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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도 상담 받고, 돈 많아도 교육 참여 열기

일러스트 강일구
부부끼리 식사하는 습관도 맞춰 가야
대기업 퇴직 임원인 김중한(58·가명)씨 부부는 최근까지 ‘사소한’ 일로 다툼이 잦았다. 30년 넘는 직장생활로 하루 세끼 정시에 식사하는 데 익숙했던 김씨와 달리 전업주부로 지냈던 부인은 늦은 아침 식사를 한 뒤 이른 저녁을 먹는, 하루에 두 끼만 식사하는 삶을 30년째 이어 왔던 탓이다. 김씨를 놀라게 한 일은 또 있다. 최근 찾은 부부은퇴학교에서 서로의 가치관을 묻는 10가지 질문 중 8개나 자신과 부인의 의견이 다르게 나타났다. 그는 “밥 먹는 것부터 서로의 생각이 이렇게 많이 벌어져 왔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며 “경제적으로만 은퇴 준비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요새는 서로에게 적응하는 법을 연습하며 사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정 선임연구위원은 “은퇴교육은 부부가 함께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은퇴 후 잔여 생존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부가 달라진 삶에 대해 함께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과거엔 은퇴 관련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은퇴설계를 왜 해야 하는가’란 필요성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부동산·세금문제와 부부생활까지 두루 아우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재산 솔직히 공개하고 은퇴 상담 늘어
자신의 자산을 좀 더 과감하게 공개하며 구체적인 컨설팅을 원하는 이도 늘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퇴직금을 은행에 맡겨놓고 이자를 받아 생활하는 방식의 삶이 어려워진 탓이다. 과거엔 은퇴설계 체험(시뮬레이션)을 통해 노년기의 금전 흐름을 유추해 보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이들이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하게 자신의 경제력을 공개하고 거기에 맞춰 노년의 삶을 설계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인식이 퍼지고 있다. 한정 선임연구위원은 “불과 1년 전에는 고객들이 자신의 자산을 오픈하는 걸 꺼렸는데, 요즘은 깊이 있는 상담을 통해 제대로 된 은퇴설계를 추구하는 분이 대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재무 관련 상담의 수준이 깊어진 만큼 비재무 분야의 강연 요청도 늘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회원사 80곳의 오너 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참여 회원사 중 30%가 소통이나 부부관계 같은 비재무 관련 강연을 은퇴교육 중 필요한 분야로 꼽았다. 부부가 함께 은퇴 이후의 삶을 계획하는 ‘버킷리스트 만들기’나 ‘100세 시대의 건강 비법’ 등이 인기 강연으로 꼽힌다.

대기업 30대 직원들도 은퇴 준비에 관심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박상섭(36)씨도 최근 은퇴 이후의 삶에 관심이 많다. 30대 중반인 만큼 당장 은퇴와는 거리가 있지만 미리 준비해 둬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에 고민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다. 최근 은퇴 관련 상담을 받은 뒤 그는 노후를 대비해 추가로 월 20만원씩 펀드 상품에 더 들기로 했다. 박씨는 “직장 선배들을 봐도 미리 은퇴를 준비한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 사이에 삶의 질 차이가 엄청나게 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직장 퇴직 이후의 삶이 갈수록 길어지는 만큼 젊다고 단순히 머나먼 훗날의 일로 치부하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을 때부터 은퇴 준비를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젊은 만큼 미래를 더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도 조기 은퇴설계에 나서는 이유다.

