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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나의 새벽이 넘겨야 할 또 한 장의 페이지라면

나의 새벽이 넘겨야 할 또 한 장의 페이지라면 - 성기완(1967~ )


나의 새벽이 넘겨야 할 또 한 장의 페이지라면

나는 이 새벽이 가기 전에

부질없이 그걸 넘깁니다

넘겨진 뒷장에는 오늘도 어제처럼

불러도 소용없어 부르지 않은 이름이 써 있습니다

그 이름이 뒤로 가고 아무 글자도 없는

새로 넘겨진 하얀 페이지가

내일 나의 새벽이라면 나는 거기에

하루 종일 불러보지 않아 어색하게 굳어 있다가

각혈한 피처럼 툭 입속에서 떨어질

불러도 소용없는 그 이름을 또 써넣겠지요

그렇게 날들이 가고

뜻 없이 반복되는 이름으로 가득한

하얀 새벽의 페이지들은 낙엽처럼 쌓이고 쌓여

어느덧 두터운 책이 되어갑니다

늦은 가을날 나는 이 책을 숲으로 들고 들어가

안개 속에 던져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후로도 나의 새벽이 넘겨야 할 수많은 페이지라면

책은 끝없이 이어지고 계절의 숲 깊은 곳 여기저기서

불러도 소용없어 부르지 않은 당신의 이름이

짙은 연기로 까마득히 메아리치겠지요


어두워져야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밤낮을 바꿔 산다고 말하는 부류에 나도 가끔 속하지만 동틀 무렵 잠시 찾아오는 뿌듯함 외에 당최 장점을 찾을 수 없다. 멀쩡한 낮에는 주로 빈둥거리기 때문이다. 낮에 일을 하는 게 시간의 총량에서도 앞선다. 그렇다면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무슨 거부하지 못할 매력이 있다고 새벽까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일까? 얼마 전 어느 평론가는 『밤이 선생이다』라는 에세이를 출간했다. 밤이면 밤마다 공부만 했다는 것일까? 새벽에만 깃드는 글의 정령이 있다는 것일까?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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