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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란·송염 … 까다롭게 고른 식재료의 조화

1 가정식 브런치 세트 메뉴 ‘이태원의 아침’과 아보카도 샐러드, 여러 가지 베리(berry)가 섞인 스무디.
고3 딸아이와 갑자기 브런치(Brunch) 데이트를 하게 됐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학원에 가야 하는 딸을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날씨는 잔인하게 너무 좋았고 하늘은 맑았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야 할 인생의 한때를 공부에 억눌려 있는 아이가 그저 안쓰러웠다. 그래, 잠시라도 숨을 쉬게 해주자 하는 생각에 학원으로 가던 차를 돌렸다.

브런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유학생들, 미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우리 생활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휴일이면 강남ㆍ이태원 등 유행을 선도하는 곳에 자리한 유명 브런치 카페들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느지막한 아침멋진 카페에 앉아 서양식 식사로 즐기는 브런치는 달콤하고 예쁘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딸아이 취향에 딱 맞는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플라잉 팬(Flying Pan)’이라는 브런치 전문 카페로 갔다. 분위기가 좋고 맛도 좋아 브런치를 먹을 때면 들르는 곳이다. 이곳은 의상 디자이너 출신인 박미소(39) 대표가 가족ㆍ친구와 함께 운영한다.

박 대표가 호주에서 유학하던 시절 다녔던 편안한 동네 카페의 기억을 살려 2005년 이태원에서 시작했다. 요리를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자칭 타칭 미식가 집안 출신이어서 음식에 대한 눈썰미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감각의 음식에 디자이너 출신다운 세련된 인테리어 스타일링이 인기를 끌어 금세 핫 플레이스(hot place)가 됐다.

2 플라잉 팬 가로수길 점 외부 모습. 플라잉 팬이라는 이름은 역동적인 주방의 모습을 형상화해서 지은 이름이다. 3 내부 모습. 감각적이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브런치가 막 인기를 끌던 시기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이태원과 강남역 그리고 가로수길 등 세 군데에 매장을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팬케이크ㆍ샌드위치ㆍ와플ㆍ베이컨ㆍ달걀 요리 같은 가벼운 요리들이 주를 이루는 브런치 메뉴들은 사실 맛에서 차별화하기 쉽지 않다. ‘플라잉 팬’은 고급스러운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승부를 걸었다. 원산지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확인하고 친환경 센터 같은 곳에서 인증된 재료들만을 고집한다. 계란 같은 경우는 일반 계란보다 몇 배 더 비싼 고급 계란을 사용한다. 깨끗한 사육장에서 방사 형태로 기르면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은 유정란이다. 모든 야채는 유기농이거나 친환경 무농약으로 기른 것들을 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소금의 경우에도 신안의 천일염 염전에서 5, 6월 소나무 꽃가루가 날릴 때 나오는 송염(松鹽)을 특별히 구입해 사용할 정도로 정성을 기울인다. 이렇게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은 한마디로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향과 맛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뒷맛의 여운을 남기는 편안한 맛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단골로 찾는 사람이 많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이태원의 아침’을 시켰다. 계란 프라이에 베이컨ㆍ토스트ㆍ감자ㆍ 구운 토마토 등이 한 접시에 담겨 나오는 가정식 음식이다. 아보카도 샐러드에 여러 가지 베리(berry)를 섞어 만든 스무디를 곁들였다. 소박한 음식들인데도 딸아이 얼굴은 그저 환하게 빛난다. 들어올 때부터 분위기 좋다고 감탄을 연발하더니 음식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기 바쁘다.

페이스북에 ‘아빠와의 브런치 데이트’라고 사진을 올리고 하면서 수선을 피운다. 평소에는 말이 별로 없고 그저 지친 얼굴이더니 재잘재잘 말이 많아지면서 얼굴이 활짝 피었다. 불쌍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지켜보는 아빠의 마음은 참 복잡하다.

디저트까지 곁들여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이제 일탈은 끝났고 마법은 풀렸다. 고3 수험생은 학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조금만 더 잘 견뎌내고 나면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본인이 선택한 길이기도 하고. 그저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고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동안 딸아이를 키워오면서 경험했던 소중한 순간들이 모두 다 기억 속에 차곡차곡 갈무리되어 있다. 그 갈무리 속에 오늘 또 하나의 보석 같은 순간이 더해졌다. 아이도 오늘의 갑작스러운 브런치 데이트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곁을 떠나게 될 시간도 따지고 보면 이제 멀지 않았는데….



음식, 사진, 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가. 경영학 박사 @yeongs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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