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서남표 전 총장, "한국서 가장 억울했던 점은?" 묻자…

많이 알려진 사람일수록 그가 진짜 어떤 인물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서남표 KAIST 전 총장도 그렇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완벽한 성공 스토리를 가득 안고 52년 만에 떠들썩하게 금의환향해 한국 대학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가 종국엔 ‘소통 부재 리더십’이라고 난타당한 채 고국을 떠난 그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가 KAIST에 머문 7년 동안 추진해온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강화와 전 과목 영어수업 같은 각종 개혁작업은 불통이란 단어 하나로 폄훼되기 일쑤였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근 『한국 교육에 남기는 마지막 충언』이란 책도 낸 게 아닐까. 한국 학생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유학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주 사적인 자녀교육 등에 대해 물으면서 끊임없이 억울한 게 뭐냐고 슬쩍슬쩍 물었다. 그러나 그는 억울한 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소통이 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보스턴에 있는 그와 두 시간여에 걸쳐 전화로 인터뷰했다.

안혜리 기자

[사진 카이스트]

서 전 총장은 책 서문에 책을 쓰는 이유를 네 딸이 낳은 일곱 손주에게 그가 살아온 인생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딸 모두 한국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고, 그의 손주들은 한국말을 못한다. 그러나 엄마의 뿌리인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한다. 꼭 그의 손주가 아니더라도 흥미로운 얘기가 많았다. 그중 가장 관심이 갔던 것 중 하나가 그가 처음 미국에 정착할 때의 스토리였다. 전쟁통 한국의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라는데 고2 때 미국 명문 사립학교에 가서 어떻게 적응을 했는지, 그리고 또 1년 반 만에 어떻게 MIT에 입학했는지 말이다.

-유치원 때부터 영어공부 열심히 하는 지금도 미국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 들어가기가 어렵다. 어떻게 미국에 가자마자 들어갈 수 있었나. 미군한테 특별히 영어를 배우기라도 했나. (※서 전 총장이 나온 브라운 앤드 니콜스 스쿨은 최근 5년간 하버드대를 가장 많이 보낸 미 사립학교 10위 안에 드는 명문 학교다.)

 “전쟁 하는 나라에서 무슨 수로 영어를 배우나. 부산 보수산 중턱 천막교실에서 공부했다. 그렇게 고2 마치고 미국에 갔다. 당시 하버드대 초빙교수로 있던 아버지가 준비해놓은 덕분에 브라운 앤드 니콜스 11학년으로 들어갔다. 초빙교수라 돈을 많이 못 버는데도 나를 비싼 사립학교에 넣은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똑같다.”

-수업은 잘 따라갔나.

 “일상적 대화도 어려운 판에 일주일에 한 권씩 『햄릿』 『오셀로』 등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했다. 선생님은 외국인이라고 봐주기는커녕 미국 현지 애들이랑 똑같이 취급했다. 에세이를 쓰면 선생님이 빨간색으로 크게 0점이라고 써서 돌려줬다. 그때 경험을 통해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얻었다. 한국 사람들은 다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본인이 물려받은 뛰어난 DNA 덕을 본 것 아닌가. (※서 전 총장 아버지 서두수 박사는 서울대 교무처장 출신으로 하버드대에 한국어과를 만든 인물이다. 1949년 미 국무부 주관의 1년짜리 해외 대학 시찰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갔다 6·25전쟁으로 귀국이 어려워지자 그곳에 정착했다. 이후 가족을 모두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개개인이 다 경험과 환경이 다르다. 그러나 난 큰 차이 없다고 본다. 어릴 때부터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나 한다. 능력이란 노력이 많이 필요한 거다. 하지만 누구는 노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KAIST 총장 시절 일반고 학생도 뽑은 거다. KAIST에 주로 들어오는 과학고 출신 중엔 아무래도 부모 잘 만나 사교육 많이 받은 아이가 많다. 나중에 보니 과학고나 일반고 출신이나 별 차이 없더라.”

-학업성적만이 아니라면 어떤 기준으로 학생을 뽑아야 하나.

