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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中과 공조하며 北과 ‘원포인트 딜’ 추진할 듯

남북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11일 남북 당국회담 논의가 결렬된 뒤 이틀간 침묵했던 박 대통령은 14일 첫 대외 일정으로 중국의 탕자쉬안(唐家璇) 전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을 접견했다.

탕 전 위원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사 격으로 서울을 찾았다. 그런 만큼 박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27일)에 앞서 시 주석과의 회담 내용을 간접 조율한 셈이 됐다. 박 대통령은 탕 전 위원에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직접 설명하면서 “북한이 진정성 있는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중국이 설득해달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은 중국 측에 “북한이 도발하면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대화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탕 전 위원도 지난 8∼9일 미·중 정상회담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상세히 설명한 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데 미·중 정상이 의견 일치를 봤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뒀는데 탕 전 위원은 ‘비핵화’를 앞세워 설명했다”며 “이제 중국도 북한 비핵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한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의 대북 지렛대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27~30일 방중 기간 중 중국 대학에서 한 차례 짧은 분량의 중국어 연설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동안 정부 안팎에선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은 시기상조”란 신중론이 강했다. 하지만 ‘중국어를 하는 첫 한국 대통령’에 대한 중국 측의 기대가 워낙 큰 데다, 남북 대화 무산 이후 중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박 대통령은 중국 대륙에서 활약 중인 인기 연예인과 운동선수들도 방중 행사에 초청하고 한국 측 주최 오찬에 한·중 양국 음악을 함께 연주시킬 방침이다.

김정은, 시진핑에게 축전 보내며 혈맹 강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남북대화 무산 뒤 첫 카드로 중국에 유화 메시지를 던졌다. 15일 시 주석의 60회 생일 축하 축전을 보낸 것이다. 김정은은 “전통적인 조·중 친선을 복잡다단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장기적이며 전략적인 견지에서 대를 이어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한·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혈맹인 북한 편에 서 달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미국도 한·중 정상회담에 무게를 실었다.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4일 워싱턴의 한 세미나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지만, 한·중 정상회담 이전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해선 현재 계획된 건 없다”고 말했다. 한·중 정상회담 뒤 북측의 태도 변화를 보고 행동 방향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남북한과 미국 모두 중국을 쳐다보는 형국이다.

시 주석으로선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자회담 재개’를 향한 행보를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부터 개시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6자회담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남북대화가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고 박 대통령에게 촉구할 가능성이 크다. “대화하지 않는 것보다 대화를 하는 게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김정일에게 한 얘기)라는 식으로 중국식의 간접적 화법을 쓸 개연성이 있다. 박 대통령도 “북한의 잘못엔 중국도 단호히 대처한다”는 전제하에 대화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화답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두 정상은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해 신뢰 구축이 중요하고 남북대화가 필요하다는 공통의 인식에 도달했다”는 취지의 성명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 직후 북한에 탕 전 위원과 같은 부총리급의 고위 인사를 특사로 보내 회담 내용을 설명한 뒤 남북대화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중국 측에 “한국과 대화하면 북·미 대화를 보장해줄 수 있느냐”고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중국 지도부가 북·미 대화를 주선하기 위해 대미 특사를 보낼 수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은 뉴욕 채널 등을 통해 북측에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가 이뤄진다면 이른 시일 내에 북·미 대화가 성사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던지는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北, 위협보다 협상 기싸움 치중할 듯
이런 프로세스는 한·중 정상회담 이후 한 달 정도면 끝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때부터는 남북 간에 ‘대화 게임’이 벌어진다. 우선 북한은 6·25전쟁 종전일이자 정전협정 체결일인 다음 달 27일을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60년이 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며 대화 공세를 펼 것이란 관측이다. 반면 한국은 박근혜정부가 처음 맞는 8·15 경축사를 활용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 가능성이다.

외교 소식통은 “남북이 7·27과 8·15를 활용해 각각 유연성을 발휘하느냐가 대화 성사 여부를 가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이 북한의 평화체제 논의 요구를 일축하고 “비핵화부터 해결하자”고 맞받으면 대화는 성사되기 힘들다. 북한도 평화체제만을 단일 의제로 고집할 경우 마찬가지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이 “평화체제 논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우선 신뢰구축을 위해 개성공단 등 현안을 논의하자”고 물러서고, 북한도 “현안을 논의하면서 평화체제 대화기구를 만들어가자”고 한발씩 물러서면 대화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가을께 남북회담, 북·미 대화에 이어 연말께 6자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낙관론이 나온다. 일각에선 내년에 남북 정상회담까지 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까지 드러낸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노무현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낸 이봉조 극동대 교수는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이어진 북한의 협박은 새로 출범한 박근혜정부를 시험해보기 위한 성격이 컸는데, 이게 통하지 않았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균열을 기대했지만 이 또한 무위로 돌아가자 최용해(북한군 총정치국장)를 중국에 보내며 대화모드로 전환한 것”이라며 “북한은 숙원인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남북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대외전략 기획관을 지낸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는 “북한은 미·중의 압박 때문에 한국과 대화하는 시늉을 해본 것”이라며 “한국이 김정은 체제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비핵화와 인권 문제를 대화 의제로 요구하자 북한은 이를 핑계로 대화를 거부해버렸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대남 대화 제의는 위기를 피하려는 전술의 일환일 뿐 진정한 대화의지는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대화 국면이 교착되더라도 북한이 연말까지는 극단적인 위협을 자제하고 협상을 위한 기싸움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 경우 더욱 심각한 고립을 자초할 게 분명한 데다, 경제난 해결을 위해 대미·대일 대화를 추진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이명박정부와 차별화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현을 위해선 남북대화를 성사시키는 게 바람직한 상황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트레이드 마크인 ‘원칙과 신뢰’의 기조를 유지하되 미·중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개성공단 같은 현안을 놓고 북한과 ‘원포인트 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관측했다. 일각에선 “6자회담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북핵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남북한과 미·중 간의 4자대화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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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