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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가며 대대로 쓰는 ‘불멸의 가구’ 만들고 싶다

1 ‘슈타이들’전이 열리는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한 비트라 CEO 한스 페터 콘(오른쪽)과 파트리크 군츠부르거 부사장. 이들은 ‘진짜 디자인 경영’을 주제로 강연했다.
2 1989년 개관한 디자인 뮤지엄. 비트라의 의자 8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한 업체의 홍보 문구를 빌려 스위스 가구 브랜드 비트라(Vitra)를 설명하자면 ‘의자는 가구가 아니라 작품’쯤 되지 않을까.

비트라는 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다. 물론 싸지 않다. 가장 싼 의자의 국내 수입가가 145만원이고 평균가가 500만원대다. 하지만 명품이 대개 그렇듯 가격만으로 이 브랜드의 가치를 아우르기엔 좀 부족하다. 필립 스탁,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 장 프루베, 베르너 팬톤, 로낭과 에르완 부흘렉 형제 등 세계 정상급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한 쉼 없는 혁신. 이것이 1950년 설립 이래 사무용 가구로선 보기 드물게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비결일 것이다. 구글·애플·디즈니·아우디·맥도널드 등 주요 고객 명단만 봐도 비트라의 위상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최근 내한한 비트라 CEO 한스 페터 콘과 파트리크 군츠부르거 부사장을 만나 비트라의 ‘디자인 경영’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들은 서울 대림미술관의 강연 프로그램 ‘D Talks’에서 ‘진짜 디자인 경영’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29일 강연했다. 강연에 앞서 중앙SUNDAY와 한 인터뷰에서 이들은 “우리가 내리는 명품의 정의는 ‘고쳐서 계속 쓸 수 있는 물건’이다. 대를 물려 차는 스위스 시계 같은 명품 가구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3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라운지 체어. 1956년 첫 생산 후 지금까지 나오는 스테디 셀러다.
‘스위스 뻐꾸기 시계 같은 가구’라는 경영진의 자신감은 그냥 나온 건 아니다. 1956년 비트라가 내놓은 ‘라운지 체어’가 그 증거다(지난해 말 한 대선 후보 집에 놓여 있는 의자 사진이 공개되면서 고가 논란이 일었던 바로 그 의자다). 의자 본체와 발판으로 구성된 이 의자는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 등으로 주가를 올린 산업 디자이너 찰스(1907∼78)와 레이(1912∼88) 임스 부부의 작품이다. 60년이 다 돼 가지만 지금도 생산 중이란 사실이 놀랍다. 더 놀라운 건 자체 테스트 결과 이 제품의 예상 수명이 320년으로 나왔다는 점. 아무리 비트라가 ‘지속가능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한다지만 이래 가지곤 기업이 안 망하려나 걱정될 정도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비트라가 강조해온 건 ‘네트워킹’이다. 비트라는 회사 안에 디자인팀을 별도로 두지 않는다. 대신 프로젝트에 따라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을 한다. ‘비트라 에디션’이라 이름 붙인 실험적인 제품이 좋은 예다. 비트라의 역사가 곧 현대 디자인의 역사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세월이 지나도 형태와 품질 모두 변함없는 ‘불멸의 가구’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해당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를 데려오는 게 관건이었다. 그들을 믿고 100% 재량권을 줬다. 모든 디자이너는 고유한 개성을 지닌다. 비트라는 그런 개성을 한데 모으는 ‘편집자(editor)’의 역할을 한다. 어떤 디자이너가 탁월하다고 해서 꼭 우리 회사 직원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진 않는다.”

이런 시각은 가구를 만드는 데 단계별로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디자이너는 물론 부품업체·유통업체 등 우리 제품이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과정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전문가로서 독립성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가령 제품마다 가죽·패브릭·폴리아미드·알루미늄 등 재료가 다르다. 재료마다 물성(物性)을 잘 이해하고 다른 재료와 결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 잘 아는 사람이 있다. 적임자를 제대로 골라 쓰는 게 우리 일이다. 흔히 기업들은 고객이 제일 중요하고 직원은 그 다음, 부품업체는 그 다음 이런 식으로 서열을 매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에겐 직원·고객·디자이너·부품업체·유통업체 등 모든 관련자들이 똑같이 중요하다.”

팀워크, 협업에 대한 강조는 계속됐다. “디자인은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어떤 혁신을 이루려면 당연히 실수가 따른다. 남의 걸 베낀다면 실수는 적겠지만 형편없는 결과물을 내놓게 되고,결과적으로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된다. 좋은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전문가들의 협업이다.”

