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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90> 수서 사건 ③

1991년 2월 12일 검찰은 수서 사건과 관련해 고건 전 서울시장과 박세직 당시 서울시장을 불러 조사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고 전 시장(오른쪽).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조사관이 사진기자를 막으러 뛰어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라면 임명권자의 지시나 청와대의 방침에 따르는 것이 상례다. 난 그 원칙을 따르려 노력했다. 하지만 세 번 청와대에 항거할 수밖에 없었다. 5·17, 명동성당 사태 그리고 수서 사건 때다.

 1990년 12월 27일 청와대는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장을 서울시장으로 임명했다. 나는 경질됐다. 최악의 경우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참담한 감정이 밀려왔다. ‘오후에 지하철 8호선 기공식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시청 간부들에겐 내색을 안 했다. 한창 사무실을 정리하고 있는데 김학재 도시계획국장이 찾아왔다. 그의 얼굴은 무척 어두웠다.

 “시장님, 혹시 수서 지구 때문에….”

 나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 장관이 10명이나 바뀌고 개편 폭이 꽤 컸어요. 설마 나 한 사람 쫓아내려고 개각을 했을까.”

 이어 이원종 내무국장이 찾아와 말했다.

 “무엇이든 심부름할 일을 말해주십시오.”

 “한 가지 마지막 부탁이 있긴 해. 서울시정에 그동안 협조해주신 분들께 이임 인사장을 보내주세요.”

 짧은 문안을 써서 이 국장에게 건넸다. 그중 한 문장이다. ‘오랫동안 서울시를 괴롭혀온 외부 압력이나 이권 청탁을 철저히 막아내겠다고 한 취임 때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공직에서 이미 물러난 나였다. 그냥 시장을 할 때 도움 받은 사람들에게 솔직한 생각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인사장에 있던 이 한 문장은 수서 비리 사건이 폭로되는 단초가 됐다.

김학재
 91년 1월 서울시는 수서지구에서 조합주택용 택지를 특별분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담당인 김학재 국장과 강창구 도시개발과장은 결재서류에 사인하길 완강히 거부했다. 박세직 시장과 윤백영 부시장만이 결재서류에 사인했다.

 그리고 91년 2월 3일 세계일보는 수서택지 특혜분양 비리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알려졌고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사태 초기 나는 오해를 받았다. 국회 사무처에서 수서 관련 청원심사 결과 통지문을 보냈고 나는 퇴임 직전인 90년 12월 13일 문서 접수 공람 확인란에 사인을 했다. 말 그대로 서류가 시청에 도착했고 내가 그 사실을 확인했다는 의미일 뿐 결재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사인을 두고 내가 시장일 때 수서 특혜분양 결정을 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갔다. ‘박세직 현 시장과 고건 전 시장이 책임 떠넘기기를 한다’는 비판이 언론에서 쏟아졌다. 진짜 책임자를 숨기고 잘못을 나에게 떠넘기려는 시청 내부자의 소행이 분명했다. 시청에서 제대로 근무했더라면 공람과 결재의 차이를 모를 리 없었다. 누군지 짐작이 갔지만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수서 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인물] 김학재 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지난달 29일 김학재(69)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을 만났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지하철건설본부장을 거쳐 조순·고건 시장 때 부시장으로 일했다.

 - 1990년 당시 도시계획국장으로 발탁됐을 때 어땠나.

 “나도 놀랐다. 그때 고 시장이 도라지 담배를 피웠다. 발령 받고 앞에 앉았는데 고 시장이 몇 분 동안 담배를 물고 말이 없다가 ‘남의 돈 먹지 마라. 수서 문제에 원칙과 소신을 지켜야 한다. 바람은 내가 막겠다’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서울시 한 직원이 다른 일로 뇌물을 받은 일이 신문에 났다. 고 시장이 ‘나는 복마전의 수괴가 될 생각 없다. 니들끼리 다 해라’라고 소리치고는 간부들 상대를 안 하시는 거다. 그래서 간부들이 자진해서 서약대회를 열고 ‘우리 이렇게 서약했으니 제발 봐달라’ 사정한 기억이 난다.”

 - 수서 사건 때 기억나는 일은.

 “특혜 분양은 안 된다고 완강히 반대하고 있는데 검찰에서 나를 잡으러 곧 온다고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 고 시장이 나를 불러서 ‘당신 내 얘기 서운하게 듣지 마. 당신이 나한테 그림을 선물하고 국장이 됐다고 소문이 도나 봐’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림이 아니고 도자기라고 얘기가 돕니다. 제가 안 드렸으면 된 거죠’라고 답했다.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퍼뜨릴 만큼 그쪽 압력이 컸다. 솔직히 겁나고 괴로웠다. 그래도 버텼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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