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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6세에 장원급제한 강세황 … 정치적 불운이 예술혼 불지폈다

『송도기행첩』 중 ‘태종대’. 먹의 농담(濃淡)을 이용해 바위의 입체감을 표현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겸재(謙齋) 정선(1676~1759)과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는 익숙하지만, 표암(豹菴) 강세황(1713-1791)이라는 이름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면 이 전시에 주목하시길. 표암 탄생 30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25일부터 시작하는 ‘표암 강세황-시대를 앞서 간 예술혼’전이다.

 강세황은 겸재의 후배이자 단원의 스승으로, 문예가 활짝 꽃피었던 18세기 ‘조선 르네상스’의 중심에 서 있던 화가였다. 전시에는 모두 103점이 나온다. 시문집 『표암유고(豹菴遺稿)』와 화집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은 물론 산수화·초상화·사군자화, 그리고 다양한 글씨까지 표암의 삶과 예술을 총망라한다.

 강세황은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강현(1650~1733)의 막내아들로, 전형적인 명문가 출신이다. 하지만 큰형이 과거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른 데 영향을 받아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경기도 안산에서 30여 년을 ‘야인(野人)’으로 지냈다.

 하지만 이런 불운은 예술세계를 살찌우는 자산이 됐다. 마흔다섯 살에 송도(개성)를 여행하며 그린 그림을 모은 『송도기행첩』은 타고난 재능과 남아도는 시간, 치열한 탐구정신이 합쳐져 탄생시킨 걸작이다. 태종대·박연폭포·백석담 등 송도의 절경을 담은 이 그림에서 그는 원근법과 색깔의 농도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음영법 등 당시로서는 낯선 서양화법을 적극 실험했다.

 또 아들이 현감으로 있던 전라도 부안 일대를 여행하며 그린 ‘우금암도(禹金巖圖)’에서는 가늘게 쪼개진 바위를 개성있는 필치로 표현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미술관 소장품으로 국내 처음 공개된다.

 표암은 맑고 담백한 채색으로 쓸쓸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남종문인화’의 거장이었다. 그런데 그가 개인적으로 자신 있어 한 것은 난초와 대나무 그림이다. 전시에 나오는 ‘난죽도권(蘭竹圖卷)’은 시원시원한 구성과 완숙한 필력이 돋보이는 강세황 사군자의 대표작이다.

 그는 무·복숭아·해당화 등의 정물을 산뜻한 노란색과 푸른 색 등으로 채색한 서양 수채화풍의 작품들도 다수 남겼다. 작품활동뿐 아니라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비평하는 것도 즐겼다. 그가 “흐린 눈이 갑자기 밝아지는 듯 하다”고 평한 겸재의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등도 함께 전시된다.

 표암은 예순여섯에서야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이후 탄탄대로를 걸었다. 예술을 사랑한 정조의 보살핌 속에서 조선 예술계의 거두로 활약하는 화려한 말년이었다. 그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70세에 그린 자화상(보물 590-1호)에는 직접 설명까지 붙였다. ‘가슴엔 많은 책을 간직했고 붓은 기세가 오악(五嶽)을 흔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어찌 알겠는가만 나 스스로 재미를 삼는다’고 했다. 스스로 걸어온 길을 긍정하는 거장의 여유가 느껴진다. 당대 최고 초상화가였던 이명기가 그린 강세황 초상(보물 590-2호)도 전시에 나온다. 8월 25일까지. 무료. 02-2077-9000.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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