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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협상술 "시간이 얼마 없는데 … "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에는 김정일(2011년 12월 사망) 국방위원장의 대남 인식과 상대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생각, 스타일 등이 생생히 드러난다. 사실상 공개되지 않을 대화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속내까지 드러내는 듯한 대목도 있다. 그동안 TV화면 등으로 나온 공개언급과는 차이가 난다는 게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정일은 10월 3일 오전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131분간의 첫 회담을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의 연장선상이란 의미부여로 시작했다. 김 대통령이 하늘길을 열었고, 노 대통령이 육로로 온 것에 대해 “뜻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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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적으로 회담 시간을 빡빡하게 잡고 다른 일정이 있음을 부각시켜 노 대통령을 초조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회담 초반 배석한 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이 “장군님께서 일정이 바쁘시기 때문에”라고 말하자 “일없어. 일없어. 진지하게. 오전에 다른 일정이 없으면 몰라도”라고 말했다. 또 김양건 부장에게 그는 “내 회의도 다 저녁시간에 돌려라. 오늘 외무성 사람들 몽땅 오면서 얘기하려 했는데… 노 대통령님 끈질긴 제의에 내가 양보해서…”라고 말한다. 또 “내일 국방위원회 일정이… 내일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 대통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식사를 한번 하려고 한다”고 강조하는 장면도 엿보인다.

 김정일은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길 회피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오전회의 말미에 노 대통령이 서해 문제를 더 논의하자고 말하자 “군사회담에서 꼭 상정되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냐”라고 넘어가려는 태도를 드러냈다. 노 대통령이 현안 논의로 들어가려 하자 김정일은 “어제 회담에서 이야기가 다… 밤에 보고받다 보니까”라며 빠져나가려는 말을 했다. 전날 노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만남이 회담이고 자신은 노 대통령을 접견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뜻이란 게 남북회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회담 외적인 문제를 들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전술도 자주 선보였다. 오전 회의를 마치며 김정일은 노 대통령에게 “오침 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노 대통령은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고 하자 “나는 40년 동안 오침을 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이재정 통일장관이 “대단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라고 하자 김정일은 “조금 잠들면 설치고, 많이 자면 골 아프고”라며 답했다.

 남북 문제나 국제관계 현안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북한이 중국 경제권에 편입될 우려가 있다고 하자 “경제분야에서는 동북 3성이 아니라 북을 염두에 두고 동북 4성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남측의 대북 경공업 원자재 제공 문제가 거론되자 “그게 8000만 불 정도”라며 남북 경협 프로젝트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다.

 북한 군부에 대한 솔직한 얘기도 털어놓는다. 노 대통령이 “남쪽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 할려구 합니다. 북측도 우리가 얘기듣기로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자 “완고한 2급 보수랄까요”라며 웃음을 보인다.

 대남담당인 김양건 통전부장이 최측근으로서 단단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점도 파악할 수 있다. 김양건은 북한의 명목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김정일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일이 “양건 동무에게 얘기들었는데, 우리 상임위원장이 너무 오래 설명했다고 하더군요”라는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때 약속한 서울답방을 이행 않고 있는 배경도 김정일의 말에서 드러난다. 노 대통령이 “수시로 보자고만 말해달라”며 정상회담 정례화를 간청하듯 말하자 김정일은 “수시로? 문제 있으면 호상방문하는 거고…”라며 얼버무렸다.

 남한 언론에 대해서는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김정일은 “요새 기자들은 만민을 쥐었다 놨다 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젠 기자가 아니고 작가입니다”라며 “기자들이 모든 이야기를 다 꾸며내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북측 기자들은 그런 기자들 없죠”라고 묻자 “우린 사실대로 그저 좋으면 좋고, 나쁘다면 나쁘고”라고 주장한다. 부정적 기사를 전혀 다룰 수 없는 북한의 현실에 대해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회담을 마무리하며 김정일은 “임동원 선생(전 국정원장) 건강하지요”라며 안부를 묻는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예 건강합니다”라고 답하는 걸로 103쪽짜리 회의록은 끝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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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