6세 남성이었다. 총 채무액은 8799만여원으로 월 소득을 전부 빚 갚는 데 쓰더라도 빚을 모두 갚으려면 64.7개월(5.4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40대 남성이 개인회생 신청에 몰리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대라는 특성을 꼽는다. 직장을 잘 다니다가도 개인사업을 시도했다 실패하거나 빚을 끌어 투자를 했다 망하는 경우가 40대에 특히 많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인 김관기 변호사는 “40대는 자녀 부양, 주택 비용 등 지출이 많기 때문에 사업에 실패하거나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닥치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회생신청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개인회생을 신청한 40대 남성의 월 평균 소득이 15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은 비정규직 또는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정상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토목 기술자인 문모(43)씨는 잘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개인사업을 벌였다가 개인회생을 신청한 경우다. 토목회사에서 3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던 문씨는 2009년 친구와 새로 회사를 차리면서 빚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용역 대금을 주기로 한 회사가 망하면서 돈을 받지 못하게 됐고 그 역시 1억1000여만원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했다. 일용직을 전전하며 매달 200여만원의 수입과 카드 현금서비스 등으로 가족을 부양하다 지난 4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개인회생 신청자들이 회생신청 당시 지고 있는 빚의 규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2010년 9243만여원으로 가장 많았다가 지난해 8540만여원으로 줄었다. 올 들어서는 평균 8164만여원으로 더 낮아졌다. 채무액 중 이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감소 추세다. 2009년만 해도 총 채무 중 22.4%가 이자였으나 올 들어서는 14.8%로 비중이 낮아졌다. 개인회생 제도가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빚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선제적으로 회생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용카드 발급과 대부업체 난립을 제한하는 가계부채 관리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통상적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기까지 신용카드 돌려막기→저축은행 대출→대부업체 사채 사용의 수순을 밟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오문식 내부회생위원은 “소득이 일정치 않은 사람들에게 카드를 발급해주는 것부터 규제해야 한다”며 “‘신용카드 사용은 빚’이라는 점을 어릴 적부터 교육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43.6세 남성  개인회생 신청자의 평균적인 모습은 월 소득 150만여원의 43.6세 남성. 총 채무액은 8799만여원으로 월 소득을 전부 빚 갚는 데 쓰더라도 빚을 모두 갚으려면 64.7개월(5.4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인회생 제도와 신청자격=과다한 빚으로 파산할 우려가 있는 급여소득자 또는 영업소득자가 3~5년간 일정한 금액을 갚으면 빚 전부를 탕감받을 수 있게 해주는 신용회복절차로 2004년 말 도입됐다. 채무 총액이 무담보인 경우 5억원, 담보부 채무인 경우 10억원 이하인 개인 채무자가 신청할 수 있다. 향후 수입 중 생계비를 뺀 나머지를 모두 빚 갚는 데 투입하는 게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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