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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버냉키 연준 의장의 때이른 승리 선언

정경민
뉴욕 특파원
요즘 맨해튼은 어딜 가나 아파트 공사다.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돈 냄새라면 개 코보다 예민한 게 건설업자다. 뉴욕·뉴저지주 일대 한식당은 바닥 경기 바로미터다. 2009년 여름, 특파원 부임 후로 요사이처럼 한식당이 붐비는 건 본 적이 없다. 실업률이며 경제성장률 같은 지표까지 들이댈 필요가 없다. 경기회복 기운은 봄바람처럼 피부에 와 닿는다. 믿었던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월가의 발등을 찍은 게 무리도 아닐 성싶다.

 버냉키는 연준 100년 역사를 새로 썼다. 중앙은행은 태생적으로 성장보다 물가에 집착한다. 화폐는 실물의 그림자란 교조 때문이다. 돈 갖고 장난쳐봐야 포장지인 물가만 들먹거리게 할 뿐이란 얘기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연준은 달러를 공짜로 무제한 찍어낼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지존(至尊)’이다. 그 힘으로 디플레이션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른바 ‘버냉키 독트린’이다.

 버냉키야말로 2008년 금융위기와 맞설 준비된 구원투수였다. 딴 건 몰라도 2006년 그를 연준 의장에 앉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람 하난 제대로 알아본 거다. 프린스턴대 교수 시절 1930년대 대공황을 죽어라 파헤쳤던 그는 거침이 없었다. 2009, 2010년 두 차례 ‘양적완화(QE)’ 정책으로 2조3500억 달러를 퍼부었다. 그래도 약발이 없자 반대파 공격에도 아랑곳없이 지난해 9월 세 번째 양적완화 카드까지 빼들었다.

 오죽하면 헬리콥터 타고 하늘에서 돈을 막 뿌렸다는 비아냥에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까지 얻었으랴. 시장이 말귀를 못 알아듣자 직접 기자회견장까지 납셨다. 은자(隱者)의 표상이었던 연준 의장으로선 ‘기행(奇行)’에 가까운 파격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19일(현지시간) 마침내 ‘출구전략’ 시간표를 제시했다. 디플레이션과의 6년 전쟁에 서둘러 승리를 선언한 거다.

 내년 1월 퇴임을 앞둔 그로선 조바심이 났을지 모른다. 자칫 후임자가 다 된 밥에 코 빠뜨릴까 미리 ‘대못질’까지 해두고 싶었을까? 그의 계산이 맞아떨어진다면 버냉키는 세계 중앙은행 역사에 길이 위인으로 남을 거다. 그러나 어쩐지 찜찜하다. 위기의 터널 끝에 선 미국 경제는 과연 체질을 개선했나? ‘세계 불친절·무사안일 공무원 올림픽’이 있다면 미국 공무원은 누가 뭐래도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거리엔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미국 회사 종업원은 어찌 그리 여전히 싸가지 없는지 불가사의하다. 미국의 자랑 애플도 삼성전자와의 맞짱에 진땀을 빼고 있다. 돈 버는 기계 월가는 날개 꺾인 지 오래다. 어쩌면 땅속에서 파내고 있는 ‘셰일가스’와 버냉키가 뿌려댄 헬리콥터 머니가 착시를 일으키고 있는 건 아닐까. 반짝 부동산경기가 다시 거품까지 일으킨다면 다음 장면은 ‘안 봐도 비디오’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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