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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며 일하며, 그리고 또 기도하며

40대 초반에 천주교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대표하는 아빠스(대수도원장)에 선출된 박현동 신부. 가슴에 찬 십자가 펜던트 안의 다섯 구멍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입은 다섯 상처, 오상(五傷)을 상징한다.
수도원-. 봉쇄와 기도, 노동과 공동체의 공간이다.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수도원 중 하나다.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신임 수도원장

 왜관수도원이 최근 대수도원장, 즉 아빠스(abbas)를 새로 뽑았다. 한데 주인공이 1992년 입회한 올해 마흔셋의 박현동 신부다. 64년 대수도원에 승격한 이후 초대 아빠스였던 독일인 오도 하스 신부를 빼고는 최연소 아빠스다. 박 아빠스는 천주교 최고의결기구인 주교회의 회원도 겸한다. 역시 가장 ‘어린’ 회원이 됐다.



한국 진출 100년이 넘는 베네딕도회 신부와 수사들은 왜 이례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축복식 미사를 하루 앞둔 19일 수도원 현장에서 박 아빠스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선출에 대해 “구성원 130여 명이 변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 변화의 방향으로 수도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즉 “기도와 노동”을 꼽았다.



역대 최연소 43세에 뽑혀



 -소감이 각별하겠다.



 “오늘이 아빠스로 선출된 지 44일째 되는 날이다. 또 한국 나이로 올해 44세다. 선거를 이틀 동안 치렀는데 첫날 예비 선거 때 44표를 얻었다. 숫자 ‘4’가 겹쳤는데 좋은 일이 생겼다. 앞으로도 4는 내게 좋은 일을 가져다 줄 것 같다. 선출되고 나서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겠다. 많이 부족하다.”



 -아빠스의 소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느님께서 왜 나를 부르셨는지 내게도 하나의 큰 질문이다. 공동체의 의견을 듣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찾겠다.”



 -구성원들이 변화를 바란 거 아닌가.



 “베네딕도회는 그간 서울 혜화동, 북한 원산 근처의 덕원, 왜관 등으로 근거지를 옮겨 다니며 많은 일을 해왔다. 이제는 세상을 위해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새롭게 찾는 전환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적으로 새 기운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의 오아시스 되겠다



 -어떤 일에 힘쓸 생각인가.



 “수도원 생활이 여유 있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굉장히 바쁘다. 일 좀 하려고 하면 기도하자고 종치는 식이다. 뭘 하다가도 종을 치면 하던 일을 멈춰야 한다. 때문에 특유의 리듬이 생긴다. 그렇게 중간중간 일의 흐름을 끊어주는 게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수도원이 지향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몰입과 중단이 반복되는 그 단순한 리듬이 몸과 마음에 깃들 때 큰 힘이 나온다는 말이다. 바깥 세상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지 않나.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수도원이 여백이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베네딕도회는 6세기 이탈리아에서 생겨났다. 철저하게 기도와 노동의 삶을 지향한다. 모토가 ‘기도하며 일하라’이다. 하지만 한국에 진출하며 달라졌다. 한국전쟁, 권위주의 정권 등을 거치며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에 관여했고, 영화·출판 등 문화선교에 힘썼다. 독일에서 제조법을 익힌 수사들이 직접 만드는 소시지, 목가구·금속공예품·스테인드 그라스 등은 아직도 업계 최고로 친다. 박 아빠스의 발언은 베네딕도회의 진면목을 강조하겠다는 뜻이다.



 -베네딕도 특유의 평화란.



 “늘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노동하고 기도하는 삶을, 가령 수십 년이 지나도 똑같이 유지한다면 이를 본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변함 없이 한 자리를 지킨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힘을 주지 않겠나. 언제까지고 수도원이 신앙이 흔들리는 신자나 성직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체험 프로그램 더 발전시킬 생각



 -수도원 체험기회가 많아져야 할 텐데.



 “왜관수도원은 64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피정(避靜)의 집을 문 열었다. 2002년부터 청소년 대상 수도생활 체험학교도 열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을 더 발전시킬 생각이다.”



 인터뷰가 끝나자 마침 저녁기도 시간이었다. 찬송과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거룩한 독서)로 이뤄진 단순하고 아름다운 기도였다. 세상으로부터의 피정, 그 복판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왜관=글·사진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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