4 로낭과 에르완 부흘렉 형제가 디자인한 베지털 체어. 마당에 놓게끔 식물을 닮은 모양으로 디자인됐다. 5 가정용 가구의 하나인 오가닉 체어. 찰스 임스와 에로 사리넨의 공동 디자인으로 1940년에 처음 나왔다. 6 필립 스탁의 손에서 탄생한 W W 스툴. 인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7 부흘렉 형제가 고안해낸 사무용 가구 시스템 ‘조인’. 업무에 따라 플랫폼을 더했다 뺐다 할 수 있다. 8, 9, 10 장 프루베의 가구들. 각각 시테 체어, EM 테이블, 스탠더드 체어.
의자를 주로 만들던 비트라가 사무용 가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1976년이다. 사무용 가구를 만들면서 갖게 된 바람직한 사무 공간에 대한 고민은 90년대 들어서 ‘시티즌 오피스(citizen office)’ 프로젝트로 모아졌다. 비트라는 안드레아 브란치, 미켈레 데 루키, 제임스 어바인 등 유명 디자이너 3명에게 ‘2010년의 사무공간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연구하게 했다.

“결론은 20년 후 사무실은 ‘도시 지도(city map)’처럼 된다는 것이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카페·극장·식당·공원 등 다양한 인프라를 이용하게 된다. 사무실에서도 사무 처리, 회의, 휴식, 자료 조사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그렇다면 사무실은 개인별로 나눠진 구획이 아니라 시민(citizen)들에게 개방된 형태로 꾸며져야 맞다. 사무 공간일 뿐 아니라 생활 공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티즌 오피스는 일하는 사람들끼리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민주적이고 비관료적인 공간을 만들자는 개념이다. 그래서 비트라 본사 사무실엔 팀장이나 부장의 방이 따로 없다.”

11, 12 부흘렉 형제가 만든 사무용 가구 시스템 ‘워크베이’와 ‘알코브 워크’. 개방적인 사무실 안에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설계다.
부흘렉 형제가 2002년 디자인한 ‘조인(Joyn)’이 대표적이다. 이 시스템은 업무에 따라 플랫폼을 더했다 뺐다 하면서 사무공간 면적을 조절할 수 있다. 자기 자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직급을 가리지 않고 아무 데나 앉게 돼 있다. 그들의 또 다른 작품 ‘알코브 워크(alcove work)’는 벽면을 오목하게 파내 열차 객실처럼 만든 사무 공간이다. 휴식과 간단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 이 역시 “사람이 가구에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에 가구를 맞춰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한다.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안토니오 치테리오가 94년 디자인한 테이블 ‘애드 혹(Ad hoc)’이나 2011년 나온 아이디 체어도 이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특히 아이디 체어는 개인별로 인체공학적 맞춤이 가능한 8000여 개의 옵션을 둔 점이 이색적이다.

13 비트라 캠퍼스에 위치한 소방서. 이라크 출신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14 비트라 캠퍼스에 지어진 비트라 하우스. 비트라가 2004년부터 선보인 홈 컬렉션을 전시하는 곳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비트라는 그냥 디자인 독특한 가구를 만드는 유명 회사일 뿐이다. 이를 뛰어넘는 비트라의 존재감은 사실 다음부터다. 스위스 바젤과 접경한 독일 소도시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위치한 24만㎡(76000여 평) 규모의 ‘비트라 캠퍼스’. 인구 3만 명이 채 안 되는 이 소도시의 랜드마크인 이곳은 비트라의 ‘디자인 경영’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복합단지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다수가 설계를 맡은 건물들이 비트라 캠퍼스를 채운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프랭크 게리가 유럽에서 설계한 최초의 건축물이다. 비트라 제품 8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 밖에 안도 다다오의 회의장, 헤어조그와 드 뫼롱의 비트라 하우스, 가즈마 세지요와 니시자와 류에로 구성된 일본 건축가 그룹 SANAA의 공장 건물, 재스퍼 모리슨의 버스 정류장, 자하 하디드의 소방서 등이 모여 있다.

이곳이 조성된 계기는 얄궂다. 81년 대형 화재가 일어나 공장 대부분이 탔다. “9·11 테러나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 등 글로벌 경제난보다 그때가 비트라엔 진짜 위기였다.” 공장 재건 프로젝트는 흥미롭게도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경연장으로 꾸며졌다.

“이것도 결국 우리가 수십 년에 걸쳐 추구해온 네트워킹과 민주주의 원리에 기반한 것이다. 최고의 건축가를 정해 그들의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한다. 그래야 최고의 건물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건축이야말로 최고의 투자다. 100년 넘게 가도 남아 있으면서 지역 사회에 영감을 주고 세계의 관심을 끄는 매개체가 된다. 비트라 캠퍼스를 찾는 방문객이 해마다 40만 명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마케팅이 어디 있겠나.”

이런 긴 호흡의 경영 철학이 결국 60년 가까이 기업의 명성을 유지했다. 50년대부터 일찌감치 ‘디자인 경영’의 싹을 가꾼 선견지명에 대한 두 사람의 설명은 제각기 흥미로웠다.

“제국주의나 독재정권의 지배가 없었고 오랜 세월 중립국의 위치를 유지해온 역사에서 길러진 민주적인 DNA가 기업에서도 발현된 것 같다. 이런 과정이 완료된 게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게 비트라의 강점이다”(한스 페터 콘).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앞장서서 펼쳤던 오너에게서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좋은 직원들을 채용하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행운도 따랐다”(파트리크 군츠부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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