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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식재료로 꾸린 싱싱한 제철 음식들

글·사진: 정환정 출판사: 남해의봄날 가격: 1만4500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그곳을 여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우등고속 안에서 바라보는 시골 풍경이 아무리 목가적이라도, 막상 버스에서 내려 한 걸음만 내디디면 고단한 일상이 훅 끼쳐오는 것처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으로 죽고 싶다던 서울내기 저자가 그 로망을 생각보다 일찍 실현하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가치 말고도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기특한 처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하여 이 젊은 부부가 서울을 벗어나 통영에서 겪은 2년 가까운 삶은 자신들의 ‘용기’에 대한 반추이자 새로 맛보고 느낀 세상에 대한 진중한 보고서다. 이곳저곳 여행하며 얻은 음식에 대한 지식을 얼기설기 엮어낸 여타 여행서와 근본부터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면 우선 ‘남해안에서 만나는 계절별 로컬푸드’ 그림 지도가 눈길을 끈다. 이 ‘계절별 로컬푸드’라는 단어가 이 책의 핵심이다. 배꼽이 톡 튀어나올 정도로 통통한 거제의 겨울철 대구에서 시작해 봄을 맞는 통영의 도다리쑥국과 하동의 녹차, 여름을 이기게 하는 통영 갯장어회와 거제의 거봉 포도, 가을의 결실인 구례의 쌀 등으로 이어지는 제철 음식 예찬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입맛을 다시게 한다.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사람들의 옷차림이 아니라 시장에 나오는 생선·채소 등을 통해 인식하게 되었다”는 저자는 덕분에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계절에 따른 식재료의)결핍과 부재를 받아들이면서 풍요로움을 누구보다 극적으로 만끽해야 한다…이제 우리 부부에게 다시 제철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일은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것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이기도 하니 말이다.”

미처 몰랐던 수많은 먹거리에 대한 놀라움은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국물맛을 내는 띠뽀리(밴댕이 새끼)와 솔치(청어 새끼), 그리고 멸치다. 각각을 우려낸 국물을 사진으로 비교한 저자는 그 맛을 이렇게 표현한다. “멸치를 우려낸 육수가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라면 띠뽀리를 끓인 물은 구수하고 살짝 달짝지근한 뒷맛을 자랑한다. 반면 솔치는 와인 평가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보디감’이 느껴지는 짠맛이 났다.”

과연 어떤 집의 충무 김밥이 맛있는지, 각각 다른 삶의 배경과 연륜을 가진 10명의 사람을 모아놓고 벌인 ‘블라인드 테스트’도 흥미롭다. 원래 꼴뚜기·주꾸미·참홍합 등을 꿰어 만들었다는 원조 충무김밥의 맛은 옆에서 굽던 한우 등심을 능가한다고 눙친 대목은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한다.

이 모든 것의 원천인 시장은 그래서 각별하다. “통영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이 커다란 부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곳곳의 풍경과 먹거리를 생생한 컷으로 뽑아낸 저자의 사진 실력도 만만치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진도에서 찍은 진돗개 사업소 풍경이 눈에 쏙 들어왔다. 막 젖을 뗀 강아지 중 하나가 놀아주고 있는 사람 등허리에 턱 허니 발을 얹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부르는 것처럼.

저자가 통영에 살면서 푹 빠진 것은 바로 이런 것들 때문 아니었을까. 대도시에서 바쁘게만 살아가느라 미처 모르고, 혹 모르는 척 흘려 보낸 것들. 도시 밖에서 원래의 속도대로 흘러가고 본래의 색을 찾은 바로 그 ‘진짜백이’의 존재 말이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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