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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호르몬 전혀 없는 수액 세트 곧 보급”

폴리사이언텍 전승호 대표가 새로 개발한 수액 세트를 들고 환경호르몬의 유해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팔당댐의 물은 깨끗한데 그걸 집까지 연결하는 수도관이 문제인 셈이죠. 몇 년 내에 환경호르몬이 전혀 없는 제품들로 대체될 겁니다.”

플라스틱 소재 개발 전문기업 ‘폴리사이언텍’ 전승호 대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농공단지. 각종 플라스틱 소재의 연구와 생산을 하는 폴리사이언텍의 사업장이 있는 곳이다. 실내에는 밀폐형 클린룸이 설치돼 있다. 전승호(55) 대표는 사출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느다란 튜브를 보며 말했다. “투명하면서도 유연합니다. 보기보다 질깁니다. 환경호르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면서도 기존의 수액 세트보다 크게 비싸지도 않죠.” 전 대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KAIST 박사 출신 … 대기업 박차고 나와 창업
수액(輸液·infusion solution) 백은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링거’액을 담는 용기다. 국내에서만 연간 1억8000만 개가 쓰인다. 예전에는 유리를 썼지만 폴리염화비닐(PVC)을 쓴 제품이 개발되면서 유리병은 사라졌다. PVC는 사용 분야가 넓은 대표적인 플라스틱 소재다. PVC를 부드럽게 만들려면 첨가물을 써야 한다. 가소재(可塑劑·plasticizer)다. 1930년대부터 가소제로 쓰인 게 프탈레이트(탈산염)계 물질인데, DEHP가 대표적이다. PVC 수액 백이 투명하고 부드러운 것도, 식품용 랩이 얇고 질긴 것도 모두 가소제 덕이다.

 문제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에 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환경호르몬’이다. 사람의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며, 특히 어린이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사실이 199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현재는 의료·식품용기나 완구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수액 백의 경우 국내에서는 2007년부터 프탈레이트를 쓴 PVC 제품의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남은 문제는 수액 세트다. 약품을 담은 주머니인 수액 백과 환자 몸에 꽂힌 주사기를 연결하는 길다란 튜브, 약품의 양을 조절하는 점적 통 등 수액 세트는 여전히 PVC 계열이 쓰인다. 전 대표의 말대로 팔당댐(수액 백)은 맑아졌는데, 수도관(수액 세트)은 녹슬어 있는 셈이다. 비용이 아니라 기술 문제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전 대표의 말이다. “수액 세트는 투명하고 유연해야 하며, 질기면서도 값이 싸야 합니다. 단순한 주머니 형태인 수액 백은 금방 대체가 됐지만 수액 세트는 그런 기술이 금방 개발되지 않았던 겁니다.”

 환경호르몬에서 자유로운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불과 2~3년 전부터다. 일본 의료기업체 JMS, 니프로, 테루모 등에서 2010년부터 제품이 나온다. 이들은 고가 소재를 써서 기능은 뛰어나지만 비싸다. 이탈리아의 프로액티브사가 지난해 출시한 제품은 환경호르몬은 없지만 유연성이 떨어진다. 일본 회사와 합작한 중국 회사 한 곳은 폴리우레탄 수지를 쓴 제품을 판매하는 데 유연성과 강성은 좋지만 약간 노란 색이며 고가다.

 특히 일본 것을 제외한 다른 제품들은 약품이 튜브 내에 들러붙는 성질이 문제다. 정동준(고분자시스템공학) 성균관대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방사익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기존 PVC 제품은 물론 일부 비(非)PVC 제품도 약품이 튜브 내에 달라붙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착이 많이 되면 의사의 처방보다 약품이 적게 들어가 문제가 된다. 해결책은 약품이 아예 달라붙지 않도록 만드는 수밖에 없다.

 전 대표는 “우리가 개발한 제품은 환경호르몬은 물론 약물 흡착도 전혀 없다. 게다가 같은 성능의 일본 제품보다 값도 싸다”고 말했다.

