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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92> 권노갑 최고위원의 전화

1994년 2월 대학 총장으로 갈 기회를 다시 얻었다. 3년 넘게 공직과 떨어져 생활하던 나에게 명지대 교수협의회 인사들이 찾아왔다.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영덕 전 총장의 후임으로 나를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수서 사건과 청와대 외압으로 서울시립대 총장을 맡지 못한 일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대학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다. 아버지(고형곤)는 전북대 총장을 지냈다. 선친이 간 길을 따라 밟아본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명지대 재단이사회의 추천을 받아 총장 후보로 단독 출마했다. 3월 15일 교수들은 찬반 투표를 했고 184명 중 165명이 찬성했다. 교수회와 학생회 사람들을 만나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겠다. 대학 행정을 쇄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운데)가 2005년 6월 26일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www.cyworld.com/letsgo) 방문 건수 10만 회 돌파를 기념해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호프미팅’을 열었다. 그는 명지대 총장 때부터 호프미팅을 즐겨 해왔다. 사진은 호프미팅에 초청한 미니홈피 방문객들과 맥주잔으로 건배를 하고 있는 고 전 총리. 당시 그는 대권 후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중앙포토]
 대학 현장에 가보니 교수와 학생이 만나 직접 대화하는 일이 없었다. 권위주의 시대에 시위에 나가려는 학생들과 이를 말리는 교수들 사이에 생겼던 벽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 벽을 허물어야 했다. ‘총장이 맥주를 살 테니 원하는 학생은 모이라’는 ‘총장과의 호프미팅’을 벽보로 알렸다. 날짜와 장소도 적어놨다. 벽보가 붙은 지 사흘쯤 지났는데 총장 비서실로 전화가 왔다. “누가 총장 이름을 내걸고 벽보로 장난을 쳤다”는 얘기였다. 총장 비서실에서 “사실이다”라고 확인해줬다.

 반응은 괜찮았다. 학교 앞 맥주집 ‘비어뱅크’에 학생 200여 명이 모였다. 학교가 어떻게 변했으면 하는지 학생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틈날 때마다 이런 자리를 마련했고 ‘호프미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공직으로 돌아가서도 호프미팅을 이어갔다. 이후 국무총리로,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직원들과, 기자들과 자주 호프미팅을 가졌다. 총리였을 때 저녁 늦게 불 켜진 사무실이 있으면 직원들을 데리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뒤편 건물 지하의 맥주집으로 향했다. 야근이 잦은 교육부·행정자치부(현 안전행정부) 직원들이 단골 상대였다. 좋아하는 맥주도 마시고 그들의 어려움도 들었다. 청사 안에서 듣지 못했던 솔직한 현장의 소리를 기자들과 호프미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총리로서, 시장으로서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기자들에게 말하고 설득하는 기회도 됐다. 그 누구와의 만찬보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명지대 총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94년 말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휴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민주당 권노갑 최고위원이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직접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작스러웠다. 그와는 만나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 첫 통화이기도 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대답을 했다.

 “제가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전 지금 공중전화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어떻게 다시 연락을 주시겠단 말씀이신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자기 개인 전화는 도청이 되니 안 된다. 직접 만나서 말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란 뜻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아내를 통해 연락하겠습니다.”

 권 위원 부인과 내 아내는 경기여고 동기(44회) 동창이다. 권 위원에게 연락을 했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에 있는 내 개인 사무실에서 만나자. 정치인과 언론인이 출입하지 않는 곳이고 남의 눈에도 안 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약속한 시간에 그와 단 둘이 사무실에서 만났다. 권 위원이 말했다.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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