반대로 은퇴와 관련한 준비를 사전에 하지 않아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 사업가인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해외 유학 중 졸지에 사업체를 물려받게 된 김중호(32·가명)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김씨는 일단 아버지의 유언대로 회사 경영권을 이어가기로 했지만, 소득이 없던 그는 거액의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어 고민 중이다. 사망한 아버지의 금융자산이 얼마 안 되는 탓이다. 김씨는 “갑작스레 일을 당하고 보니 미리 준비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다”며 “경영권 유지를 위해 회사 주식은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동 중인 공장을 내놓을 수도 없어서 갑갑하다”고 말했다. 젊을 때부터 은퇴 준비에 관심을 갖는 이가 많아진 것은 은퇴를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가 많아지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삼성증권이 지난 2월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은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6%가 “돈과 상관없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응답했다. 서울대 정광호 교수는 “최근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 논쟁이 한창인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은퇴 이후의 삶을 국가가 보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보니 개인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은퇴’와 ‘퇴직’을 나눠서 생각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이 종신고용을 보장하던 시절엔 ‘은퇴=퇴직’이란 공식이 성립됐지만, 요새는 ‘1차 퇴직은 40대, 은퇴는 70대’ 하는 식으로 나눠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은퇴 세미나엔 수강생 몰려
은퇴 관련 지식을 체계적으로 얻고 싶어 하는 이도 늘고 있다.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는 지난해 총 16회였던 ‘찾아가는 은퇴학교’ 프로그램을 올 상반기에만 44회 진행했다.

이는 직장이나 단체 등 은퇴와 관련한 궁금증을 세미나 형식으로 풀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은퇴학교 프로그램을 원하는 기업이나 단체가 신청을 해오면 무료로 관련 강연을 진행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지난달에만 11회나 은퇴학교가 열렸다.

당초 목표는 월 2회가량을 계획했던 것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올 들어 현재까지 약 3000여 명이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찾아가는 은퇴학교’가 인기를 모으는 건 그만큼 은퇴 이후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은퇴를 미리 준비하는 이들의 직업군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에 은퇴 고민은 ‘50대 남성 직장인’의 것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노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대기업 임원은 물론,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는 오너 경영자들까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삼성증권 측은 “최근엔 전업주부들도 은퇴 이후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에 비해 주부는 연금에 가입한 경우가 드물어 더 꼼꼼한 은퇴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부부은퇴학교에 참석한 양경숙(51)씨도 비슷한 경우다. 양씨는 “앞으로는 평균 수명대로 산다고 가정할 때 남편 없이 10년가량 홀로 살아야 한다”며 “예상 사망 나이를 기점으로 은퇴설계를 해본 뒤 가족과 의논해 남편 중심으로 되어 있는 자산들을 효율적으로 나눠서 관리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거액 자산가도 관심, 교육 내용 다양해져
거액의 자산가들이 은퇴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도 올해 들어 뚜렷해진 현상이다. 한정 선임연구위원은 “보유 재산의 상속은 물론, 제대로 된 은퇴 계획이 있느냐에 따라서 노후의 삶이 따분하고 지루한 것에서 보람찬 것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교육 횟수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엔 한 번도 없었던 CEO 대상 은퇴 강연이 올해엔 벌써 5회나 진행됐다. 임원 대상 교육도 지난해엔 한 번에 그쳤지만 올 상반기엔 네 번이었다.

제조업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 중인 서영한(61·가명)씨도 본격적으로 은퇴 관련 교육을 받아볼 생각이다. 그가 풀어야 할 숙제는 젊음을 바쳐 키워온 회사를 어떻게 자식들에게 물려줄까 하느냐다. 친구와 동업으로 운영해 온 회사여서 당장 분리와 상속은 좀 더 어려운 상태다.

그는 “회사가 어느 정도 커지다 보니 승계와 관련해 이해관계자가 많아 경영권 분쟁을 비롯한 갈등도 생길 수 있어 걱정”이라며 “은퇴 후에도 기존 거래처와 사업 수익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꼼꼼히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상속 문제가 아니어도 퇴직 후 여가활동 등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이도 늘고 있다. 실제로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가 지난 2월 중년 부부 10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자유롭게 여행하기(응답자의 30%)와 댄스·미술·악기 등 새로운 취미생활 익히기(응답자 중 24%)를 꼽은 이가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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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