 전 대표가 자신감을 갖는 데에는 근거가 있다. 환경호르몬 없는 수액 백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체 개발한 장본인이 바로 전 대표이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한양대 공대를 나와 KAIST에서 플라스틱 고분자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땄다. 학위 취득 후 두 곳의 대기업에서 일했다. 코오롱에서 일할 때는 당시 첨단 소재였던 VTR용 테이프 소재를 개발하는 팀을 이끌었다. 다른 대기업으로 옮긴 뒤에는 신소재개발팀장 등을 맡았다. 그가 창업에 나선 것은 1999년. 외환위기 파고가 한창 이어질 때였다.

 “기업들이 무조건 인력을 조정하는 등 무리수를 많이 두던 시절이었죠. 저도 팀장으로서 아무 잘못도 없는 직원을 잘라내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내 일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사실 무모했던 것 같아요.”

 무모함과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함께 가졌던 시절,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그에게 당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환경호르몬’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케미타운)를 설립해 개발에 나선 지 3년여 만에 성공했다. 2003년 그가 완전한 국산 기술로 비(非)PVC 수액 백을 개발했을 때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였다. 국산화 신기술상도 받고, 20억원 넘는 투자 자금도 구했다. 주문도 쏟아졌다. 성공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생산 과정이 문제였다. 한 위탁생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설비까지 다 설치했는데 업체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수액 백 생산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전 대표도 버틸 방법이 없었다. 각종 지원자금과 투자금을 합쳐 수십억원을 들인 상태였다. 당장 물건을 팔지 않으면 부도가 뻔한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결국은 한 중견 제약업체에 회사를 통째로 팔았다. 기술과 생산설비, 직원을 그대로 넘기는 조건이었다. 전 대표는 “당시 수십 명 직원의 일자리가 보장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급해 좋은 값도 못 받았다. 투자 자금을 빼고 전 대표의 손에 남은 것은 5000만원 남짓. 대기업을 나와 3년 넘게 고생한 끝에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한 대가치고는 너무 작았다. 세상이 원망스러울 만도 한데, 이 얘기를 하면서도 전 대표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괴롭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입을 열었다.

 “괴로웠지요. 하지만 창업에 나선 사람이 그만한 고비를 견디지 못하면 안 되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도 표정이나 말투로 드러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직원이나 거래처가 금방 알아요. 가급적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씁니다.”

“부품·소재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분야”
전 대표는 2004년 새 회사 우리테크라인(2006년 폴리사이언텍으로 변경)을 설립해 재기에 나섰다. 첫 창업이 실패했기 때문일까. 품목도 다양화했다. 폴리사이언텍은 종량제 봉투 등에 쓰이는 나노입자계 소재, 자동차 내장재용 복합소재, 유기디스플레이(OLED)용 플라스틱 기판 소재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기술만 개발해 넘기는 품목도 있고, 직접 생산라인을 돌리는 품목도 있다. 2011년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수액 백에 이어 비(非)PVC 수액세트의 개발이 필요해졌다. 이미 수액 백 개발 경험이 있는 터라 환경부로부터 환경기술개발사업자로 선정됐다. 수액 백보다 한층 난이도가 높은 이 기술의 개발에서도 전 대표는 멋지게 성공했다. 특허도 여러 건 얻었다.

 회사는 현재 화성시 공장에 설치한 생산라인을 시험 가동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을 준비 중이다. 생산은 직접 하고, 마케팅과 판매는 제약회사와 제휴할 예정이다. 관련 기관의 검증이 끝난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는 본격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 대표는 소재 분야의 가능성에 비해 창업환경이 나쁜 편이라고 말했다.

 “부품과 소재가 중요하다고 수십 년 동안 얘기가 나왔지만 별로 개선이 안 됐습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분야입니다.”

 소재 분야는 정보기술(IT)과 달리 투자 자금 회수 기간이 무척 길다. 그래서 초기 투자를 하는 회사와, 결과물이 나오면 이를 생산설비와 마케팅 능력을 갖춘 대기업에 M&A 등으로 연결해 주는 2차 투자 전문회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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