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산층·학생들, 이슬람 회귀 정책에 불만 폭발

터키의 반정부 시위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시위를 촉발한 이스탄불 탁심광장 게지공원 재개발 계획에 대해 터키 정부가 ‘잠정 중단’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서면서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사진)는 14일(현지시간) 시위대의 일부인 ‘탁심연대’의 대표들과 만난 후 정부 대변인을 통해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재개발 관련) 소송이 끝날 때까지 어떤 공사도 진행하지 않겠다. 소송이 정부 측 승리로 끝나더라도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탁심연대가 시위대 전체를 대변하지 않아 충돌의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 총리의 자세 전환으로 시위 사태는 새 국면을 맞았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시위 때문에 지금까지 시위대 3000여 명이 다치고 5명이 숨졌다.

터키 반정부 시위는 ‘제2 아랍의 봄’?

지난달 28일 시작된 반정부 시위 장면들이 해외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한국에선 터키란 나라가 민주화 변혁을 겪고 있는 것처럼 비춰져 왔다. 터키는 그동안 서구와 중동 사회에서 모범적인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로 주목받았다. 한국과는 지난달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며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7위다.

에르도안 총리는 다른 중동 지도자와는 달리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재스민 혁명’을 초래한 다른 중동 국가의 지도자들처럼 비민주적으로 장기 집권한 사례가 아니다. 또한 에르도안 총리는 집권 10년간 수많은 정치위기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와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았다. 한국의 촛불 시위(2008년) 당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터키 정국을 진단해 본다.

재개발 반대가 반정부·정권 퇴진으로
에르도안 정부의 재개발 비리로 불거진 소요 사태가 확산된 건 한마디로 안일한 시위 대응과 강경 진압 때문이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소통 부재에다 밀어붙이기식 개발정책으로 터키 시민들은 불만을 품어왔다. 10여 년간의 장기집권으로 국정운영이 점점 권위주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에르도안 정부의 보수적이고 이슬람적인 정책에 대한 반발과 정치적 불만이 도시의 지식인과 중산층·학생들을 중심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공원 재개발 반대시위로부터 출발해 정권 퇴진 및 민주화 요구로 이어졌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계획되지 않고 평화로웠던 시위가 이렇게 급속히 과격한 정치 시위로 변한 것은 터키 정치사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작은 시위가 정부의 태도와 정책을 바꾸는 첫 번째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공권력에 의해 시위가 강경 진압되는 과정은 소셜미디어와 해외언론을 통해 고스란히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소요 사태 하루 뒤 CNN이 탁심 시위 사태를 긴급 보도했을 때다. 비슷한 시점에 현지 대표 보도 채널인 CNN Turk가 시위 장면이 아니라 아동 만화인 ‘펭귄’을 내보냈다. 두 장면이 소셜미디어에서 비교되며 터키 지식인과 시민들은 현 사태를 단순한 공권력 남용이 아닌 민주주의 붕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터키 유력 방송사들의 이런 무관심한 보도 태도 때문에 언론자유화, 민주화, 정권퇴진운동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터키 정부의 일방적 소통방식과 강압주의에 불만을 가진 노조와 직능집단, 시민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시위는 급속하게 확산됐다. 시위 참가자와 반정부 세력은 이번 소요사태를 계기로 에르도안 총리의 권위주의적 국정운영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재개발 반대시위가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공론화하고 조직화하는 정치운동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對쿠르드 유화책에 민족주의 세력 분개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이슬람주의 성향의 정치인들에 의해 2001년 창당됐다. 이후 터키 동부 지역 및 지방에서 두터운 지지층을 확보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즉 보수·이슬람 진영의 지지 아래 국정운영의 안정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의개발당은 이슬람적 가치를 강조한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예컨대 새로운 음주법을 만들어 음주연령을 만 18세에서 24세로 상향 조정한 것이나, 이맘하팁(종교학교) 출신의 대학 진학 개방, 교육기관 및 공공기관에서의 히잡(베일) 착용 허용 등이다. 정의개발당 정부는 잇따른 법 개정을 통해 세속주의 원칙을 하나씩 잠식해 나갔다. 경제성장을 위해 유럽보다 중동의 시장을 겨냥해 현 정부가 이슬람주의를 강화한 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세속주의자들을 비롯한 민족주의·사회주의 세력의 강한 우려와 반발을 낳았다. 이들 반정부 진영은 현재 추진하는 정책들이 터키공화국의 건국이념과 근간을 흔든다고 주장해왔다. 또 이슬람 가치를 추구하는 정책들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정의개발당의 통치방식 역시 권위주의적으로 변했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특히 해외에서는 높게 평가되고 있는 현 정부의 대(對)쿠르드 유화정책은 세속주의와 민족주의 진영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쿠르드와 아랍민족이 다수인 동부 지역에서 터키공화국을 상징하는 약자인 TC(Türk Cumhuriyeti·터키공화국)가 주요 관공서에서 생략돼 표시됐기 때문이다. 반정부 세력은 ‘이런 조치는 터키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터키의 소셜미디어에서는 터키공화국의 터키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많은 터키인이 자신의 이름 앞에 TC를 명기하고 있다. 반면 아랍 지역과 일부 서구 언론은 터키 정부가 쿠르드 문제 해결과 향후 중동 지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중요한 기틀을 세웠다고 평가한다.

정의개발당, 동부·지방도시 강세 여전
반정부 시위엔 다양한 세력이 합세했지만 시위의 일관성과 정통성은 약화되고 있다. 이는 일부 그룹(무정부주의자·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등)의 시위가 반달리즘(Vandalism)을 표출하고 있어서다. 어느 사회보다 모자이크 색채가 강한 터키 사회는 정치·사회적 혼란기에 다양한 세력이 섞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래서 이들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묶으려면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하다. 2011년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 세력이 결집했던 것과 달리, 요즘 터키의 시위사태를 이끌 만한 정치세력이나 리더십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소요사태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터키 야당 또한 집권당과 마찬가지로 불신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소요사태는 대도시의 시민과 대학생이 중심이 된 시위다. 터키 인구가 8000만 명임을 고려하면 극히 제한된 규모라 할 수 있다. 정의개발당 정부는 터키 동부와 지방을 중심으로 아직 견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가 시위 확산에도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던 이유일 것이다. 반면 세속주의와 민족주의 진영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정치판도를 바꾸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어쩌면 이들에게 현재의 정치상황은 ‘민주주의의 패러독스’라 할 수 있다.

정의개발당이 강력한 지지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2001년 창당·집권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경제가 일조하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과 안정 위주 정책에 힘입어 터키 경제는 지난 10여 년간 연평균 5%대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건국 이래 유례없는 고도성장이다. 터키인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은 최근 5년간 급속히 향상됐다. 이는 에르도안 총리의 정치적 카리스마와 리더십, 대중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이번 소요사태가 일단락 되더라도 에르도안 정부의 지지 기반은 다소 약화될 수 있다. 하지만 커다란 정치 변혁은 없을 것이라는 게 현지 터키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