 “학생을 선발할 때 보면 아주 우수하거나 아주 못난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 중간이다. 그중 합격과 탈락을 나누는 건 굉장히 어렵다. 심층 인터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확실한 게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중에 사회에 나가 성공할 사람을 뽑는 거다. 성공, 다시 말해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을 보면 특별한 개성을 갖고 노력하며 긍지가 있다. 좋은 학교일수록 이런 사람이 많이 몰린다. 하지만 이런 인재를 찾아내는 게 학교의 책무다. 그게 어려우니 다들 1~2점 차로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 그건 학교가 좋은 인재를 발굴하지 못한다는 전제 아래 하는 거다. 교수를 채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테뉴어 제도가 있다. 좋은 사람인 줄 알고 뽑았는데 아닐 수 있지 않나. 나중에 실수한 걸 조율하는 거다.”

-KAIST에 영어 강의를 도입했다. 반발도 많았는데 굳이 강행한 이유는.

 “미국 유학 온 한국 학생 보면 다들 잘한다. 미국 가면 영어로 공부하는 것 외에 선택이 없다. 그게 싫으면 한국에 돌아가야지. 그걸 한국에서는 왜 못하나. 학생들은 다 잘한다. 학생이 아니라 오래 한국말로 가르치던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과학은 영어가 필수다. 자국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도 과학은 영어로 가르친다. 전 세계 모든 논문이 영어다. KAIST 졸업생이 세계적 인물로 크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 과거엔 영어가 공통어 아니었다. 프랑스어·독어를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프랑스어로 논문 발표하면 발표장에 아무도 안 남고 다 나간다. 못 알아 들으니까. 교수를 위한다면 모르지만 학생을 위한다면 반드시 영어로 수업해야 한다. 내 퇴임 후에도 KAIST가 영어 강의를 되돌릴 수는 없을 거다. 한국어로 강의하면 당장 경쟁력이 뚝 떨어지니까. 아시아에서 경쟁력 있는 홍콩과기대 등도 다 영어로 강의하는 학교 아닌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개혁 전도사로 불리다 7년 후 총장을 마감할 때는 불통 이미지가 많이 부각됐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억울했던 게 뭔가.

 “난 억울하다 생각해본 적 없다. 싸울 건 싸우고 협조 받을 건 받았다. 억울할 게 뭐 있나. 내 뜻대로 했는데. 다만 KAIST에 없었으면 좋았을 문화가 있었다는 게 섭섭할 뿐이다. 일류 대학이 되려면 문화가 매우 중요하다. 아닌 얘길 만들어내고 그걸로 몰아치고, 그게 통하고. 꼭 대학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불통이란 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얘기한다고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다. 또 다른 이유를 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본질은 다른 데 있는 경우도 있다.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소통이 안 된다고 하더라. 소통? 그런 게 소통이라면 난 아직도 모르겠다. 일대일로 얘기할 땐 통하는 것 같다가 헤어지자마자 딴소리 하더라. 학생 가운데서도 극소수만 불통이라며 불만스러워했다. 한국 사회는 극소수가 사회를 좌우한다. KAIST엔 좋은 교수, 좋은 학생이 훨씬 많다. 잘될 거다.”

-한국서 세계 일류 대학이 나오려면 뭐가 필요할까.

 “정부가 대학을 우체국이나 철도청 대하듯 하면 안 된다. 정부는 손 떼고 대학에 자율권을 줘야 한다. 심지어 사립대학에도 돈 몇 푼 주고 간섭을 심하게 하지 않나. 사립대가 잘못한다고 단속한다는 건데 단속한다고 대학이 잘되나. 교육부 국·과장 몇 명이 다양한 교육현장을 다 주무르는 건 문제다. 교육적 면에선 다양성이 중요하다. 그걸 우체국처럼 획일화하려고 하면 안 된다. 고등학교도 마찬가지겠다. 연구하는 학자를 섬기기보다 신문에 글 많이 쓰는 교수를 대접하는 것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신문에 의견 쓰는 건 학문이 아니다. 그런 데 시간을 다 보내면 언제 연구하나. 학교 내에서도 일 잘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서남표 전 총장 가족. 네 딸과 사위가 모두 모였다.
-다시 가족 얘기를 좀 해보자. 아내는 어떻게 만났나.

