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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학교 떠나고 가해자는 남아 … 피해자 위해 바뀐 건 없었다

학교폭력 피해는 성폭력 피해와 유사하다. 자라나는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남기는 상처가 깊고 후유증이 오래 간다. 지난해엔 학교폭력 피해자 중 44.7%가 자살을 생각했으며, 49.3%는 고통이 오래 지속된다고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정부가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학교, 상담센터 등 전문기관, 보상 체계 등이 따로 놀아서였다.


인천에 사는 임모(43·여·직장인)씨는 지난 3월 21일 새벽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날 갑작스러운 한기에 잠이 깬 임씨는 아파트 거실로 나갔다. 열린 현관문으로 찬바람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임씨는 반사적으로 아들 민규(15·가명) 방으로 달려갔다. 없었다. 혼비백산해 아파트 복도로 뛰쳐나갔다. 민규가 난간에 몸을 걸치고 멍하니 6층 아래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 돼! 민규야, 안 돼.” 임씨는 아들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그러곤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부둥켜 안고 울었다. 민규 모자를 내몬 건 학교폭력이었다.

 2011년 7월 중학교 1학년생 민규는 미술시간에 동급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얼굴뼈가 부러졌다. 사흘 동안 먹지도 못하고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그럼에도 가해 학생은 서면 사과와 교내 봉사 3일 조치만 받았다. 가해자 학부모는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에 치료비를 한 푼도 보태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학교는 그 전의 일상으로 너무 쉽게 돌아갔다. 얼굴보다 마음이 더 심하게 다친 민규만 그 일상에 끼이지 못했다. 그해 9월 민규는 인천시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고, 한동안 잘 지냈다. 하지만 악몽이 다시 찾아왔다. 중3이 되면서 동급생 용수(15·가명)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용수는 지난 3월 28일 민규를 교실에 가두고 마구 두들겨 팼다. 민규의 아랫입술이 찢어지고 치아 세 개가 흔들렸다. 임씨는 용수의 전학을 요구했지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는 학급 교체를 결정했다. 학교 측은 “지난 2년간 학급 교체는 상습적으로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에게 내려진 단 한 건이 전부”라며 “학급 교체도 중징계이고 자치위 결정이라서 학교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결국 임씨는 가해 학생을 경찰에 고소했다. 임씨는 최근 “재작년 폭행 사건 이후 2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피해자를 위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가해자 위주 사건 처리 안일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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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기관의 무관심과 가해자와 함께 교육을 받으라는 비정상적 제도가 피해자 가정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학교폭력 피해자의 경우 신체적 고통보다 자살까지 생각하게 하는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가 더 문제”라며 “피해자가 따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 취재팀이 지난 7일부터 서울·인천·대구·경기 등의 중·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 학부모 3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다른 학부모 8명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지난해 2월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피해자 지원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학교, 상담센터, 보상 시스템 따로 놀아

 법과 대책에서 피해자는 소외돼 있었고 학교와 지역 상담센터·학교안전공제회 등 현장 기관은 배려가 부족했다. 피해자 학부모들은 “가해 학생은 사건 이후에도 폭력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솜방망이 조치에 그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1학기 교육부가 집계한 전국 학교폭력 1만6021건에 대한 조치 중 가장 많은 것은 서면 사과(7820건)였다. 지난달 중학생 딸이 학교폭력을 당한 유모(43·여)씨는 “서면 사과는 이미 만들어진 사과 각서 형식에 이름을 채워넣는 것을 읽는 식의 겉치레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무거운 조치인 학급 교체는 567건, 전학과 퇴학은 각각 1957건, 127건에 불과했다. 고교생 아들이 3년 동안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걸 지켜봤다는 조순옥(52·여)씨는 “상습적으로 집요하게 아이를 두들겨 패야 겨우 하는 조치가 전학”이라며 “한 번의 폭력에도 아이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는데 가해자는 전학도 안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2차 피해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유씨는 “폭력사건이 끝나고 20일 정도 학교에 가지 않은 딸이 다시 등교하자 가해자 주도로 왕따가 시작됐지만 학교는 그런 일이 없다고만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치위 결정 이전에 보복을 막으려고 마련한 ‘가해자 우선 출석정지’는 요건이 까다롭다. 학교폭력 예방 관련 법에 따르면 2명 이상의 학생이 고의적·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경우 등에 한해 학교장이 조치할 수 있다. 유씨는 “아이가 가해자가 무서워 등교를 거부해 출석정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폭력과 달리 학교폭력에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없는 셈이다. 피해자가 처리 과정에서 밀려나다 보니 학교가 폭력사건을 덮는 일도 생긴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장 임모(57)씨는 동급생 5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피해 학생의 아버지 강모(49)씨를 협박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 신순갑 관장은 “교장 입장에서는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생각해 형식적으로 빨리 처리하거나 덮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처에 대한 치료비 지원 기구인 학교안전공제회도 사실상 있으나 마나다. 이 공제회는 2007년 설립됐다.

