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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어린 남자와 사귀는 딸이 맘에 안 든다는 50대 아빠

Q 30세 된 딸을 둔 50대 아빠입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고 지금도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터라 또래 한국 남성들에 비해 사고방식이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딸한테도 개방적이고 호탕하게 대하기 때문인지 딸도 저를 잘 따르고요. 그런데 우연히 딸아이가 교제하는 남자친구가 5세나 어린 연하남인 걸 알게 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말릴까 하다가 제 풀에 꺾이겠지 싶어 그냥 뒀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결혼이라도 할 태세입니다. 요즘 연예인 등 많은 유명 인사의 연상녀·연하남 결혼 발표가 이어지는 걸 보면 머리가 아득합니다. 제가 겉으로만 쿨했지 속은 영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요. 딸의 연하 남친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A 10세 정도 어린 잘생기고 직업도 번듯한 연하남과 결혼하는 유명 연상녀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습니다. ‘연하 남편과 살면 어떤 게 좋을까’란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내 맘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가 가장 많더군요. 그 다음으로 ‘젊은 기분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거나 ‘애교와 사랑이 많을 것 같다’ 순이었습니다. ‘여자가 능력 있어 보인다’는 답도 보이네요. 어른 입장에선 그야말로 격세지감입니다.

 사회현상의 변화는 사실 개개인들의 마음이 변화하는 걸 반영합니다. 힘 있고 의존할 수 있는 권위적인(authoritative) 남성에 대한 선호가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줄 것 같은 수용적(acceptive) 남성에 대한 호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죠. 어떤 여성은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더 오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젊은 남자를 찾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성은 모성애에 근거한 치열한 생존욕구가 있습니다. 힘은 남자가 세지만 생존능력은 여성이 강합니다.

 마음의 통증은 정체성이 흔들릴 때 나타납니다. 건강한 정체성 유지를 위한 최우선 조건은 당연히 살아 있어야 한다는 거겠죠. 그러나 생존 자체가 정체성을 아름답게 유지시켜 주는 건 아닙니다. 내가 나를 가치 있고 근사하게 느끼는 정체성의 충일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얻어집니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근사할 때 비로소 나는 근사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에서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야’란 신호를 감지할 수 있어야 행복감을 느낀다는 얘기입니다. 나 홀로 ‘난 정말 근사해’라고 외치는 이른바 ‘셀프 정체성 케어’는 실패로 끝나게끔 설계돼 있습니다. 인생을 동행할 타인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권위적인 남성은 생존의 상징입니다. 권위는 나를 지켜 주는 힘이죠. 내가 의존할 수 있는 대상에게 우리는 권위를 느낍니다. 그러나 권위의 양면성이랄까요. 이렇게 전투력 강한 남성은 공감능력이 부족합니다. 대개 전투력과 공감능력은 공존이 어렵습니다. 타인의 고통이 내 고통으로 느껴지는 공감력이 작동하면 매몰차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전투력이 제대로 나올 수 없기 때문이겠죠.

 여성이 권위적인 남성을 선호한다는 건 생존을 우선시한 삶을 선택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공감은 희생하면서요. 그러나 희생은 분노와 슬픔의 원인이 됩니다. 대표적인 게 고부 갈등입니다. 최근 TV에서 ‘시월드’를 다룬 토크쇼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실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나와 설전을 벌입니다. 서로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분노가 며느리를 향하고 있지만 사실 며느리는 1차적 원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구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룬 채 희생하며 열심히 자녀를 키웠건만 막상 아들을 장가보내고 나니 밀려오는 상실감에 분노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인생을 헛산 것 아닌가,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다, 이런 감정입니다. 감성적 측면에서 볼 때 자식 농사는 부모가 늘 밑지는 장사입니다. 아들이 아무리 효도해도 부모의 내리사랑에 미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렇기에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주변에서 이유를 찾게 됩니다. 자기방어 기능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건 며느리가 진짜 미워서라기보다 자신의 억울하고 한스러운 인생을 타인 탓으로 돌리는 방어심리입니다. 내 상실감이 내 탓이 아니라 다른 사람 탓일 때 조금은 위로가 되고 좌절도 참을 만하니까요. 그러나 시어머니의 이 한은 며느리에게 전가됩니다. 오늘의 며느리는 내일의 시어머니이니 여성의 희생과 화는 대를 이어 내려갑니다.

 모성애를 근간으로 한 여성의 희생은 훌륭한 2세 양육으로 이어져 우리나라를 발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희생으로 쌓인 한이 농축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생존을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출산율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2012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1.23명입니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을 고려하면 둘이 만나 둘 이상을 나아야, 즉 2.3명은 돼야 인구가 유지될 수 있는데 현재 출산율대로라면 아주 씨가 마를 지경입니다. 출산율 저하는 더 이상 희생만 하고 살지 않겠다는 여성의 저항입니다. 행복 추구는 인간의 기본 권리이기에 애 안 낳는다고 여성만 탓할 수 없습니다.

 여자가 서른을 넘겨 결혼하면 안 된다는 압박이 상식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죠. 이때 결혼을 미루는 딸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답답합니다. 자녀가 결혼하고 손주를 낳는 걸 봐야 부모로서 할 도리를 다한 거라는 숙제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삶의 숙제들은 대부분 생물학적 생존에 대한 강력한 욕구에서 비롯된 겁니다.

 심리학적으로 결혼 적령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사람 보는 눈도 정확해지고 나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기에 어릴 때보다 더 잘 사랑하고 멋진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20대에 인생 경험이 얼마나 있다고 자기 짝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늙어서까지 잉꼬부부가 희귀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젊었을 때 결혼하지 말라고 권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혹시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자녀를 둔 부모나 당사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절대적 진실이 아닌 것이 많습니다.

 저는 여성이 행복해져야 출산율이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어머니와 인생 선배를 보며 학습된 모성애적 희생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성이 연하남을 점점 더 용인하게 된 건 긍정적 변화입니다. 여성은 이제 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나를 따뜻하게 이해해 주는 상대방이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겁니다. 누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권위적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어려서 더 센 남자인 척할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권위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한 남자입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들이 연하남 같은 부드러운 수용적 태도로 여성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출산율도 다시 증가하지 않을까요. 생존 때문에 희생된 사랑, 이제 사랑으로 생존을 살려야겠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지난 주 예고했던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최신 마음 관리법’은 다음 주인 7월 3일자 江南通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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