 “아내가 수재다. 이화여대 약학과를 나와 보스턴에 유학 왔다 나를 만나 1961년 결혼했다.”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결혼 후 살림만 했나.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집안일 걱정 안 하게 해준 덕분이다. 아이들 교육에는 나는 공이 하나도 없다. 아내가 정말 열심히 길렀다.”

 (※서 전 총장은 책에서 ‘아내가 아이들에게 넌지시 물으니 아빠능력평가 점수로 100점을 줬다고 한다. 가화만사성은 동서양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 집안 중심은 내가 아니라 아내 서영자다. 내 아내는 아무리 피곤할 때라도 아이들이 집에 친구를 데려왔을 때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아이들 모두 사립학교 보내는 건 교수 월급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아내도 힘들었을 텐데 반대 한번 한 적 없다’고 썼다.)

-딸 모두 사립학교를 보냈다.

 “고등학교 때 워낙 고생하면서 배워 오히려 대학 들어가서는 공부하기가 쉬웠다. 한국 영어교육은 문법을 강조하지 않나. 미국은 쓰는 걸 엄청 강조한다. 특히 사립 고교가 그렇다. 돌이켜보면 대학보다 고교에서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그래서 딸들도 모두 사립학교 보냈다.”

 (※네 딸 모두 보스턴 인근 명문 콩코드 아카데미를 나왔다. 이 학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자녀들이 나온 학교로도 유명하다. 막내딸이 졸업할 때 교장이 ‘드디어 서 다이내스티가 끝났다’고 농담하며 맨 마지막에 졸업장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미 사립학교를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은 건가. 요즘 유학 열기가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관심이 많다.

 “장단점이 있다. 돈도 돈이지만 너무 어릴 때 유학 가면 한국 정서나 문화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는 손해인 것 같다. 한국 문화를 접하고 한국 책을 볼 기회가 줄어드니까. 한국에서 살 사람이라면 너무 어릴 때 유학하는 것은 좀 문제 아닐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교육에 너무 시달리다 보니 부모가 그걸 피하려고 유학을 보내는 경우가 많더라. 그렇다면 한국 교육 시스템이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부모 욕심을 채우려고 애들을 휘두르지 말아야 한다.”

-미국 학부모는 다른가.

 “사실 똑같다. 부모는 다 자식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길 바란다. 다만 정도의 차이겠지. 미국 부모는 무리해서라도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겠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 그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미국은 꼭 명문대를 나와야 성공하는 사회는 아니다. 포드던가, 미국 기업이 낸 통계를 보니 명문대를 어중간한 성적으로 나온 사람보다 어느 대학이든 그곳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던 사람이 성공했다더라. 그런데 한국은 좀 다른 것 같더라.”

-뭐가 다른가.

 “한국은 명문대 나와 자기들끼리 뭉치고 남을 배척하는 문화가 있다. 학연·지연을 지나치게 찾는다. 본인의 실력보다 어느 그룹에 속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안(insecurity)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은 자신의 꿈만 있다면 학교를 중퇴하고 꿈을 좇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다. 반면 한국은 틀에 박힌 종점을 정한 후 거기를 향해 한 발자국씩만 다가가려 한다. 직업을 꿈으로 삼을 수는 없다. 가령 의사가 되겠다면 어떤 병을 고치겠다는 꿈을 갖는 것과 그저 의사라는 직업을 가져 평생 편하게 살겠다는 것은 차이가 많다. 그동안 우리 국민이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인지.”

-고생 안 해본 젊은이가 안정된 직업을 찾는 경향이 더 심하다.

 “음. 생각해 보니 미국은 평생이 보장된 직업이 없다. 고시처럼 한국에선 뭐든 시험 잘 봐서 통과하면 그 다음부터는 편안하게 진급한다. 미국은 시험 한번 패스해서 앞길이 보장된 시스템은 없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