정부는 지난해 4월 학교폭력 피해자 학부모가 공제회를 통해 우선적으로 피해 지원금을 받은 뒤 공제회가 가해자 학부모로부터 구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치료비 지원제도 무용지물 … 0.3%만 이용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지난해 4~8월 학교폭력 피해자가 안전공제를 받은 건수는 불과 51건, 9400만원(건당 약 184만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3~8월 발생한 학교폭력 피해 건수 1만6021건의 0.3%다. 지난 한 해 동안 189건, 3억3000만원에 그쳤다.

 학교와 공제회의 무관심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중학생 아들이 집단폭행을 당한 유모(51·여)씨는 지난 3월 병원비 영수증을 제시하며 학교 측에 학교안전공제를 신청했다. 그러자 학교 측은 “가해자 인적사항을 알아오라”고 요구했다. 유씨는 “가해자 학교 측에 요청하자 주민번호는 개인정보라 줄 수 없다고 했다”며 “피해자 학부모들은 사건이 터지면 결국 소송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순갑 관장은 “지역에 따라 교장 승인 등 법에 없는 것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며 “제도 자체를 알려주지 않고 가해자를 찾아가라는 말만 해 피해자 학부모가 가해자 부모에게 사정하는 일까지 생긴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폭력사건 이후 정신이 극도로 피폐해진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 학교폭력 피해자 660여 명 중 44.7%가 자살을 생각했고, 49.3%가 이후에도 고통스러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공간은 거의 없다. 학교폭력 가해자·피해자를 대상으로 상담·치료 등을 하는 정부기관은 Wee(We+education·emotion)센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Wee센터를 비롯해 Wee클래스·Wee스쿨 등의 기관이 모두 가해 학생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피해 학생들이 가기를 꺼린다. 민규 모자도 자치위 결정에 따라 민규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하려고 수소문했으나 마땅히 갈 데가 없었다고 한다. 임씨는 “Wee센터는 아이가 가해자를 만날까 봐 무서워해 차마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중심 치료 프로그램 확충해야

 피해자 치료 프로그램을 갖춘 곳도 드물었다. 취재팀이 피해자의 가족으로 가장해 서울 강남·강서, 경기 안산 등 전국 5곳의 Wee센터에 문의한 결과 피해자 치료 프로그램을 갖춘 곳은 2곳이었다. 치료 전문가가 있는 곳은 서울 서부Wee센터 한 곳뿐이었다. 해당 분야 전문가와 피해자 가족들이 “전문 프로그램과 인력을 갖춘 피해자 전문 치료기관을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다.

 교육부 김영진 학교폭력대책과장은 “가해 학생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 지금까지 가해자 중심으로 센터 운영이 이뤄져 온 게 사실”이라며 “시일이 걸리더라도 피해자 중심으로 조금씩 바꿔가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오는 7월 처음으로 피해자 지원센터인 ‘해맑음센터’를 대전에 연다. 하지만 지난 15일 취재팀이 가 봤더니 주변에 논밭뿐인 외곽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곳이었다. 도심에 들어선 Wee센터와 입지부터 달랐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서는 ‘품행 장애’ 등 가해자의 공격성을 개선하는 교육·치료만큼 피해자 지원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품행장애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사회의 기본 규칙을 어기는 일종의 성격 장애를 뜻한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가해자의 품행장애를 고쳐 재발하지 않도록 교화하고 피해자에 대한 지원책도 함께 마련해 두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신진·윤정민 예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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