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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터키와 브라질 사태의 교훈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청와대에 제대로 된 참모가 있다면 지금쯤 대통령 책상 위에 이런 보고서 하나쯤은 올라가 있어야 한다. 제목을 붙이자면 ‘터키와 브라질 소요 사태의 시사점’ 정도 될 것 같다.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준비에 정신이 팔려 아무도 그런 보고서를 만들 생각을 안 했다면 대통령의 불행이다. 대통령의 시야는 먼 곳으로도 열려 있어야 한다. 그걸 돕는 것은 참모의 역할이다.

 터키와 브라질의 소요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신흥경제국의 모범생으로 각광받던 두 나라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대규모 시위 사태의 발단은 서로 다르지만 전개되는 양상은 비슷하다. 4주째 접어든 터키 사태의 경우 도심 재개발 문제가 발단이었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 도심에 위치한 탁심 광장 인근의 작은 공원을 재개발해 쇼핑몰을 조성하려던 시 당국의 계획에 일부 환경단체 회원들이 반발하면서 불이 붙었다. 브라질의 경우, 지자체들의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 계획 발표가 화근이었다. 불만을 품은 일부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벌인 것이 사태의 출발이다.

 이후 전개 과정은 일반적인 소요 사태의 패턴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한 경찰의 과잉 진압이 시민들을 자극하면서 참가 인원이 늘고, 진압봉과 방패를 든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서 시위는 점점 과격해졌다. 사상자가 속출하고, 충돌이 격화되면서 시위 규모는 점점 커지고, 참가 지역도 전국으로 확산됐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위와 관련한 각종 정보가 순식간에 공유되면서 시위의 확산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시위의 배경에는 차이가 있다. 터키의 경우 올해로 집권 11년차에 접어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에 대한 반감이 시위의 동력이라면 브라질의 경우에는 부실한 공공서비스와 물가고, 정치권의 부패 등 민생과 국정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재료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최근 10년 새 과감한 개혁 조치를 통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소득 수준과 함께 국가의 위상도 높아졌다.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로 평가받는 터키는 아시아·유럽·중동을 잇는 근동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는 브라질은 두 대회를 국가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가 위상이 높아져도 그것이 정치 수준과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조그만 불씨도 SNS의 바람을 타고 언제든지 큰 불길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두 나라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터키 공화국의 세속주의 문화를 이슬람주의적 전통으로 되돌리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공공장소에서 남녀의 키스를 금지하고, 금주와 여성의 스카프 착용을 권장하는 등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조치에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성장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돼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상황에서 교통·교육·의료 등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의 질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쌓여 왔다.

 시위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은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외부 불순 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내세우며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확고한 지지층을 등에 업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난국을 정면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불행한 결말을 피하려면 일정한 양보와 통치 스타일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는 옥고까지 치른 좌파 운동권 출신답게 시위대를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시위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위대의 다양한 요구에 대해서는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전격적인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의 정면충돌로 생긴 불꽃이 사그라질지, 폭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각에선 제2의 촛불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과거를 둘러싼 소모적 공방을 끝내고 민생을 챙기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그 첫 단추는 대통령이 끼우는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경찰의 정치와 선거 개입 논란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한 개혁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터키와 브라질 사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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