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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사랑도 보험에 들어야 하는 시대

사랑의 감정은 얼마나 순수한 것일까. 프랑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남녀간의 사랑에도 현대 소비자본주의가 무거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영화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 원작, 앤드리아 아널드 감독, 2011) 한 장면. [중앙포토]

사랑은 왜 아픈가:사랑의 사회학
에바 일루즈 지음
김희상 옮김, 돌베개
556쪽, 3만원


마르크스는 말한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해두려고 한다. 나는 자본가나 지주의 모습을 결코 장밋빛으로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론』의 서문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이다. 여기서 장밋빛은 인간 개개인의 주체적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좋은 자본가나 지주, 즉 자신의 탐욕이 아니라 인류애로 무장한 윤리적인 자본가나 지주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예외적인 경우에 주목하는 순간, 자본가나 지주라는 지위를 가진 사람을 강제하는 구조적인 힘이 우리 시선에 들어오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냉정한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개개인의 예외적인 실천은 당분간 무시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구조 분석이 끝난 뒤에 반드시 인간에게 ‘장밋빛’을 부가해야만 한다. 예외적인 실천이란 바로 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혁명적 실천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인간의 감정을 “장밋빛으로 그리지 않는다.” 사회나 역사의 지평, 그러니까 구조의 지평에서 보면 인간의 감정은 구조적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영민한 사회학자인 그는 지금까지 인간의 감정에 자본주의가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집요한 관심을 보여 왔다. ‘감정 자본주의’라는 유명한 슬로건이 만들어진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사회와 사회 사이에, 그리고 개체와 개체 사이에 잉여가치를 찾을 수만 있다면, 자본주의는 그 틈바구니를 놓치지 않는다. 일루즈는 마침내 자본주의의 촉수가 인간의 가장 소중하고 내밀한 감정의 세계, 장밋빛과 장미향으로 충만한 내면세계마저도 파고들어 잉여가치를 남기고 있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그의 경고를 경시했던 것일까. 그는 감정 중 감정 ‘사랑’을 해체하는 도전적인 책을 다시 우리에게 던졌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얻으려는 감정, 그리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기에, ‘사랑’이란 감정마저 자본주의에 변질되고 상품화된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를 당혹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사랑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판타지를 붕괴시키기에, 이 책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만일 그의 주장이 옳다면, 그래서 우리 삶을 충실하고 풍요롭게 하는 사랑마저도 자본주의에 포획돼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주어진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만 하는 것 아닐까. 병이 들었음에도 병을 부인한다면, 마침내 병균은 우리 자신을 부패시킬 테니까 말이다.

 키에르케고르나 니체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랑은 ‘순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매 시간, 매 분, 매 초가 순간은 아니다. 오직 ‘과거와 미래와 만나는 찬란한 때’, 바로 그때가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너리즘에 빠진 삶의 지루한 연속이 찢어지면서 파열음을 내는 때가 순간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았던 자신의 과거 전체가 무의미하고 보잘것없다는 것을 자각하며 동시에 앞으로 미래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사랑이 찬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과거로부터의 단절과 미래로의 불안한 모험이 바로 그 사랑이란 순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랑의 순간, 우리는 불안하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꿈꾸지 못했던 행복이 찾아들 수도 있고, 혹은 만남을 저주할 만큼 과거보다 더 불행해질 수도 있으니까.

 미래의 불안함에 기생하는 보험회사처럼 자본주의가 이런 순간의 불안감을 놓칠 리가 없다. 집요하게 미래의 불안감을 완화하려는 감정 상품을 줄줄이 내놓는다. 그리고 연애 중매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안전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상처받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지 않느냐고.

 그리고 사랑의 불안에 빠진 우리에게 이보다 달콤한 감언이설이 또 있을까. “사랑과 관련된 감정 상품을 사는 순간, 불안감은 안전의 느낌으로 불행은 행복의 전망으로 바뀔 겁니다.” 이런 선전에 노출되자마자, 사랑의 순간이 낳을 수밖에 없는 불안감과 공포감은 극도로 증폭될 수밖에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다양한 노령 보험과 질병 보험에 노출되는 순간, 노령과 질병에 대한 공포가 과도하게 증폭되는 것처럼 말이다.

 장밋빛을 제거하고 사랑이란 감정을 해부한 뒤, 그는 다시 사랑에 다시 장밋빛을 부가한다. 그렇지만 그 해법은 단순하고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그것은 사랑의 순간,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거에서 미래로 “목숨을 건 비약(fatal leap)”를 감행하라는 것이다. 그가 말한 “열정적인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누구도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비약과 용기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게 가슴에 새기라는 것이다. 깊게 호흡을 하고 번지 점프대에 몸을 날리는 것처럼, 그렇게 열정적으로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사랑에 몸을 던지라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사랑에 기생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벌레는 우리 몸에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 그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은 왜 아픈가’라고 물어보지 않고, 사랑은 또한 찬란한 고통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미소를 머금게 될 것이다.

강신주 대중철학자

●강신주 철학박사. 동·서양철학과 문학을 넘나들며 소통과 사유라는 주제를 탐구해왔다. 저서 『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 등.

사랑의 ‘본질’을 더 탐구하고 싶다면 …

우리는 사랑을 하기에 너무나 비겁하고 나약하다. 이런 나약한 사랑, 얄팍한 판타지에 영합하는 책들은 많다. 하지만 사랑은 기쁨과 고통을 같이 수반하는 복잡한 감정이다. 그 사랑의 깊이와 본질에 이른 것으로 꼽을 만한 책 세 권을 추려봤다.

 사랑이란 교향곡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감정을 롤랑 바르트처럼 섬세하고 매력적으로 묘사한 인문학자도 있을까. 『사랑의 단상』(2004, 동문선)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 관한 분석으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미움·질투·행복·기대·좌절·의심 등등 너무나 다양한 느낌의 심포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2010, 길)에서 사랑은 두 사람이 스스로의 삶에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경험으로 예찬의 대상이다.

 사랑과 결혼을 비극적으로 묘사한 작품 중 최고를 꼽는다면 톨스토이가 말년에 쓴 단편소설집『크로이처 소나타』가 아닐까 싶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남녀의 밀고 당기는 긴장된 감정을 표현했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 소나타’를 들으며 읽으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강신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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