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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행 배편 없어 非제재 품목도 수출 막혀

13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린 대(對)이란 제재동향 설명회. 이날 설명회에는 당초 예상보다 배 이상 많은 500여 명이 참석해 2회에 걸쳐 진행됐다. 염태정 기자
CCTV 카메라를 수출하는 중소업체인 H사는 최근 이란 거래업체가 보낸 물품대금 1억9700만원이 은행에 묶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대한 빨리 찾으려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쉽지 않다. 이란으로 가는 배에 물건을 실어 보냈다는 증명서인 선하증권(BL)을 은행에 내야 이 돈을 찾을 수 있는데, 배편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조치가 강화되면서 국내 해운사들이 최근 이란으로의 화물운송 서비스를 중단한 탓이다. 해운 서비스가 언제 재개될지도 알 수 없다. 이 회사 K이사는 “이란 거래선과 비행기로 물건을 보내는 방법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 비용이 해상운송의 7~8배”라며 “이번에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이 회사는 이란이 전체 수출물량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이란 수출을 못하면 타격이 크다. 그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힘들다지만 이란과 거래하는 우리 같은 회사들도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란과의 거래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지난 13일 오후 3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5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부의 이란 제재동향 설명회는 기업의 높은 관심과 어려움, 정부에 대한 불만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화물운송 재개 시점을 묻는 질문에 정부 측에서 “두바이까지 가서 이란으로 가는 배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하자,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없습니다, 현실을 너무 모릅니다”고 외치기도 했다.

이란과 거래하는 2300여 중소기업 불똥
이날 설명회는 당초 예상보다 배 이상 많은 500여 명이 참석하면서 설명회 시작 전부터 복도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오후 4시30분 2차 설명회를 열었지만 이때도 참석자를 다 수용할 수 없었다.

다음 달 1일 발효되는 미국의 새로운 대(對)이란 제재조치로 이란 수출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이란과 거래하는 2300여 중소기업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란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 중소기업도 530여 개에 달한다. 한-이란 교역 규모는 지난해 148억 달러다. 62억57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고, 85억4400만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원유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화학제품ㆍ철강ㆍ자동차부품ㆍ생활가전 등 거의 모든 상품을 거래한다. 이란은 지난해 수출액 기준으로 우리의 20번째 무역 상대국이다. 국토면적(165만㎢)은 한반도의 7.5배, 인구는 7600만 명인 큰 시장이다.

놓칠 수 없는 시장이지만 수출 축소는 불가피하다. 일부에선 올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20~30% 줄 거란 얘기도 나온다. 미국의 새로운 대이란 제재조치(2013 국방수권법ㆍ행정명령)가 예전보다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그간에는 이란의 석유자원 개발 및 정유제품 생산을 지원하는 물품 용역을 일정금액 이상 거래할 경우 제재 대상이 됐다.

하지만 금액 제한이 없어졌고 대상 품목도 대폭 늘었다. 14일(현지시간) 치러진 이란 대선 결과에 따라 대미 관계에 변화가 오고 제재 조치가 약화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누가 당선돼도 현재의 기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분위기가 우세하다. 대이란 제재 조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해운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제재 대상 품목 여부를 떠나 이란으로의 수출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배를 구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비(非)제재 대상 품목 수출기업도 피해를 본다. 둘째는 선적을 하지 못해 H사처럼 은행에 돈이 묶이는 경우다. 은행들은 “업체 사정은 안됐지만 선하증권 없이 돈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셋째는 제재 대상 품목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 선사인 한진해운은 지난 7일, 현대상선은 14일부터 이란행 화물수송을 잠정 중단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두바이까지는 가지만 이란에는 들어갈 수 없다. 미주 노선 비중이 50%가 넘는 상황에서 제재 받을 경우의 피해 때문에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국내 선사만 중단한 것은 아니다. 중국 국적 선사인 COSCO를 포함해 글로벌 해운선사들이 대부분 이란행 화물운송을 중단했거나 중단할 예정이다.

두바이 거치는 우회수출도 쉽지 않아
정부는 전략물자관리원을 통해 수출금지 대상 품목을 안내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모호한 구석이 많다고 지적한다. 동일고무벨트 관계자는 “이란에 수출하는 벨트가 자동차용과 산업용 모두에 쓰인다. 이럴 경우 금지 대상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용도를 충분히 설명하면 된다”는 입장이나 ‘어느 정도가 충분한 것인지’가 역시 불분명하다. 익명을 원한 수출업체 대표는 “정부나 해운사나 은행 모두 제3자처럼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의 다급한 마음을 모른다. 제재 조치 강화는 예고됐던 것인데 그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1차관을 반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차관급 정부합동 대책반이 구성돼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수출선 전환 지원 등 추가적인 지원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란과의 교역이 가능한 분야를 명확히 하는 『이란 교역 투자 및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정상적인 거래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안내할 계획이다. 이란 수출 기업들은 거래상대방이 금지대상인지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이란 교역 및 투자비금지 확인서 발급 시스템'에 이를 확인하는 코너를 만들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팀 주소령 과장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하지만 교역 환경이 생각보다 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해운 서비스 재개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제재 대상 품목의 명확성’은 우리 정부도 미국에 물어보는 처지다. 해양수산부 국제물류팀 관계자는 “제재와 관련해 ‘상당한 거래’(significant transaction)가 아니어야 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상당한 거래’가 어느 정도인지 사실 우리도 애매하다”고 말했다. 외교부 북미 1과 관계자는 “애매한 부분을 미국과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박현도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제재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수출 감소를 막을 대책은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며 “두바이를 거치는 우회 수출을 늘리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권형 중동팀장 역시 “기업이나 정부나 별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다만 장기적으로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을 비롯해 이란과의 경제협력 형태를 바꿔 나가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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