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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 한 자루로 피란방송 지키려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고(故) 김현수 국방부 보도과장의 비석. ‘1950년 6월 28일 중앙방송국에서 전사’라고 씌어 있다. [정용수 기자]
“방송국을 사수(死守)하라!”

 전쟁 등 국가 위기 발생 땐 전선(戰線)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언론이다. 휴대전화는 고사하고 유선전화 사용조차 여의치 않았던 6·25전쟁 때 라디오는 국민이 전쟁 상황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개전 초기 서울 정동 덕수궁 인근에 있던 중앙방송국(현 한국방송)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국방부 보도과장이 있다. 29세로 요절한 고(故) 김현수 대령이다.

 6·25 개전 초 중앙방송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차례 전시 상황을 보도했다. 전쟁 발발 이틀째인 26일 방송은 우리 군이 북한군을 격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군이 해주를 점령했다”거나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압록강에서 먹을 것”이라는 내용도 흘러나왔다. 결과적으로 오보였던 셈이다.

 사흘째인 27일 갑자기 전방과의 통신이 두절됐다. 방송을 주관하던 명동의 국방부 보도과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중앙방송엔 국일관 등 당시 이름난 요정에서 공연을 하던 여성들도 방송국에 출근해 생방송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방송 출연 예정이던 요정 아가씨들도 방송국에 오지 않았다.

 그 시절 중앙방송 기술파트에서 일했던 박태환(86)씨는 “당시 중위 한 명이 파견돼 있었지만 그도 본부와 연락이 안 됐고 방송 내용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요즘처럼 휴대전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비가 와서 그러는가 싶어 어쩔 수 없이 레코드 판을 걸어 노래만 틀어줬다”고 회고했다.

 홍양보 아나운서는 본인이 직접 전방 상황을 비행기를 타고 보고 와서 방송하겠다며 여의도 공군비행장을 찾아가 비행기를 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국방부 공보과 장교들이 방송국에 파견돼 있었지만 이들도 전황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이날 저녁 8시. 대전방송국으로부터 “이유를 묻지 말고 9시에 마이크를 대전으로 넘기라”는 요청이 왔다. 오후 9시가 되자 라디오에선 “유엔군이 오기로 했다. 우리 국군이 잘 싸우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대통령이 대전에서 연설한 내용이 방송된 것이다.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정부가 이미 대전으로 옮긴 후라는 걸 알게 되자 방송국 건너편의 미 대사관에선 문서를 파기하는 연기가 빗속에서도 피어올랐다. 방송국을 지키던 군 병력은 언제인지 모르게 철수해버렸고, 포성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북한군 전차 소리도 들렸다. 방송국 기술자와 아나운서들도 이날 밤 11시까지 이 대통령의 육성을 반복하면서 방송을 마친 뒤 이동용 FM송출기 하나만 들고 28일 새벽 2시 피란길에 올랐다.

 북한군의 서울 점령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국방부 보도과도 서울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피란 방송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김현수 보도과장이 직접 나섰다. 김 과장은 피란 방송을 한 뒤 방송국을 폭파하고 남하할 계획이었다.

 28일 새벽 3시. 방송국 현관에 도착한 김 과장은 국군 복장을 한 일군의 사람들과 부닥쳤다. 그쪽에서 ‘누구냐?’고 물었고, 그는 ‘김 대령이다’라고 응답했다. 그 직후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졌다. 국군 복장을 한 그들은 인민군 특수부대 요원들이었다. 방송국 직원들이 대피한 직후 그들이 이미 방송국을 장악한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모른 김 과장은 권총 한 자루로 그들과 맞섰다. 그러나 북한군 자동소총(따발총)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의 시신은 방송국 인근에 버려졌다. 박태환씨는 “김 과장은 모든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한 명의 목숨이라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방송국을 찾았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1921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난 김 과장은 해방 직후 군사영어학교를 이수한 엘리트 군인이었다. 정부는 그를 준장으로 한 계급 추서하고, 시신을 수습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글, 사진=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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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