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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죠' 대신 "드실 만 하세요?" … 손님 앞에 겸손한 순댓국

17일 서울 은평구 증산종합시장 ‘우가네 순대국’ 좌판 앞에 주인 가족이 모였다. 왼쪽부터 두 여동생 미하·춘하씨, 33년 전 이 가게를 창업한 우숙하씨, 우씨의 아들 박흥식씨. [김상선 기자]

재래시장은 주차가 불편하고 이 가게 저 가게에 들러 장바구니를 채우려면 발품이 많이 들어 조금씩 경쟁력을 잃어 왔다. 1971년 문을 연 이래 20년 가까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서울 은평구 증산동 증산종합시장도 15년 전부터 주위에 크고 작은 마트가 생기면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증산종합시장에서 좌판으로 시작해 33년째 성업하며 가게 다섯 칸짜리 대형 식당이 된 순댓국집이 있다. 은평구민은 물론 멀리 경기도 고양시나 파주에서도 얼큰한 국물 맛 때문에 손님들이 찾아오는 곳 ‘우가네 순대국’이다. 창업자 우숙하(62·여) 사장과 두 여동생 춘하(53)·미하(48) 자매, 우 사장의 아들 박흥식(40)씨를 만나 손맛의 비결과 순댓국집 경영 노하우를 들어봤다.


자리에 앉아 주문한 뒤 채 5분이 안 지났다. 식당 앞 좌판에서 춘하 이모가 음식을 쟁반에 들고 와 내려 놓는다. 뚝배기에 담긴 순댓국에 공기밥·김치·깍두기·새우젓, 그리고 풋고추와 쌈장이 차례로 놓인다. 새우젓을 적당히 풀어 넣은 뒤 국물을 한 술 떴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하고, 걸쭉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입 안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순대와 머리고기는 깔끔하게 다듬어져 고급스러워 보인다. 비린 냄새가 없는 데다 맛도 고소하고 쫀득쫀득하다.

 흥식씨가 “드실 만하지요?”라고 말을 건넨다. 그는 맛의 첫 번째 비결로 신선한 재료를 꼽았다. ‘생물’ 외에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재료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조리를 잘 해도 소용없다”고 말했다. 맛이 떨어지면 손님들이 제일 잘 안다는 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믿음이다. 우가네는 하루에 순대 20㎏, 머리 8~9개, 내장 1.5kg, 간과 허파를 각각 두 개씩 갖고 온다. 재료마다 최고를 찾다 보니 거래처도 조금씩 다르다. 편육은 독산동, 미니 족발은 중앙시장에서 받는 식이다. 하루치 재료를 다 팔고 나면 그날 장사를 접는다. 뜨거운 음식이라 여름에는 겨울에 비해 재료를 70% 정도만 가져온다. 대신 여름에 줄어드는 매출은 열무국수가 채운다.

 우가네 음식 맛에는 역사가 있다. 우 사장은 79년 강원도 영월에서 상경했다. 월급쟁이인 남편의 생계 부담을 줄여볼까 싶어 둘째 흥식씨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80년부터 부업 전선에 나섰다. 우유배달부터 신발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신통치 않았다. 안 팔리면 재고 걱정, 다 팔리면 ‘혹시 내일 더 팔릴까’ 싶어 번 돈을 모두 털어 물건을 더 떼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증산종합시장에서 순댓국 솜씨가 좋던 할머니를 알게 된 게 인연이 됐다. 장사가 고단했던 할머니는 전세 50만원에 좌판을 내주며 순댓국 장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맛있게 요리하는 노하우도 전수해줬다. 3.75평 좌판을 디귿(ㄷ)자 모양으로 둘러싼 의자에 앉아 손님들은 정신 없이 주문을 쏟아냈다. 우 사장은 바쁜 일손에도 손님들의 음식 평가나 요구 사항을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히트 상품이 된, 마늘과 다대기를 다져 넣은 ‘속풀이 순대국’도 취객들이 주는 아이디어를 반영한 결과였다.

 우가네가 손님을 끈 데는 후한 인심도 한몫했다. 우 사장은 지금도 허기진 손님들이 순댓국이나 공기밥을 더 달라고 하면 돈을 더 받지 않고도 척척 부어 내준다. 우가네 15년 단골 박정욱(51·은평구 수색동) 씨는 “불쌍한 사람들이 지나가면 김밥을 그냥 내 줄 정도로 인심이 좋은 데다 맛 좋고 비싸게 안 받으니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거든다. 실제 우가네 손님의 60%가량은 단골들이다. 단골들이 새 손님을 데리고 오면 그 손님은 금세 단골이 된다.

‘우가네 순대국’의 메뉴. 국밥 6000원, 김밥 한 줄에 2000원, 순대 머리고기 큰 접시 1만원. [김상선 기자]
 좌판이 두 배로 넓어지고 손님이 늘자 90년부터 춘하씨가 일을 돕기 시작했다. 2001년엔 미하씨와 흥식씨도 합류했다. 흥식씨는 고교에서 제빵을 전공할 정도로 음식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일손에 여유가 생기면서 가게도 늘렸다. 재래시장 경기가 위축되면서 좌판 바로 앞에 있던 참기름집과 떡집이 점포를 비우고 나가자 2002년부터 이들 가게 네 칸을 차례로 사거나 전세 냈다. 우 사장은 “빈 자리가 날 때까지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보기가 민망했고, 바로 앞에 불 꺼진 채 닫혀진 가게를 두고 보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증산종합시장 관리부장 윤창수(79)씨는 “상권이 좋아 우가네 장사가 잘되는 게 아니라 우가네 덕에 죽은 재래시장 상권이 그나마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장사가 잘되자 하루는 흥식씨 지인이 찾아왔다. 다른 곳에 가게를 차릴 테니 순댓국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흥식씨가 몇 번을 가서 가르쳐줬지만 아무리 해도 우가네 맛이 나지 않았다. 그는 “재료를 받아와 다듬고 갖은 양념을 만드는 과정에 어머니와 이모들의 손맛이 보태져 음식 맛이 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문의도 여러 차례 들어왔다. 가입비를 받고, 인테리어를 통해 이문이 남고, 음식 재료를 공급하면서 또 남는다고 했다. 돈이 될 게 눈에 보였지만 그래도 접었다. 프랜차이즈를 하려면 재료를 1차 가공한 뒤, 단순 조리하기 직전 상태로 공급해야 했는데 그렇게 만들어낸 음식은 도저히 맛이 안 났다. 흥식씨는 “순댓국집을 내는 분들은 꼭 성공하고 싶은 절박한 마음일 텐데 그런 맛으로는 성공할 수 없을 게 보였다”며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함부로 내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재래시장 장사의 아쉬운 점으로 주차장 문제를 꼽았다. 6000원짜리 순댓국 먹으려고 찾아왔다 4만원짜리 주차위반 ‘딱지’를 떼이는 손님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나오기 전에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아까 왜 ‘맛있지요’가 아니고 ‘드실 만하지요”라고 했느냐”는 거였다. 짧은 질문에 긴 답이 돌아왔다. “식당 주인이 ‘맛있지요?’라고 묻는 건 위험한 질문입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음식장사가 그래서 힘듭니다. 요리 솜씨 좀 있다고 음식 장사를 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음식 만드는 방법을 다 배웠다고 하는 사람은 오만하거나 아니면 진실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재료 구입부터 차려낼 때까지 끊임없이 세심하지 않으면 금세 맛이 달라지거든요.”

글=박태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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