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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내성 생긴 환자도 글리벡 재투약하면 GIST 억제 효과

소화기관에 숨어 발병하는 ‘침묵의 암’이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의사들도 잘 모르는 희귀난치병으로 불렸던 기스트(GIST·위장관기질종양)다. 소리·소문 없이 종양이 자라다가 갑자기 복통이 오거나 혈변이 나타난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강윤구(사진) 교수는 “장기 표면이 아닌 근육층에 발병해 진단이 쉽지 않다”며 “배 속 깊숙이 발병해 암이 커져도 배가 나온 거라 착각하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스트로 고통받던 환자들도 꾸준히 관리하면 병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스트 치료의 권위자인 서울아산병원 강윤구 교수를 만나 진일보한 기스트 치료의 성과와 전망을 들었다.

기스트가 발병하는 부위는 위·소장·대장에 이르는 소화기관이다. 인체 내에서 신호전달 역할을 해 세포분열을 활성화하는 단백질(KIT 등)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발생한다. 강윤구 교수는 “전기회로에 비유했을 때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데 유전자 변이로 조절 기능을 상실하면 늘 제멋대로 신호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포가 통제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증식해 암 덩어리가 된다는 것.

고위험군이나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인구 100만 명당 20명꼴로 발생한다. 국내에서는 해마다 약 200여 명의 환자가 기스트로 진단받는다. 강 교수는 “주변으로 전이하거나 커지는 악성 기스트 환자가 전체의 30% 정도”라며 “최근에는 건강검진에서 복부초음파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통해 운 좋게 조기에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희귀암이었지만 특효약이 나오면서 환자 치료의 위상이 올라갔다. 백혈병 치료제로 잘 알려진 ‘글리벡’이 기스트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2002년 입증되면서다. 글리벡은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 항암치료제다. 강윤구 교수는 “기스트는 재발률이 높은 암이다. 수술로 종양을 떼어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암세포가 많아 환자 절반 이상이 수술 후 2년 내 재발했다”고 말했다. 글리벡은 기스트를 일으키는 단백질 활동을 억제해 5년 생존율을 최대 90%대까지 끌어올렸다.

최근에는 약에 내성이 생긴 환자도 다시 글리벡을 사용했을 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어떤 약이든 오래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암세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형태가 계속 변형되면서 기존 치료제가 작용할 수 없도록 차단한다. 강윤구 교수는 6월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회의(ASCO)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를 대상으로 글리벡의 재투약 효과를 입증한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글리벡을 사용했다가 내성이 생겨 2·3차 약까지 사용한 이후 다시 글리벡을 썼을 때 질환의 진행을 최대 50%까지 감소시켰다는 내용이다.

강 교수가 세계 최초로 이 같은 임상시험을 한 배경에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급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한번 내성이 생긴 약에는 건보 급여를 허용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내성이 생겼다고 해서 그 약이 효과가 없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암세포가 잠복해 있다가 활동하기도 한다. 그는 “3차 치료제까지 썼는데 내성이 생겼다고 해서 약을 끊으면 암이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약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내성이 생겼더라도 다시 쓸 수 있는 기전을 만들어줘야 암 진행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3차 치료제까지 사용하고, 절망에 빠진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임상에 참여하면서 나온 결실이다.

강 교수는 “전이하거나 재발한 기스트는 2000년 이전만 해도 1~2년 사이에 생명을 앗아가는 절망적인 암이었지만 지금은 평균 6~7년 이상을 더 살수 있다”며 “새로운 약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실망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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