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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무심차 한잔하시죠

오랜만에 찾아온 외래교수가 내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오랜만이네. 더운데 뭐 마실 거 드릴까. 커피 아니면 녹차?” 그러다 문득 “무심차(無心茶) 드릴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그게 뭔데요?” “생수, 맹물이 무심차지.” “그거 좋겠네요.”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사람을 만나면 욕심이 생기고, 사람을 안 만나면 마음을 비울 수 있고 그러네요.” 마음을 비우는 산중 수행자들이 선차(禪茶)를 음미하며 주고받는 말이 있다. “차를 마실 때는 마음으로 마셔야 하며 마음으로 마실 때 마음과 몸도 잊고 선(禪)에 든다.” 이 말은 한 잔의 차에도 비우는 마음과 행(行)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손님이 가고 난 뒤 그가 남긴 말을 조용히 음미해봤다. 사람의 욕심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그것은 비교심이 앞서기에 생기는 것이다. 또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마음을 비울 수 있다는 뜻은 상대적 비교심과 절대적 비교심의 차이가 아닐까. 남과 나를 비교하는 건 상대적 비교심이요, 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 건 절대적 비교심이다. 무엇이 더 바람직한지는 자명하다. 엊그제 읽었던 『꾸뻬씨의 행복 여행』에도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란 구절이 떠오른다. 살면서 원칙에 너무 얽매이는 사람들은 절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불행한 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게 곧 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관포지교’에 나오는 『관자(管子)』를 읽고 있다. ‘백심(白心)’편의 내용은 마음의 함양과 심령의 정화다. 세상을 사는 데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없다. 그게 ‘백심’이다. 백심은 첫째, 허정(虛靜) 즉 ‘비우고 고요함’으로 으뜸을 삼는다. 둘째, 그 때(時)를 보배로 삼는다. 즉 형세를 보아 진퇴를 해야 하는 일이 마음 다스리는 일이다. 셋째는 의(儀)의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 허세나 보여줌 또는 소심한 마음이 없는 담담함을 말한다. ‘이것만이 심신(心身)을 보전하며 명(命)을 장구하게 한다’라고 책은 전한다.

원불교 교무들은 한 달에 한 차례 자신의 공부 수행담을 나누는 모임을 갖는다. 이번 모임은 10명이 차를 타고 야외로 떠나기로 했다. 지리산 하동 근처 산을 올라 사성암에 도착했다. 섬진강의 수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한 후배가 말했다.

“내가 어릴 때 집에서 소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소를 살찌우기 위해 풀이 많은 언덕으로 끌고 가 풀을 더 먹이고 돌아오곤 했지요. 어느 날 소말뚝을 대충 매어놓고 물놀이를 했습니다. 한참 물놀이를 하다 저녁이 돼 소 있는 언덕으로 가보니 소가 없었습니다. 사방을 울면서 찾아다녔지만 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이 저물어 집에 도착했는데 외양간에 우리 소가 있었습니다. 소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소가 나보다 낫다. 나는 소를 찾아 헤매고 다녔지만 이미 소는 자기 집으로 와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이야기를 듣고 다들 한참 웃었다. 불교에선 소를 자신의 ‘마음’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는 마음을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마음을 어디에 놓고 사는지 한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무심차 한잔 마시면서.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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