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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철 칼럼] 사생활 엿보기와 탐조

누군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사람을 몰래 엿보고 즐기는 것은 범법행위다. 탐조는 새들의 모습을 엿보고 즐기는 행위다. 두 경우는 같은 듯 전혀 다른 행위다. 전자는 사람에 대한 가학이고 모독이다. 반면에 후자는 생명을 향한 관심이고 사랑이다.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을 버드와처(birdwatcher) 또는 버더(birder)라고 부른다. 탐조는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시작돼 미국·일본 등으로 확장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버더가 급증하는 추세다.



 늦봄과 초여름은 탐조활동에 딱 좋은 시기다. 지저귀는 새소리도 좋고, 새들의 번식 활동도 가장 활발해서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생명과 어미들의 생생한 육아 현장도 마주할 수 있다. 가까운 공원이나 산과 호수는 경이로운 자연의 섭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박새·딱새·뱁새·직박구리·딱따구리·황조롱이·파랑새·꾀꼬리…. 먹이를 물어 나르는 어미 새에게 시선을 고정하면 둥지나 새끼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부리를 한껏 벌리고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들, 나무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세상 구경하는 딱따구리, 둥지에서 어서 나오라는 듯 먹이로 유인하는 박새…. 새들도 눈코 뜰 새 없이 헌신과 사랑으로 새끼를 기른다. 뱀·고양이 같은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배설물을 멀리 내다버리거나 심지어 먹어치운다. 꾀꼬리가 그런 새다.



 경기도 안산시 시화호가 요즘 탐조인과 사진가들로 북적이고 있다. 제방도로 옆 멀지 않은 호숫가에 둥지를 튼 뿔논병아리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겨울철새로 분류되는 이 새는 일찍 찾아온 더위 탓인지 북상을 멈추고 시화호에서 50여 쌍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충남 서해안의 천수만, 경기도 남양주 북한강 등지에서 적은 수가 번식했는데 이렇게 집단 번식 현장이 포착된 건 처음이다. 갈대숲이나 은밀한 곳에 둥지를 짓는 뿔논병아리가 무리 지어 새끼를 키우는 모습은 한 편의 파노라마다.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는 뿔논병아리의 독특한 육아 방식은 사진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교란일까.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아열대성 조류의 서식지가 해마다 북상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중국 양쯔강 이남에 분포하던 물꿩이 몇 년 전부터 여름철에 제주도와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번식하더니, 올해는 강원도 경포대 습지에서 발견됐다. 또한 남부 해안 지역에서 번식하던 팔색조와 긴꼬리딱새도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이런 희귀한 새들이 오히려 탐조인과 사진가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촬영하려는 욕심 때문에 새들은 번식을 포기할 수 있다.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새 둥지나 번식 장소가 공유돼 수십 명씩 몰려다니는 동호회 활동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 욕심 때문에 나무를 훼손하거나, 둥지 안에 있어야 할 어린 새들을 나뭇가지에 앉혀 놓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얼마 전엔 천연기념물 저어새 40여 쌍이 둥지를 튼 무인도에서 한 남자가 알을 수집해 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최고 징역 3년까지 처할 수 있는 범법행위다. 이젠 더 늦기 전에 서둘러 탐조 수칙을 만들고 계도에 나서야 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이런 수칙을 만들어 꾸준히 교육·홍보 활동을 펼쳐왔다.



 탐조든 촬영이든 우선 지켜야 할 것은 생명의 권리와 자연의 존엄성이다. 새들의 생존과 번식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사진·동영상 촬영은 새들이 위협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범위에서 자제돼야 한다. 새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탐조는 단순한 여가활동이 아닌 지적 활동이다. 탐조를 통해 한 마리 새가 돼 보라. 작은 생명을 통해 환희와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조용철 영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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