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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협상 불패' 북한 신화는 끝났다

박보균 대기자
북한은 온 세상과 다툰다.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발언은 절묘하다. 그는 “한반도의 비핵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大勢)”라고 한다. 그 말은 북한이 겪는 세상과의 불화를 압축한다.



 G8 정상들은 19일 북한을 성토했다. 핵무기 포기를 촉구했다. 8개 강대국들의 집단 경고다. 그 장면은 세상이 꺼리는 북한의 처지를 실감시킨다.



 그 불화와 외면은 깊어진다. 미얀마(옛 버마)에서도 확인된다. 2008년 11월 평양에서 북한과 미얀마는 군사협력을 다짐했다. 양해각서에 총참모장들(김격식, 쉐만)이 사인했다. 그것은 핵·미사일 커넥션으로 의심받았다.



 각서 서명자인 쉐만은 예편했다. 지금 하원의장이다. 그는 올 4월 서울에 와서 청와대도 들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밍글라바’(미얀마 말, 안녕하세요)로 화답했다. 미얀마는 민주화와 개발로 출렁인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미얀마의 개발 모델이다. 미얀마는 북한과의 군사 교류를 끊었다. 북한은 배신을 맛봤다.



 김정은 체제는 외톨박이의 고단한 신세다. 북한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중반 북한은 3중의 위기였다. 소련 해체, 한·중 수교, 김일성 주석의 죽음, 고난의 민생 행군-. 북한의 생존방식은 고약하지만 탁월했다.



 미국과의 교묘한 협상, 중국의 후원과 6자회담 활용, 한국 정부의 지원, 체제 내부의 강압과 통제-. 김정일 정권의 위기극복은 치열했고 세밀했다. 시간을 벌었고 돈도 챙겼다. 핵 개발에 성공했다. 북한은 ‘협상 불패(不敗)’ 신화를 생산했다.



 그 성취는 이제 재생되지 않는다.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한반도 질서의 연출자들도 새로 등장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달라졌다. 평양과 ‘회담용 회담’은 거부한다. 그것은 북한에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다. 북한과의 회담은 미국엔 악몽이다.



 중국은 세계 질서 관리자로 나섰다. 시진핑의 신형(新型) 대국 외교는 거대한 야망이다. 그것은 미·중이 세계를 공동 경영하자는 의지다. 한반도 안정은 야망 실천의 우선 조건이다. 북한 핵은 혼란 요소다. 일본의 핵무장 결의를 키운다. 한·미 동맹의 강화 논리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북한과의 관계 재조정은 불가피하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중국의 접근 자세는 바뀌었다. 27일 박근혜-시진핑 회담은 젊은 지도자 김정은에게 충격을 줄 것이다. 그것은 21년 전 한·중 수교 못지않은 강렬한 파장을 던질 것이다.



 한국도 달라졌다. 지난주 남북회담이 결렬됐다. 대표의 위상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했다. 북한의 협상 카드는 기습과 기만, 변칙과 예측 불확실성으로 짜인다.



그것은 협상 불패의 원동력이었다. 대표의 격(格) 차이는 변칙의 시동이다. 북한은 변칙으로 주도권을 확보한다. 박 대통령의 원칙은 변칙을 차단했다. 남북 협상의 주도권은 다시 정비됐다. 남남 갈등도 약하다. 지금 외교·북한 정책에 대한 여론 지지는 단단하다.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이 나타났다. 그의 미소 띤 등장은 지루하고 피곤한 외교전을 예고한다. 북한 목표는 핵보유국의 지위 확보다. 북한은 과거의 상황 타개 방식을 반복할 것이다. 북한의 회담 역사는 여러 승패 사례를 갖고 있다. 96년 9월 북한의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이 터졌다. 북한은 ‘훈련 중 고장 표류’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국면을 혼란스럽게 몰고 갔다.



 김영삼(YS) 대통령은 복잡한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했다. 그것은 그의 장기다. 그는 무력 도발에 대한 시인·사과,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미국은 온건했다. 북한은 속임수를 난발했다. YS의 단순과 일관성은 주효했다. 그해 말 북한은 ‘깊은 유감 표시’를 했다. 북한의 공개적인 시인·사과는 처음이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김정일의 평양 회담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체류 연장을 제안했다. 회담 주도권을 잡으려는 돌출 카드였다. 노 대통령은 “큰 것은 내가 결정해도 작은 것은 내가 결정 못한다”고 거절했다. 그 말은 돋보였다. 노 정권은 북한에 유화적이었다. 그것은 과도했고 부작용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 말의 매력은 회담 흐름을 재구성시켰다.



협상은 언어 관리다. 단순과 간결함은 복선과 혼란의 노림수를 꺾는다.



 북한 핵 문제의 해법과 힘은 경험과 기억의 정리다. 협상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노하우로 무장해야 한다. 그 바탕에 그 문제의 주인의식이 깔려야 한다. 북한 핵무장은 우리 문제다. 미국·중국이 온전하게 해결해 줄 수 없다. 지금 세대가 폐기시켜야 한다. 다음 세대의 재앙으로 넘겨선 안 된다. 주인의식이 북한 불패외교의 드라마를 종식시킨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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