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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 수첩엔 왜 이나모리가 없나

이철호
논설위원
박근혜 수첩엔 왜 이나모리가 없나



낙하산 시즌이 돌아왔다. 공기업은 물론 ‘무늬만 민영화’된 기업에도 모피아·캠프 출신들이 줄줄이 내려오고 있다. 장터가 따로 없다. 이번 시즌에는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법칙이 눈에 띈다. 무조건 ‘높은 연봉이 최고’라는 것이다. 수십억원 연봉인 KT·KB 회장의 각축전이 가장 치열했다고 한다. 유례없이 투서도 난무했다. 얼마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좋은 낙하산도 있고, 나쁜 낙하산도 있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냉정히 짚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항공(JAL)이 그 상징이다.



 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약속대로 딱 3년 만에 JAL을 되살리고 물러났다. ‘경영의 신(神)’인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 그는 81세의 나이에 다시 한번 신화를 썼다. JAL은 원래부터 낙하산 인사의 온상으로 악명을 떨쳤다. 관료 출신들이 쏟아져 내려와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다. 적자가 1조원이 넘어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상장폐지까지 갔다. 마지막 구원투수인 이나모리도 냉정히 따지면 낙하산 인사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직접 머리를 조아리며 모셔왔기 때문이다.



 이나모리는 한때 머리를 깎고 선불교에 출가했을 만큼 독실한 불교 신자다. 살생과 거리가 멀다. 그런 이나모리가 JAL을 맡자 “칼을 들었다면 과감하게 베겠다”고 했다. 직원 1만 명을 해고하고, 사업장의 3분의 1을 폐쇄했다. 아끼던 점보기 등 주력 항공기 95대도 매각했다. 마누라는 몰라도 자식까지 팔아치운 셈이다. 극도의 비용절감과 함께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충격요법이었다. 이후 JAL은 흑자로 돌아서고, 주식 재상장을 통해 10조원짜리 반듯한 회사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이 정도에 그쳤다면 ‘경영의 신’이란 호칭은 사치스럽다.



 JAL을 회생시킨 진짜 비밀은 따로 있다. 다음은 경쟁업체이자 현장에서 지켜본 대한항공 일본지사의 이야기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악성종양인 국내외 적자노선 45개를 없앤 것이다. 특히 국내 시골 노선에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압력이 대단했다. 손도 못 대던 성역이었다. 그런데 이나모리는 눈도 깜짝 않고 싹 없앴다. 국회의원 누구도 찍소리를 하지 못했다.” 자칫 이나모리의 카리스마에 덤비다간 자신의 정치생명이 끝장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비밀은 노조다. JAL은 노조 천국이었다. 복수 귀족노조가 8개나 창궐해 낙하산 경영진을 가지고 놀았다. 조종사들은 비행시간에 관계없이 높은 고정연봉을 받았다. 퇴직연금은 더했다. JAL의 퇴직급여충당부채는 10조원이나 됐다. 대한항공의 10배다. 미국의 GM이 망한 길을 그대로 답습했다. 이나모리는 그런 퇴직연금을 30%나 깎아버렸다. 또 사내 세탁소를 없애 승무원들이 직접 유니폼을 집에서 빨아 입도록 시켰다. JAL노조는 희한하게도 아무 군소리 못하고 따라왔다.”



 이나모리는 이런 난제를 공짜로 풀어주었다. 스스로 무보수를 자청했다. 높은 연봉만 좇는 한국의 낙하산 인사와 딴판이다. 그는 처음엔 “매주 이틀만 도쿄에 들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JAL에 매달리면서 80대 노구를 이끌고 매일 교토와 도쿄의 500㎞를 왕복하면서 온몸을 던졌다. 이나모리는 JAL을 떠나면서 “정면으로 문제의 본질과 맞서니 반드시 길은 열리더라”는 멋진 이별사를 남겼다.



 이미 우리 공기업들의 부채는 위험 수위이고, 귀족노조도 JAL과 얼마나 다를까 싶다. 빼곡히 쏟아지는 낙하산 인사 중에 왜 한국판 이나모리는 안 보이는 느낌일까. 이제 정치권의 압력과 귀족노조에 정면으로 맞서는 ‘좋은 낙하산’도 한번쯤 보고 싶다. 제발 그런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이나 청와대 비서실이 올리는 후보자 명단에 들어있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왜 이나모리를 찾아가는 하토야마 총리의 삼고초려가 자꾸 부럽게만 느껴지는지….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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