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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기쁠 수 있을까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1883~1924) 작가가 꿈이었던 카프카는 아버지의 뜻대로 체코 프라하 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당시 최고의 인기 직업이었던 보험회사에 입사한다. 카프카는 내적 충동에 의해 머릿속에서 작품을 구상했다가 그것이 무르익으면 한꺼번에 써 내려갔다. 그래서 『사형선고』도 몇 시간 만에 완성했고, 몇 달 후에 『변신』을 탈고했다. 마흔 살에 폐결핵과 후두결핵으로 눈을 감았지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됐다.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의 작품을 두고 ‘검은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 표현했다.


여린 사람, 혹은 우유부단한 사람의 삶은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한 법이다. 친구와 절교해야 할 때도, 애인과 이별해야 할 때도 쓸데없는 번뇌에 너무나도 쉽게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충격을 받지 않을까,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미 헤어지기로 작정했다면 그나 그녀가 힘든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것은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 않기에 헤어지려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기쁨과 활기가 아니라 슬픔과 우울을 가져다 주는 사람과 결별하지 못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은 항상 우울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결별을 선언하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현대문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란츠 카프카만큼 여리고 우유부단한 작가가 또 있을까?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그런 의지를 관철시키기에 카프카는 너무 나약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변호사가 된 것도 아버지로부터 그나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원하는 것을 해주면 작게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라도 생길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결별을 스스로 선언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결별 선언을 기다리는 나약함을 드러낸다. 언제 올지 모를 결별을 기다리며 우울함을 감내하는 카프카 주인공들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상대방이 결별을 선언한 순간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넌 이제 너 이외에도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어. 지금까지 넌 너밖에 몰랐지. 정확히 말하면 넌 순진한 아이였지.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넌 악마 같은 인간이었어. 그러니까 알아둬. 나는 지금 너에게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한다.” 게오르크는 쫓기듯이 방을 나왔다. 그의 귓전에는 아버지가 뒤에서 침대 위로 쓰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층계에서 그는 계단을 마치 경사진 평면을 가듯이 달리다가 하녀와 부딪쳤다. 아침 청소를 하려고 올라가던 참이었다. 그녀가 “맙소사!”라고 소리치면서 앞치마로 얼굴을 가렸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문을 뛰쳐나와 차도를 지나 강으로 달려갔다. 그는 굶주린 자가 음식물을 움켜잡듯이 난간을 꽉 잡았다. 소년 시절에는 부모가 자랑스러워하는 뛰어난 체조선수였던 그는 그때와 같은 체조 솜씨로 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점점 힘이 빠져가는 손으로 아직 난간을 잡고 있는 그는 난간 기둥 사이로 자기가 물에 떨어지는 소리를 쉽사리 들리지 않게 해 줄 것 같은 버스를 보면서 “부모님, 전 항상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라고 나지막이 외치면서 떨어졌다.

방금 읽은 것은 『판결(Das Urteil)』이란 단편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결말 부분이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게오르크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날이 온 것이다. 아버지가 물에 빠져 죽으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판결』은 현실의 논리가 아니라 꿈의 논리로 읽어야 한다. 프로이트도 말하지 않았던가? 꿈은 억압된 것의 실현이라고 말이다. 아들이 죽으면 아버지도 죽는다. 하긴 아버지는 아들이 있는 존재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가진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 스스로 아버지를 부정하지 못하고 있던 카프카의 분신 게오르크를 지금 아버지가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별에 우유부단했던 사람에게 상대방이 결별을 선언하는 순간이다. 드디어 아버지로부터의 자유가 실현된 것이다. 환희의 송가가 나올 정도로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니겠는가. 스피노자도 환희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환희(gaudium)란 우리가 희망했던 것보다 더 좋게 된 과거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중)

더 좋게 된 것이 아버지여도, 아니면 자신이어도 좋다. 아들에게 물에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하고 쓰러지는 아버지도 좋고, 아버지가 선고를 철회할까 두려워 서둘러 물로 몸을 던지는 아들이어도 좋다. 어쨌든 이제 부자관계라는 구속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아버지도 이제 아버지라는 굴레를 벗어던졌고, 아들도 죽어 이제 게오르크라는 자유인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환희의 기쁨이 없을 수 있겠는가.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할 준비를 다 갖춘 자식, 그렇지만 여려서 부모에게 결별을 선언하지 못하는 자식에게 어느 날 부모가 “당장 나가!”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보다 더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자식은 부모가 명령을 철회하기 전에 빠르고 신속하게 집을 떠나야만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 부모는 다시 “어딜 나가!”라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으니까. 이제 아버지의 선고가 떨어지자마자 서둘러 집 밖으로 나가는 게오르크의 마음이 짐작되는가? 그래서 게오르크의 마지막 말, “부모님, 전 항상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에는 그로테스크한 데가 있다. “생큐! 이제 저는 자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카프카의 숨겨진 유머였던 것이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현실일 수는 없다. 불행히도 카프카에게 환희의 순간은 결코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환희의 순간을 기다리면서 카프카는 부단히 환희를 꿈꾸었고, 그 결과 우리는 그의 수많은 걸작을 손에 잡아들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강신주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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