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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연 1회 정도 남북 정상간 만남 있어야"

국가정보원은 24일 100여 쪽 분량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全文)과 8쪽 분량의 발췌본을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배포했다. 회의록 전문의 표지엔 ‘『2007년 남북정상회담』회의록(10.2~4 평양)’이란 제목과 ‘2008년 1월(생산)’이란 문건 작성 날짜가 적시돼 있었다. 하단에는 ‘국가정보원(2013.6.24)’으로 국회에 배포한 날짜를 적어놓았다.

1차 회의

▶일시: 10.3(木) 09:34~11:45(131분)

▶장소: 백화원 영빈관

▶배석자-南: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백종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기록)

-北: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정일: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하늘길을 열었고, 노 대통령께서는 육로로 온 것이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수해 때문에 도로 정비가 잘 안 돼서 불편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그렇지 않았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으면서 제 스스로 감동을 느꼈습니다. 위원장께서 직접 마중 나와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김정일: 남쪽에서 대통령이 오시는데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통령: 나로서는 5년 동안 기다렸던 만남이고요. 다음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김정일: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듣겠습니다.

 대통령: 아리랑 공연에 대해 큰 그대를 가지고 있고, 위원장님과 함께 볼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오늘 아리랑 공연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김양건: 장군님께서 일정이 바쁘시기 때문에….

 김정일: 일없어. 일없어. 진지하게. 오전에 다른 일정이 없으면 몰라도….

 대통령: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반목과 대결에서 벗어나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을 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그 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속도를 높여서 신뢰구축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그동안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평화정착, 두 번째는 경제협력의 확대, 세 번째로는 통일과 화해라는 세 분야에서의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정상 만날 때 북측 대변인 노릇”

 핵문제는 관련 각 측의 노력으로 해결의 방향을 잡았으며, 이는 김 위원장께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도력을 발휘해 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55년간 지속되는 현 상황은 청산되어야 하며 이러한 면에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께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문만 열어놓는다면 미국이 이에 상응한 관계개선 조치를 속도를 내서 취하도록 계속 재촉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남과 북이 주도해서 평화체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을 출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협상개시에 도움이 된다면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방식대로 3국 정상이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남북 간 화해를 제도화하기 위해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적어도 연 1회 정도는 남북이 정상 간에 만남을 만들어야 하며, 당국 간 상설 협의기구도 기구로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상호 개설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이미 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북경 올림픽에 남북단일팀 참가를 성사하기 위해 정상이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양건: 기본적으로 다 되었습니다. 어제 상임위원장 동지가 구체적으로 말씀드렸기 때문에 또 그대로 보고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

 김정일: 밤에 보고 받다보니까 잘…

 김양건: 다 아시는 것이고, 다 우리 충분히 논의된 문제입니다.

김 “6·15선언 빈 구호 빈 종이 돼버려”

 김정일: 내가 김대중 대통령께도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얘기했습니다. 자꾸 선언을 내자고 제기하길래. 7·4 공동선언 때 우리 민족이 대단히 화해에 넘쳐나서 그걸 크게 기대를 걸었는데, 이런저런 정권의 교체와 정세변화로 해서 빈종이짝이 되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좋은 거 하나 내자고 자꾸 독촉을 해서 그래서 6·15 공동선언, 쌍방이 힘들게 완성을 시켜서, 난 6·15 공동선언이 아주 훌륭한 문건이라고 생각… 6·15공동선언 5년 동안의 역사 시간을 보면 그저 상징화된 빈 구호가 되고, 빈 종이, 빈 선전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선언은 난 개인 생각으로는 뭐 필요하겠는가. 그저 정부라고 하면 문민정부와 참여정부 이 두 정권이 왔다 갔다 한 것밖에 없는데 자꾸 문서화되고. 앞으로 어느 정권이 들어서면 그 다음에 또 새로운 선언이 나오자 하고… 빈말이 될 바에는 어느 것 하나를 기준으로 해서 그 기치를 들고 나가면 좋지 않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남 사이의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방장관회의를 하자고 제기했는데, 그것도 우리가 안 하자 한 것도 아니고… 자주성들이 결여되다 보니까 지금 지체되면 지체되고 연기되면 연기됐지…

 김양건: 저번에도 그래서 중단됐습니다. 제주도…

 김정일: 경협문제 같은 것도 총리급에서 논의돼야 되지 정상수준에서 암만 합의 봤다 해도 집행단계는 총리급에서 해야 되기 때문에 총리급 회담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남쪽 사람들이 자주성이 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자꾸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 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주성 있게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면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로 국한시켜서 하자 이렇게 하면 되겠는데 조금 자주성보다도, 자주성이 없다고 하면 너무 인격모욕하는 것 같은데 좀 이렇게 눈치보는 데가 많지 않은가.

 조선전쟁에 관련 있는 3자나 4자들이 개성이나 금강산 같은 데서 분계선 가까운 곳에서 모여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공동으로 선포한다면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이번에 모처럼 마련된 수뇌회담에서 조금 희망을 주고. 적대관계를 완전히 종식시킬 데 대한 공동의 의지가 있다 보인다 하는 것을 하나 보여주자 하니까 서해 군사경계선 문제, 이 문제를 하나 던져 놓을 수 있지 않는가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는가. 그것 가지고 자꾸 쌈질하지 말고, 이걸 하자고 하는 조건에서 어떤 조건이 구비돼야 되갔다.

 당장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는 수역 내에, 그 수역의 범위를 넓히자 하니까 우리 북방한계선까지 군대는 해군은 물러서고 그 담에 그 안에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이렇게 평화수역을 하면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겠는가. 바다에 종이장 그려논 지도와 같이 선도, 북방한계선은 뭐고 군사경계선은 뭐고, 침범했다, 침범하지 않았다, 그저 물위에 무슨 흔적이 남습니까. 그저 생억지, 앙탈질하는 게 체질화되다 보니까 50년 동안, 자기 주의·주장만 강조하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전번에 서해사건 때도, 실제로 흔적 남은 게 뭐야? 흔적 남은 게 뭐 있는가? 대동강에 배 지나간 자리고,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밖에 없다. 배 지나간 자리도 일시 무사 일어나고 없다. 흔적이 없는데. 그래서 내가 자꾸 앙탈진다 생각하지 말고 공동수역 만들면 되지 않나, 그럼 분쟁점이 하나 가셔지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가…

 김양건: 우리 참가했던 단장이 여기 대기하고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다면 불러서 들어보시죠.

 김정일: 나도 아직 전문으로만 봤지. 그분이 어저께 왔어요. 계관동무 오라 그러라우.

 대통령: 위원장께서 이번엔 확실히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시고 많은 양보를 하신 것으로 그렇게 보고받았고, 그렇게 이해가 됐습니다.

 (김계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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