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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경기 회복 자신감 … "실업률 줄면 양적완화 중단"

“내 입이 아니라 경제를 보라!” 벤 버냉키가 2006년 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취임하면서 한 말이다. 통화정책을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처럼 개인적인 판단(재량)에 따라 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대신 경제 흐름을 감안해 미리 정한 룰에 따라 한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100% 지키진 못했다. 그간 위기의 연속이어서 그랬다. 아쉬움이 컸을까.



버냉키 출구전략 '룰' 왜 내놨나
퇴임 앞둔 굳히기 … 쉽게 안 바뀔 듯
제로 금리도 2015년에 철회 시사
발언 후 미 국채 금리 가파른 상승

 버냉키가 퇴임 7개월 정도 앞둔 20일(한국시간)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축소 또는 중단에 관한 룰을 제시했다. 올 들어 네 번째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와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그는 “실업률이 일단 7%까지 떨어지면 자산 매입이 중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완성이었던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정책에 관한 ‘버냉키 룰’이 마침내 완성된 셈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실업률이 6.5%로 떨어질 때까지 예외적인 저금리(제로금리) 정책을 지속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젠 시간 문제다. ‘실업률 0.6%포인트가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가’에 양적완화 중단과 제로금리 철회 시점이 달려 있다. 미국의 최근(5월) 실업률은 7.6%다. 이날 연준이 의미심장한 경기 판단을 내놓았다. “최근 몇 달 동안 노동시장 상황이 개선됐다”며 “FOMC는 경제와 일자리 상황이 갑자기 나빠질 가능성이 줄어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런 경기 판단을 바탕으로 버냉키가 양적완화 축소시점을 밝혔다. “연준의 예상대로 경제가 좋아지면 올해 말부터 자산 매입 규모를 줄여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가 2008년 11월 1차 양적완화를 실시한 이후 이처럼 분명하게 그것의 축소 시점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그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그는 “자산 매입 규모를 내년 상반기 동안 줄여나가 내년 중반께엔 중단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제로금리 중단 시점은 2015년께로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버냉키가 지난달 22일 의회에 출석해 양적완화 축소를 처음 언급한 이후 글로벌 시장이 요동쳤다”며 “하지만 시장은 좀 더 분명한 시나리오를 갖게 됐다”고 평했다. 약 100년에 달하는 연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역대 연준 의장들은 룰보다는 재량을 중시했다. 1994년 ‘그린스펀 쇼크’가 대표적인 예다. 그해 2월 그는 예고나 언질도 없이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 바람에 미국 내에선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가 파산했다. 멕시코도 금융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제 시장은 버냉키 룰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버냉키 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로스 역설’ 같은 만만찮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헤지펀드 귀재인 조지 소로스는 “미리 제시된 시나리오가 시장에선 의도한 결과를 낳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런던정경대(LSE) 찰스 굿하트 교수는 “통화정책 룰이나 목표가 공개되면 기대한 결과를 얻기 힘들다(굿하트 법칙)”고 강조했다.



 그럴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이날 버냉키 발언 직후 미 국채 금리 등이 가파르게 올랐다. 양적완화 중단으로 국채 값이 떨어질 것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다. 월가 전문가들이 주로 보는 투자전문지인 알파매거진은 “금리 상승이 기업 투자와 가계의 소비지출을 줄여 경기회복을 더디게 할 수 있다”며 “버냉키가 제시한 프로세스가 오히려 경기회복을 늦춰 올해 말 축소와 내년 중반 중단이 예정대로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버냉키 룰이 대못질이 될 수도 있다. 버냉키는 내년 1월 말 의장 자리에서 물러날 게 확실하다. 차기 연준 의장이 버냉키와는 다른 경기판단을 근거로 양적완화 축소나 중단을 철회할 수도 있다. 그러면 연준 내부에선 버냉키 룰을 근거로 반발하는 세력이 나타날 수도 있다. 또 시장의 혼선도 커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는 올가을 차기 연준 의장을 본격적으로 물색한다. 래리 서머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전 재무부 장관 등 오바마 측근들이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누가 차기 의장이 되든 버냉키 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산가격과 기업의 투자 전략 등이 그 룰에 따라 세팅된 뒤이기 때문이다.



강남규 기자



◆재량 vs 룰(Rule)=중앙은행 통화정책 양대 프레임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과 이사 등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렸다. 선진국 중앙은행 가운데 연준이 인치(人治)의 아성으로 불리는 이유다. 위기나 경기변동에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대신 판단을 잘못하면 부작용이 컸다.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물가안정목표제처럼 사전에 정해진 룰에 맞춰 돈을 풀거나 회수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위기 순간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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