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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되돌아보는 역사의 고비 6·25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전쟁이었던 6·25는 이제 역사에 기록되고 그 안에서 인식되는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다. 3년1개월의 포화 속에서 요행히 살아남은 국민이나 나라를 지켜낸 참전용사들은 이미 80, 90대의 노경(老境)에 이르렀다. 이제는 전쟁의 체험담에 더해 6·25의 역사적 의의를 짚어보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날마다 축적되어 가는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정리해 통합하며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차원에서 역사를 이해한다면, 역사란 끊임없이 시도되는 의식적 창조 노력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지난봄 출간된 최정호 교수의 현대사 담론집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는 바로 그러한 역사의식에 입각한 창조적 노력의 모범이라 하겠다. 역사, 특히 현대사에 대한 사보타주나 기피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최 교수의 1980년 논문 ‘한국현대사와 한국전쟁-역사가와 언론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한국전쟁을 한국현대사의 기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최 교수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현대사의 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국가나 학자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영국은 1832년 의회제도의 대개혁, 독일은 1917년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개입과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 그리고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각기 현대사의 기점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왜 1910년 국권상실이나 1945년 해방보다도 1950년 한국전쟁을 현대사의 기원으로 설정해야 되는가. 최 교수는 한국전쟁을 ‘세계가 한국에 들어온 전쟁’이자 동시에 ‘한국이 세계에 들어간 전쟁’이었다고 규정한다. 한국전쟁은 민족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된 이념체제와 사회체제의 대립과 분쟁에 대행해 싸운 시민전쟁이며 동족 간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남북한에 더해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엔의 기치를 앞세운 16개국이 참전했던 한국전쟁이 한반도의 존재를 세계에 인식시키고 한국사를 세계사의 일부로 만든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와 한민족의 세계화 과정은 20세기 전반 독립운동기에 진행된 한민족 내부에서의 자주적 선택과 2차대전의 종전 및 냉전 초기의 국제관계가 뒤섞이며 일어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왕조시대를 마감하고 근대국가 수립을 지향한 독립운동은 영미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체제라는 두 모델을 놓고 양분되었다. 한편 1945년 연합국의 비밀협상 결과에 의해 한반도는 38도선 남북으로 양분되었고 동서냉전을 주도한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진주했다. 3년 후인 1948년 남과 북에 두 국가체제가 수립되었고 그 2년 후에 한국전쟁이 터진 것은 마치 역사가 예정된 수순을 밟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1949년 중국공산당의 내전 승리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에게 한국 침공에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어쨌든 통일이란 목표와 명분으로 싸웠던 한국전쟁은 막대한 희생을 치른 채 오히려 분단과 대결을 보다 공고히, 또 반영구화하는 결과만 남기고 1953년 7월 정전을 맞게 된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60년을 돌아보며 못내 안타까운 것은 20년 전 냉전의 종식이 가져다준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낸 것이다. 사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시작된 대변혁과 여기에 더해 덩샤오핑이 주도한 중국의 개방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세계 정치와 경제의 방향과 균형을 바꾸어놓는 역사적 전환의 큰 고비였다. 이러한 세계사의 전환점에서 한반도의 두 체제가 평화와 협력, 그리고 통일을 모색하는 적응 노력에 동참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당연한 민족사의 진전이었다. 일단 하나의 민족공동체 복원이란 공동목표를 지향하며 두 국가체제의 공존과 공동번영을 위해 모든 분야에서 평화적으로 협력한다는 1991년 말 남북기본합의서와 7000만 한민족의 안전을 확실하게 담보하는 최선의 약속인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참으로 시의적절했던 남북의 선택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의 하늘을 덮고 있는 전운은 한민족의 슬기와 역사의식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60년의 역사가 남겨준 교훈이라면 천하대세를 한사코 거스르는, 자주의 이름으로 고립과 역류를 택하는 ‘용기’는 삼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20년 전 김일성 시대 말년에 남북이 함께 이루어낸 공존공영의 궤도로 회귀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을 매년 6·25마다 되풀이해 오지 않았는가.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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